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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대중문화]‘보슬아치’라니…측은한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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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2-10-16 06:51:00  |  수정 2016-12-28 01: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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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에리 대중문화평론가 = 인터넷에서 ‘보슬아치’ 논란이 그칠 줄 모른다. ‘우리시대 최고의 말빨 마왕’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성재기 대표를 중심으로한 남성연대 지지세력이 뭉쳐 트위터에서 한바탕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보슬아치’는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비속어 ‘보지’와 ‘벼슬아치’를 조합한 단어다. ‘보지 달린게 무슨 벼슬이냐’는, 참 흉한 말이다. ‘임슬아치’라고 임신한 게 벼슬이냐는 단어로까지 파생됐다.

 보슬아치의 예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돈만 밝히는 ‘된장녀’, 무리한 데이트 비용을 남자에게 부과하고, 남자친구에게 값비싼 명품백 선물이나 빚을 대신 갚아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거나 비싼 수입차를 가진 남자에게만 다리를 벌린다 등.

 일단 표면적으로 볼 때 이러한 논란은 여성에 대한 불합리하고 이중적인 성관념에서 기인한다. 경제적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그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함의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성(性)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주는’ 것이고 순결을 앗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는 창녀 기질이다.

 그러나 남성 본위의 한국사회는 자신에게 종속된 성이 아닌 성욕을 드러내는 여자들을 창녀 취급한다. 그러기에 이 여자들은 자신의 서비스를 돈으로 환원시킬 줄 아는, 남성위주-자본-배금주의 현 우리사회에 가잘 잘, 영리하게 적응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에게 데이트 비용을 전가하는 여성들의 항변은 여자는 데이트를 위해 많은 돈을 자기 치장에 쓴다는 것이다. 건강을 해칠 정도의 다이어트와 발악적 성형, 비싼 명품으로 꾸미는 외모지상주의적 행태를 열심히 따라가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사회적 성공을 할 기회가 희소한 사회에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그러한 신분을 가진 남성과의 결혼이다. (사회 계층이동 기회가 점차 줄어들면서 사랑보다는 조건을 선택하겠다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자신에 대한 투자는 그러한 남자의 눈에 들기 위한 미모 가꾸기다. 남편 덕 고스란히 보고사는 팔자좋은 여자라는 불확실하고 드문 가능성을 획득하기 위해 해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여자팔자는 뒤웅박팔자’라는 속담이 ‘공부 잘하는 년, 얼굴 예쁜 년이 팔자 좋은 년 못 따라간다’는 현대적 변용으로 유행한다.

 이러한 남녀관계의 기저에는 우리사회의 양성 불평등이 있음은 물론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진실된 성격미인들이 많이 찾아볼 수 있음에도 예쁜 게 최고라며 겉만 화려한 ‘보슬아치’를 원하는 남성들이 많기에, 수요가 공급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일본 혼혈인 미스스웨덴이 임금이 더 높은 노르웨이로 이주해 생선공장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국가대표급 미모를 지니고도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팔자 고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자기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과 분위기에서 자유롭기는 어렵기에 우리가 바꿔나가야하는 것은 불합리한 현실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1년 성 격차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35개국 중에서 107위로 바닥을 치고 있다. 영국 요크대학 심리학자들이 ‘짝을 찾을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를 조사한 결과, 각국의 성 격차 지수와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난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지역같이 양성평등이 잘 실현되고 있는 지역의 남성은 여성의 몸매, 요리실력 외에도 지성과 같은 특성에 큰 가치를 두고, 여성들은 남성의 돈에 대한 관심은 줄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엄연한 현실을 두고도 이를 ‘순위 조작’이라고 우기며 생떼를 쓰는 한국 남성들이 있다. 그러면서 남성연대는 자신보다 훨씬 키크고 아름다운 모델 같은 백인여성과의 결혼이라는 환상을 키워간다. 시민단체가 국제결혼을 주선한다며 게시한 광고사진이 그것이다. 서구사회에서 동양인 남성은 육체적, 성적으로 열등하고 매력이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데다가 전근대적 가부장적 사고방식으로 선진 의식수준을 따라잡기에는 턱없다. 우리보다 경제적 후진국인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결국 ‘돈’을 내고 외국인 신부를 매매하겠다는 것이 실상이다.

