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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20년]절반의 성공… 차명계좌 부작용 해결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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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3-08-11 06:00:00  |  수정 2016-12-28 07: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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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93년 8월 12일 전격 도입 금융시장 및 경제 전반의 투명성 높여 차명계좌 통한 비자금 거래는 여전해 

【서울=뉴시스】이상택 정일환 장진복 이예슬 박기주 기자 = 금융실명제가 12일 도입 20주년을 맞는다. 김영삼 정부는 93년 8월 12일 긴급명령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금융실명제는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 나아가 경제 전반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경쟁력을 제고하는데도 도움을 줬다는 게 지배적 인식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아직도 차명계좌를 통해 자신을 숨기려는 '떳떳치 못한' 돈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최근들어 금융실명제의 '예외'를 손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명계좌 등 실명제를 피해갈 구멍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조세회피지역 활용, CJ그룹의 비자금 수사, 전직 대통령들의 출처모를 뭉칫돈 등은 금융실명제의 아킬레스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치권이 발의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조만간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진통은 불가피하겠지만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내려는 현 정부의 정책 목표를 감안할 때 금융실명제는 어떤 식으로든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는 도입 20주년을 맞는 금융실명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금융당국은 최근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이 차명 계좌를 운용한 사실을 적발한 후 해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차명계좌의 주인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금융실명제의 맹점은 ‘실명’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가명이나 무기명만 허용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남의 이름을 빌려도 금융거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허점은 자연스럽게 차명거래를 만들어냈다.

 자녀 명의의 통장이나 친목회비 통장 등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차명계좌도 있지만 '검은 돈'이 편법적으로 유통되는 수단이 바로 '차명 거래'다. 흔히 ‘대포통장’이라 불리는 계좌들은 정치자금 세탁이나 기업인들의 비자금 은닉처로 활용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경우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뿐 아니라 노숙인들의 명의까지 빌려 유령계좌를 무더기로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운전기사 이름으로 된 통장을 이용해 30억원이 넘는 뭉칫돈을 관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 등 상당수 기업인들도 차명 계좌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금융실명제가 우리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와 금융당국, 정치권 등은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최근에야 행동에 나섰지만 걸림돌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차명계좌의 범위와 숫자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 차명계좌가 합의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정부도 차명계좌 규모를 추정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차명이 의심된다고 아무 계좌나 마구잡이로 뒤져볼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사실상 차명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된 경우로 한정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터넷 뱅킹 등으로 하루에도 수백개씩 생겨났다 없어지는 계좌들을 일일이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처벌강화 등의 방식으로 통제를 강화하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차명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제도 도입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점과 과연 효용성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에도 이를 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기명과 가명에 의한 폐해가 심각했던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차명 거래는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로 취급됐다. 

 또 차명 거래가 범죄에 악용됐다는 사실이 입증됐을 경우 조세처벌법이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등 개별법으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차명으로 대상으로 한 처벌 규정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았다. 

 게다가 무기명과 가명으로 인한 범죄행위는 처벌이 명확한데 반해 차명 거래는 처벌을 정하는 절차와 단계, 기준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다. 선의와 악의가 뒤섞여있어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소명될 때까지는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명 거래를 전면 불법화하면 범법자가 양산될 가능성도 높다. 예를 들어 자녀 명의의 계좌에 부모가 대신 저축을 하거나 부부가 한 사람의 명의로 된 계좌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 배우자의 월급을 본인 통장으로 대신 받는 사례 등도 차명 거래에 해당한다.

 각종 모임 활동비를 한 사람의 계좌로 모아 관리하는 등의 경우를 포함한다면 전 국민 중 차명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는 명의 신탁 문화가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간과한다면 자칫 수많은 선의의 차명 거래가 불법 거래로 전락한다.

 법 개정에서 이러한 선의의 차명거래를 예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악의성이 있는 거래인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법을 만들면서 예외를 주렁주렁 단다는 것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법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금융회사 차원에서 선의와 악의를 구분하기 힘들 뿐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위법 여부를 일일이 판단해야 할 건수가 늘어난다는 점도 상당한 물리적 부담이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차명 거래로 인한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보다는 개별법에 따라 잘잘못을 명확히 가리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차명 거래를 이용해 불법·탈법적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경우가 많았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상태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봐야 별다른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사를 해 봤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 보더라도 차명 거래를 금지하는 나라의 사례는 찾지 못했다"며 "설령 있다고 해도 주류는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wha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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