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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그 일본호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핏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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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05-21 08:21:00  |  수정 2016-12-27 22: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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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소희의 음악과 여행<49>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아름다운 설경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아키다(秋田)

 이곳의 화룡점정 다자와호(田澤湖)의 잔잔한 물결을 타고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봄과 가을에는 뱃놀이, 여름이면 물놀이,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지라 일본으로서는 더 없는 관광 효자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이곳이 그리 맘 편히 즐길 곳이 아니다. 

 한국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자와호’를 검색하면 “이 호수의 생성원인은 아직까지 수수께끼에 빠져있다”고 적고 있다. 일본의 정보를 그대로 베껴 놓은 이 문구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왜냐면 이 호수는 일본에 끌려온 한국 징용병들이 파 놓은 인공호수이기 때문이다.

 십여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지역민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일본으로 징병 온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곳이다. 어떠한 목적에 의해서 이렇게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호수를 만드는 과정에 수 많은 사고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유해물질이 분출돼 인명피해는 더욱 컸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깊은 수심을 지닌 이 호수는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아 더욱 유명해졌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이 호수 지질에서 용해되어 나오는 그 물질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이곳의 절경을 촬영한 사진들이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 많이 올려져 있는데 그 중에 “젊음과 미를 찾아 용이 됐다”는 다츠코히메 상을 촬영한 것은 빠지지 않고 올라와 있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비를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으니 이상하다. 

 필자가 이곳을 다녀온 지가 이미 십년이 넘었으니 그 사이에 추모비가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추모비 앞에 꽃다발을 바치며 사진을 찍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이라 파일도 없으니 그저 기억속의 사진을 더듬을 뿐이다.

 조선 징용병들의 사연을 소상히 얘기해 주던 일본인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전쟁을 일으키며 그토록 잔혹했던 일본사람들은 누구이며, 자신들의 잘못을 이토록 진솔하게 고백하며 눈물 흘리는 이 사람은 또 누구인지 일본 사람들의 양면성에 가슴이 얼얼해졌다.

 아키다는 사시사철의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꽃들이 만발하고 햇살이 맑아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이며 과일이 기름지고 달다. 도쿄에서 한낮에 얼굴이 불그레한 사람을 보면 “아키다에서 왔군”이라고 한다는데, 이는 아키다에 가면 누구나 술을 마시고 오는데서 나온 말이다. 술맛을 전혀 모르는 필자도 시원한 아키다의 흑맥주 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일찌감치 아키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70~80년대, 쌀 생산량이 모자라서 일본에서 쌀을 수입하던 시절, ‘아키바리’라는 쌀이 있었다. 그 말은 ‘아키다에서 생산된 쌀’이라는 뜻이었는데, 당시에 아키바리로 지은 밥은 그다지 맛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쌀은 방부제 먹은 쌀이었거나 짝퉁 아키바리였음이 틀림없다. 

 아키다의 사과는 명품 중의 명품이거니와 천연 온천은 그야말로 약탕이다. 맛나는 먹을거리들에다 다다미방의 운치며 온천의 뽀얀 증기가 이곳을 찾은 나그네들을 환몽 속으로 빠져들게 할만하다. 전국을 통틀어 아키다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하는데 이곳에 며칠 유숙해 보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자와호에서 이곳에 끌려와 수없이 죽어간 조선인들의 사연을 뒤로한 채 ‘다자와코’라는 마을에 도착하니 저만치서 피리와 북소리가 들려온다. 와라비자 극단 청년들이 환영을 나온 것이다. 북통을 직선으로 내려치는 동작이며 꼿꼿이 울려나오는 음향이 손님을 맞이하는 손짓마저도 전투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도자기 빚는 도공에서부터 공예가, 화가, 노래하고 춤추며 연극하는 사람들까지 갖가지 예능인들이 그 마을을 주식회사로 하는 주주들이란다.

 상설극장에서 일 년 내내 쉼 없이 뮤지컬 공연을 하는 ‘와라비자’ 극단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일본 문화에 빠져들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이들이 상설극장을 가진 것도 부러웠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단체를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노래와 연극, 악기 연주는 물론이며 무대장치와 분장에 소요되는 가발까지도 자체적으로 만들어 갈 정도로 자급자족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 비법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대를 이어가면서 기량을 물려주고 이어 받는데 있었다. 어려서는 가족들이 만들어가는 공연을 보면서 자라고, 청년시절에는 뮤지컬의 주인공이 됐다가, 나이가 들면 생업에 종사하며 극단을 후원한다니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생활과 예술이 일치하는 삶의 방식이 더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였던 와라비자 극단의 뮤지컬 공연. 벚꽃이 만발한 무대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배우가 일본 사람들 특유의 높고도 가는 목청으로 노래할 때 어우러져 나오는 전통 악기의 음향이 화사하고도 유려했다. 꽃이 질 때 울려 퍼지는 슬픈 곡조의 사쿠하치는 음색으로 보면 한국의 대금과 닮았지만 수직으로 잡고 부는 모양새는 퉁소와 흡사하다. 

 이들 연주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미센(三絃)

 기타보다 조금 작은 몸집에 야무지게 생긴 이 악기는 나무 주걱과 같이 생긴 피치로 현을 힘차게 내려 쳐서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마치 일본사람들의 게다 소리와도 흡사한데 고전에서부터 전자 기타의 요란한 주법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사미센의 종류는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전국에 수많은 사미센 합주단이 있다. 와라비자 극단에는 현란한 복장으로 광란의 질주를 하는 악사도 있었다. 히피족 같이 헝클어진 머리에 아이돌을 방불케 하던 그 청년이 지금쯤은 아키다의 어느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며 후배들이 공연하는 객석을 메우는 한 후원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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