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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비자금 성형(成形)'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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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3-07-25 07:48:22  |  수정 2016-12-28 07: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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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은 인명은 가벼이 여겨도 돈은 뜨겁게 사랑하는 승냥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반드시 밝혀내야 정의도 실현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경제부장 = 망각은 시간의 함수다. 오래 전 일은 시간의 모래밭 깊숙한 곳에 파묻히고 만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세월은 트라우마(trauma)를 경감해주는 마취제다. 부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90년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일어난 '인종 청소'다. 전세계 사람들이 세르비아인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발칸의 도살자'라는 섬뜩한 별명을 얻었다.

 사람들은 세르비아인의 핏속에는 카인의 DNA가 흐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세르비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특히 크로아티아인들에 대해서는 복수나 응징이라고 믿었다. 세르비아인들의 믿음을 이해하려면 반(半)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독일군은 1941년 발칸 반도를 점령한 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해체했다. 독일은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크로아티아를 세르비아에서 분리했다. 세르비아는 물론 발칸 반도 전체를 놓고 보면 정교회(正敎會)신자가 훨씬 더 많다. 

 히틀러는 크로아티아의 파시스트 지도자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c)를 총통으로 내세워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파벨리치는 극우 민족주의 단체 우스타샤(Ustasa)를 수족으로 삼아 파시스트 가톨릭 국가를 수립했다.

 학교에서는 가톨릭 교리만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했다. 반면 키릴 문자로 만든 정교회 성경이나 책자를 발행하는 것은 전면 금지했다. 세르비아인은 물론 유태인도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순수한 가톨릭 국가의 피를 더럽힌다는 게 이유였다.

 바티칸은 바벨리치와 우스타샤에 박수를 보냈다. 동방에 순수한 가톨릭 국가를 건설하는 게 로마 교황청의 꿈이었다. 근대까지만 해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는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빈 동쪽 지역은 유럽이 아니라 야만족이 사는 아시아로 간주했다.

 가톨릭 국가의 수립과 함께 세르비아인들의 악몽이 시작됐다.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들을 일부는 죽이거나 추방하고, 나머지는 가톨릭으로 개종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파벨리치의 집권 당시 크로아티아 인구는 모두 670만 명에 달했다. 가톨릭이 330만명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가톨릭에 이어 세르비아인이 200만 명, 무슬림이 70만 명, 유태인이 약 5만 명이었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인 사냥터로 전락했다. 인종 청소 작업에 가톨릭 사제까지 가세했다. 망치, 낫, 손도끼를 동원해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50만 명의 세르비아인, 8만 명의 유태인, 3만 명의 집시가 학살됐다. 강제 수용소는 24시간 내내 화장터를 가동했다. 독일군 유고지역 사령관조차 히틀러에게 "우스타샤가 완전히 미쳐 날뛰고 있다"고 보고할 정도였다. 

 폭정(暴政)은 인명은 경시하지만 돈은 뜨겁게 사랑한다. 우스타샤는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원 및 교회를 약탈했다. 세르비아인들을 개종시키며 돈도 뜯어냈다. 1인당 180 디나르(dinar)를 내고 고해성사를 하면 '개종 증명서'를 발행해줬다. 세르비아인들 가운데 30%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독일의 패전 조짐이 보이자 파벨리치는 약탈한 귀금속을 로마로 빼돌렸다. 금반지, 금 목걸이, 심지어 학살당한 세르비아인의 입 안에서 펜치로 뽑아낸 금니로 36개 상자를 가득 채웠다. 바티칸과 파벨리치는 마피아의 도움 아래 나폴리에서 금을 모두 녹여 금괴로 만들었다.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8,000만 달러를 웃돌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크로아티아의 파벨리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입증했다. 파벨리치는 그저 약탈한 금을 녹여 금괴로 만들었을 뿐이다. '비자금 세탁'이라기보다는 편리한 보관을 위한 목적이 크게 작용했다. 설사 그것을 '비자금 세탁'이라고 해도 초보 수준에 불과했다.

 전 전 대통령은 달랐다.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3억~5억원으로 잘게 쪼갠 후 수백개의 가명 및 차명계좌를 이용해 세탁했다. 이 정도면 '세탁' 대신 '성형(成形)'이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게 맞다. 대여금고는 물론 각종 수단을 망라했다. '비자금 성형(成形)'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였다.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집권 과정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의 염치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떳떳하다면 굳이 해외 계좌를 이용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검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흘러간 권력의 비자금조차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면 검찰은 '명예'라는 말을 입에 담아선 안 된다.  

참고문헌 1) Williams, Paul. 2003. The Vatican Exposed. New York: Prometheus Books. 2) Ante Pavelic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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