 ◇여성과 다투다가 성기를 드러내는 남성

 ‘보슬아치’ 논란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독한 경쟁사회, 승자 독식사회인 우리사회에서 낙오한 남성들이 결국 자신들보다 약자인 여성에게 폭력적 ‘한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성폭행 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 강간은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인정받고 펼칠 기회를 거세당한 남성들이 자신이 가진 최후의 보루인 원초적 남근을 재확인 받기 위해 벌이는 끔찍한 범죄다. 13일 사회면에 보도된, 여성과 주차시비 중 이 여성을 폭행하다 못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한 50대 남성의 경우도 남성기가 상징하는 면을 잘 드러내준다.

 여성운동에서 종종 얘기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전제로 자기체험을 드러내자면, 회사와 같은 공적인 조직 안에서도 간접적인 남성기 드러내기가 성희롱 뿐만 아니라 역성희롱으로도 발생한다. 여성 중간관리자가 자신의 위로 오면 상대와의 관계를 남녀관계로 전제해 끊임없이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며 권위를 무시하려 든다. 마초적 남성일수록 남성위주의 서열문화에는 상당히 복종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남성연대가 소외된 남성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초점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남성다움’,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라는 억압에 짓눌렸다면 한국남성학연구회를 만든 정채기 강원관광대 교수와 같은 좋은 예가 있다. 남과 여는 대결구도가 아닌 함께 ‘잘’ 살아가야할 동반자적 관계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잘못된 사회구조와 가치관을 개혁해야한다는 큰 틀을 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여성들에게 화살을 돌려 ‘역차별’을 우기고 있다. ‘역차별’을 운운할 만큼 성공한 여성의 수는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극소수다. 그것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가사, 육아, 시집살이 등을 전담해야하는 온갖 악조건을 뚫고 남성들의 몇 배는 노력한 악바리들이다. ‘고추’ 하나 달고 나온 것으로 가내외적으로 대접받던 시대가 점차 저물어 가는 것에 대한 강한 박탈감의 표현일 것이다.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번역한 나일등씨는 “보슬아치는 한국의 여성혐오를 상징하는 대단히 훌륭한 단어”이며 “이 말의 배후에는 ‘벼슬하는 보지들’을 ‘노비’ 계급으로 끌어내리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말한다.

 트위터러의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다. “왕자가 될 정도로 잘나지도 못하고 집사가 될 정도로 성실하지도 못한 남자들이 자기한테 반하는 여자 없다고 보슬아치니 뭐니 하고 있는 거 보면 여자들 눈이 대체로 정말 정확하다고 느낀다.”

 남성연대의 무지한 주장에는 역사성에 대한 무식이 전제된다. 일부일처제, 그야말로 남녀 1대 1 짝짓기가 제대로 정착된 것은 신분제 사회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이후다. 그전에는 여자에 대한 분배도 불공평했다. 돈많고 지체높으신 분들만 여자 여럿을 독식했다. 남성 누구나 다 제짝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공평하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며 남성들의 눈치를 보는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 말을 하고 싶다. 오늘날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데는 흑인노예해방과 맞먹는 선배 여권운동가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부인하고 오늘의 권리를 누리고자 한다면 역시 무식한 거다)

 왕후장상의 씨가 달라 너는 태생이 그러하니 평생 노비로 살아라라는 말에 굴복할 사람이 현대사회에 누가 있나. 이러한 혁명을 거치며 인류는 진화하고 있다. ‘양성평등’은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폐지와 함께 인류가 최후로 이뤄야할 평등이다. ‘여성해방’은 이러한 인간해방이라는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서 성취해야할 또하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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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성차와 성차별을 구별 못하는 무식도 문제다. 남녀평등 논쟁 끝에 나오는 소리는 꼭 “여자도 군대가라”는 것이다. 미안하게도 성평등지수 톱그레이드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도 남성들 만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은 2010년 폐지)

