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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울고싶은 일본에 뺨때려준 한국?

노창현 기자  |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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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3-12-24 14:57:37  |  수정 2016-12-28 08:34:28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UN평화유지군(PKO)은 일명 ‘블루 베레(Blue Berets)’다. UN 글자가 쓰인 푸른색 베레모나 헬멧을 착용한데 따른 것이다. PKO의 효시는 1948년 신생독립국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분쟁 직후 평화 유지를 위한 것이었고 한국전쟁 휴전이 선포된 1953년부터 한미연합군으로 대체된 1967년까지 한반도에서도 임무를 수행했다.

지금의 이름이 된 것은 1991년 UN 안보리가 더욱 체계적인 지원 활동을 위해 평화유지작전부(Peacekeeping Operations)를 발족하면서부터다. 아이로니컬하게도 UN의 PKO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극우세력에게 마른 하늘에 단비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일본의 ‘군사적 기여’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등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부추긴 최대 원군이었다. 당시엔 일본 헌법 제9조와 전수방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일본 내 여론과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한 주변국들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종전 직후인 이듬해 4월 페르시아만의 잔류 기뢰 제거를 돕는다는 핑계로 소해정이 파견됨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일본 군대가 영해를 넘어가는 ‘신기원’을 이룰 수 있었다.

자위대의 공식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한 일본은 그해 11월 자민당이 ‘PKO 협력법안’을 국회 소위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후 제2 야당 공명당의 지지 속에 통과의 개가를 올렸다. 일본 헌법학자 80% 이상이 ‘군사적 색채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반대했지만 유엔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합법화한 일본 정부의 전략은 거침이 없었다.

1992년 캄보디아에 첫 파병을 시작으로 동티모르, 아이티, 그리고 지난해 남수단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군대는 8번의 파병 기록을 세웠다. 특히 남수단은 2012년 1월 선발대를 보내는 등 이 지역과 긴밀한 중국에 앞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 일본이 23일 또 하나의 의미있는 ‘개가’를 올렸다. 남수단에서 PKO에 참여 중인 한국군에 육상자위대의 탄약을 제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반기문 사무총장의 요청에 따라 2013년 2월 한빛부대를 파병했고 현재 280명의 2진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병 및 의무대를 중심으로 편성된 한빛부대는 경계 병력의 무기 대부분이 구경 10㎜ 이하의 소형 개인 화기여서 주둔지 방호를 인도와 네팔군 부대에 맡기고 있다. 최근 들어 현지에서 교전 가능성이 고조되자 UNMISS(남수단재건지원단)를 통해 탄약 지원을 요청, 미 아프리카사령부로부터 5000여발, 일본 자위대로부터 1만여발을 빌려온 것이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의 화기와 호환 가능한 탄약을 보유한 현지 외국군은 미군과 일본 자위대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조만간 우리 수송기를 이용해 한빛부대에 탄약과 화기 등 개인 방호 장비와 부식을 지원할 예정이며 화기와 탄약이 보충되면 빌린 탄약을 돌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우리 군인들의 안전이다. 강도가 칼을 들고 다가오는 상황에서 옆집에 총을 집어달라고 한 것과 같다”는 당국자의 말처럼 먼 이국의 평화를 위해 땀흘리는 우리 장병들이 터럭 하나라도 다치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애당초 공병과 의료 지원 임무의 한빛부대이지만 방호 병력이 허겁지겁 탄약을 빌려야 할만큼 물자가 충분치 않다는 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지 파병된 일본의 자위대 역시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비전투부대로 알려졌다. 그런데 1만발의 탄약을 빌려줄 정도라면 그들의 보급 물자는 유사시를 대비한 충분량이 확보돼 있음을 의미한다. 만에 하나 교전의 돌발 상황이 벌어졌는데 탄약이 모자라 소중한 우리 장병들의 인명이 희생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또 한가지 문제는, 이번 사안의 시사점과 향후 파급력을 고려할 때 과연 일본군의 탄약을 빌리는 게 적절하냐는 것이다.

국방부의 말마따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면 ‘급한 불’은 미군의 지원으로 끄고 즉각 국군 수송기를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우리 군인들의 생명이 위태롭다는데 탄약쯤이야 하루, 이틀 사이에 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강도가 칼을 들고 올지도 모르니 총이 있는 이웃집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왼쪽 집은 예전부터 우리를 도왔고 오른쪽 집은 우리 가족을 살해한 전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강도가 목에 칼을 들이댄 것도 아니고 한나절이면 큰집에서 ‘대포’라도 가져올 수 있는데 말이다.

지난 역사 속의 일본을 사람에 비유하면 그는 수십년 간 한 동네에서 강간과 살해를 자행하고 남의 재산을 탈취하고 노예로 부린 극악무도한 자이다. 다른 동네를 습격하고, 급기야 나라 전체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자가 다시 이웃사촌이 되려면 최소한 개과천선의 자세가 선행되야 한다.

그러나 ‘위안부’부터 ‘독도’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일본은 진정한 참회는 커녕, 과거의 악행을 합리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평생 ‘보호관찰’해야 할 요주의 인물에게 무기를 들려준 것도 찜찜한데 우리 스스로 “총알좀 꿔 달라” 했으니 여론이 불붙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PKO 협력법은 필요한 경우 내각회의 결정으로 물자를 제공할 수 있지만 무기나 탄약이 포함되지 않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다. 교도통신이 지적하였듯 국회에서 논의되야 할 탄약 지원이 관방장관, 외무상, 방위상 등 국가안전보장회의(NSC) 4인각료회의에서 전격 처리된 것은 그들의 속내를 짐작케 한다.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고 싶은 참에 한국이 총대를 매주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일본 우익으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더욱이 외국군에 군사물자를 공급하는 최초의 사례 아닌가.

그래서 이번 지원은 무기 수출 제약 문제와 한·일 간 군사협력 등 향후 일본이 기울여야 할 몇 단계의 노력을 한방에 해결하는 중대한 선례가 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지난 100년 간 식민의 압정과 전쟁의 참화, 분단의 비극을 안기고도 머리를 꼿꼿이 쳐드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은 정말이지 일본은 아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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