 1년 이하로 그 기간이 짧고 여성들도 자원입대가 가능하긴 하지만, 성평등지수 1위를 곧잘 차지하는 노르웨이에서도 여자들에게 남성들과 같은 복무를 시키라는 주장은 없다. (노르웨이 언론인에게 질문하니, 대체복무가 예전보다 쉬워지기도 했지만 이에 관한 사안은 전혀 논쟁거리조차 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생리, 임신, 출산이라는 여성의 생물학적 성차를 존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출산율 세계꼴찌인 나라에서 뭔 놈의 생리유세? 닥치자, 모성이 배제된 생리는 장애다”라고 주장하는 성재기의 말은 아이를 더 낳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구조적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여성혐오 만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언급할 가치도 없는 저급한 발언이지만, 일부 남성들이 툭하면 걸고넘어지는 것이 ‘생리휴가’다. 모성보호를 전제로 한 것인데, 사실 명목뿐인 휴가로 빡빡하게 경쟁적인 직장에서 실제 이를 사용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생리휴가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남성위주 조직에서 스스로를 배제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사를 보니 금융권에서 생리휴가 사용률은 실제 0%다. 있으나마나한 전시행정사례의 하나랄까. 남성연대가 지적하고 나선 여성혜택 정책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만든 것들인데 그에 대한 비난을 무작정 ‘여성’이라는 존재에 쏟아 붓는 것도 대상을 잘못 선정한 비논리적 분노표출일 뿐이다.

 ‘군가산점’ 문제도 그렇다. 군대를 거친 만큼 어떤 혜택을 주자는 데는 찬성이다. 그런데 따로 군가산점을 주지 않아도 남성의 취업과 소득수준이 훨씬 유리한 것이 실제다. 최근들어 여성들의 필기시험 성적이 더 높아지는 추세다. 남학생들과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온 여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남성선호 경향이 강한 입사시험을 뚫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뿐이다. 공무원이나 국가고시 합격자 여성비율이 크게 상승하는 이유다. 남성들이 위협을 느낄 만 하다.

 그러나 일반 기업체 등에서는 면접 등을 거치면서 시험 성적보다는 남성의 책임감이나 강한 육체성 등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남녀 합격자 비율이 역전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취업난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이며, 여성들이 남성들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 아닌데도 여성에 대한 공포가 과도한 것은 여성비하와 혐오가 그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여성부(영어명칭처럼 ‘성평등부’로 부서명 교체도 고려해봐야한다)가 존재해야할 만큼 국내의 양성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사실에 눈감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양성평등 복지 국가인 북유럽에는 여성 정당도 존재한다. 세계적 그룹 아바 출신의 베니 앤더슨이 2009년 12만8000 달러(약 1억5000만원)라는 거금의 정치헌금을 한 스웨덴 정당이 바로 페미니스트 당이다.

 ◇강간도 가능하다는 저속한 성의식

 트위터에서 ‘보슬아치’를 검색하면 “성정체성 평등이란건 대체 기준이 어디까지 인가? 성정체성 평등은 태어날때부터 있는 고유한 성정체성까지 평등하게 할 참인가? 그럼 아예 혼욕문화 만들고 화장실도 전부 공용으로 바꿔라 보슬아치들아”라는 글이 걸린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북유럽에서는 남녀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이 일반적이다. 물론 각 부스를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혼숙 기숙사도 흔하다. 아마도 이런 환경이라면 한국에서는 각종 성범죄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할 것이다. 체구도 훨씬 큰 북유럽 남성들이 한국 남성들보다 성욕이 약해서 이같은 환경이 가능할까?

 지난 추석연휴 발생한 성폭행 사건 보도에 달린 댓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1일 아침 술에 취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쓰러져 있던 20대 이웃처녀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49세 이혼남을 다룬 온라인 기사에 “고양이 앞에 생선을 두고 먹지 말라면 안 먹을까요, 저런 남자도 짜증나지만 이번 사건은 여자가 더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코멘트가 베스트 댓글이 됐다. 공감 1951, 반대가 519로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어떤 사연 때문에 그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셨는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보지’를 가진 객체로 보는 시각이 현 대한민국 사회의 여성인식을 보여준다.

 이러니 남성들이 나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느냐며 각종 성추행, 성범죄 대책에 발끈해도 방어심을 풀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인간의 인격을 파괴하고 인생에 치명적일 수 있는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의 성욕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의견이 번듯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이 같은 인식이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크고 작은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은 이유다. 남성의 성욕은 조절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한국민의 일반적 성의식인 것이다. 술 취해 쓰러진 남성이 흠씬 두드려 맞고 아리랑치기를 당하거나 장기적출 등의 피해를 입어도 범죄자를 옹호하며 피해자를 탓할 수 있을까. 댓글에 이런 식의 의견도 있었지만 소수의견으로 밀리고 말았다.

 피해여성의 사정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술 권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를 피해갈 수 없는 여성 직장인들의 고충이 연상됐다. 많은 일들이 남성위주의 술자리에서 이뤄지기에 회식 자리는 피할 수 없다. 모든 면에서 남성과 같은 능력을 요구받는 현대 여성, 특히 신입 여사원이라면 지기 싫은 마음에 자신의 주량도 모르고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술잔 거절을 못마땅해하는 상사의 눈밖에 날까봐서라도. 자신의 가족이나 애인이 아니라면 따로 잘 보호해주지도 않으면서 술을 먹이고는 그냥 알아서 집에 가겠거니 하고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장면이 그려지는 건 왜일까.

 그러면서도 막상 이런 사건이 생기면 여성의 몸가짐을 탓한다.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여성들이 ‘슬럿워크’(잡년행진)라는 집단시위를 벌이게 된 이유는 여성이라면 공감할 음험하고 노골적 시선을 길거리에서 흔히 받는 데 대한 반격이다. 한국 남성들은 아직도 여성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붐비는 대중교통 내에서 손을 대는 일은 법적 단속으로 많이 수그러드는 추세이나, 여성의 가슴 등 특정 신체부위를 대놓고 쳐다보거나 하는 일은 여전히 흔하다.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당사자가 기분 나쁘게 느낄 정도로 여성의 신체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일은 드물다. 맘에 드는 여성이 있다면 눈을 보며 웃는 것이 일반적 태도다. 사회개혁과 교육으로도 이 같은 일이 가능하다면 희망이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구태가 개선되려면 구시대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다 죽고 난 다음만큼 세월이 흘러야할까.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일부 10, 20대 젊은 남성들마저 결국은 세상의 반인 여성들을 억압함으로써 남성성이라는 과도한 책무를 다시 짊어져야한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읽지 못하고, 막연한 향수를 가지고 구세대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편협한 사고를 가진 어리석은 이들은 존재해왔고, 여성인권지수 부동 1위인 노르웨이 같은 곳에도 브레이빅 같은 정신병자가 존재한다. 미국까지 가서 성형수술을 받고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77명을 집단 살상한 브레이빅이 남성위주의 가부장제를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하며 한국과 일본을 이상국가로 손꼽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재기가 어느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지칭했듯 ‘찌질이’들도 인터넷 시대를 맞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됐다.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을 마음껏 떠드는 시대도 저절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모델로 삼을 만한 양성평등 인권복지 선진국들이 엄연히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데도, 페미니즘 탓을 하고 있는 일부 한국 남성, 그리고 일부 여성들의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는 세계적 망신이자 비웃음거리다. 더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깎아먹는 암적 요소다. 암담한 미래를 맞이하고 싶지 않기에 이들이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짓은 더 이상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riKim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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