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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하는 美스쿨버스기사’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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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4-01-20 15:29:15  |  수정 2016-12-28 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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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톤(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오전과 오후 업무 사이 시간도 넉넉하고 일과를 마치면 잔업도 없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도 그에게는 달콤한 여유를 제공한다. 2010.01.19.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코네티컷에서 목회와 스쿨버스기사 생활 병행

【윌링톤(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그이의 일상은 신새벽에 시작된다. 기도와 묵상을 하고 일터로 나간다. ‘타임체크’는 오전 5시20분. 업무 준비를 하고 5시50분 노란색 스쿨버스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건다. 첫 승객은 5분후에 태우는 고등학생이다. 등교시간이 이른 고교생들을 차례로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고 중학생, 초등학생 순으로 같은 작업을 되풀이 한다.

 아침 9시20분까지 4시간의 오전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글도 쓰고 설교와 강연준비도 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다시 하교하는 학생들을 픽업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시간은 오후 1시20분. 오전과는 역순으로 오후 5시20분까지 오후 일과를 진행한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의 이름앞엔 늘 붙는 수식어가 있다. ‘장준하선생 아들’이다. 해방전에는 독립운동가였고 해방후엔 언론인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선생은 박정희정권의 유신독재가 한창이던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했다.

 지난 1999년부터 미국 코네티컷에 거주하는 장호준 목사는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한다. 목사가 스쿨버스 운전을 한다면 고개가 갸우뚱하겠지만 방학중에 리무진 택시를 운전하는 교장도 있는 미국에선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더욱이 그는 교인이 모두 유학생인 가난한 교회의 목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생업이기도 하다. 장 목사를 만난 곳은 코네티컷 윌링톤의 유명한 피자집이었다. 역사가 200년은 넘는다는 유서깊은 피자 식당에서 미국 생활 10년만에 가장 맛있는 피자를 즐기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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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톤(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를 만난 곳은 코네티컷 윌링톤의 유명한 피자집이었다. 역사가 200년은 넘는다는 유서깊은 피자식당에서 미국 생활 10년만에 가장 맛있는 피자를 즐기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2010.01.19.  robin@newsis.com
 그가 미국에 온 것은 1999년. 활발한 사회참여로 잘 알려진 UCC(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6년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여러 지원활동을 했다.

 장 목사가 소속된 기장 경기노회와 UCC의 코네티컷 컨퍼런스가 1994년 교류를 시작했을 때 통역을 맡게 됐고 그 인연으로 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초청을 받았다. 코네티컷 컨퍼런스는 코네티컷 주도(州都)인 하트포드에 교회는 물론, 집과 차도 마련해줬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처음엔 아내와 한두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다 3년여만에 70명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사람이 늘어나자 문제가 생겼다. 출석하는 교인중 나이 지긋한 이들이 ‘장로’를 원했기때문이었다.

 UCC는 회중교회(Congressional Church)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로제도를 운영하지 않았다. “간곡하게 부탁하길래 호칭만 주기로 하고 나이가 마흔살이 넘는 사람은 집사, 예순 이상은 장로로 하자고 합의했는데, 이번엔 여자는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나도 인정 못하겠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됐어요.”

 진짜 문제는 2005년에 벌어졌다. ‘동성애’때문이었다. 어느날 교인들이 “목사님이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안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장 목사는 “미국에만 3800여 개의 한인 교회가 있는데 그중 한 개 교회가 동성애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나? 모든 한인 교회들은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교회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교인들이 떠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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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톤(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오전과 오후 업무 사이 시간도 넉넉하고 일과를 마치면 잔업도 없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도 그에게는 달콤한 여유를 제공한다. 2010.01.19.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그길로 장 목사는 하트포드 교회 문을 닫았다. 남은 교인들을 이끌고 세탁소를 하는 한 교인의 일터에서 목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게 됐다. 스쿨버스 기사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 무렵 유콘(코네티컷 대학) 유학생 한명이 성경공부를 요청해 1시간 거리를 정기적으로 다니게 됐고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콘 스토어스 교회를 세우게 됐다.

 스토어스 교회는 여느 교회들과 다르다. UCC가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하는만큼 다른 생각 다채로운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 타종교인들도 있고 한때 기독교를 배척하던 이들도 찾아와 ‘열린 생각’을 나누고 있다. 장호준 목사가 주문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살라’는 것이다.

 스토어스 교회는 헌금을 강제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에 헌금의 이름으로 돈을 내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책임지고 교회답게 돈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주일에 성경책도 가져오지 말라 하고 목사와 평신도가 동등한 높이에서 마주 앉아 예배를 본다.

 설교 또한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교인들 모두가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이거나 방문교수들로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괜히 허튼 소리 해서 시간낭비를 할게 아니라 짧은 시간 어떻게 예수의 삶을 전달할지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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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요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장호준 목사가 주문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살라’는 것이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정면에서 비판한 장준하 선생은 1975년 등산길에 의문의 추락사를 했다. 당국은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37년만인 2012년 유골 수습과정에서 타살의 증거가 밝혀졌다. 장호준 목사는 “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 시대의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2010.01.19. <사진=교회일보 제공>  robin@newsis.com
 장 목사는 예배형식을 없애고 주보도 1년에 한두번 발행할 뿐이다. UCC는 개교회 목사의 방식을 존중한다. 덕분에 같은 UCC 목사도 “이 교회는 장 목사님외엔 인도할 수가 없겠네요”라고 놀라기도 했다.

 “우리 교회를 보고 어느 한인 교인은 이단이라고 하더군요. 웃으며 그랬습니다. 거참, 내가 미국서 10년 넘게 살았는데 ‘이단’이 아니라 ‘오단’ 정도 해줘야 하는것 아니냐구요.”

  ◆ UCC는 미국기독교의 역사

 UCC는 미국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상륙한 필그림과 1622년 도착한 퓨리탄들이 훗날 합쳐 UCC의 모태를 이루었다. 신천지에 도착하며 맺은 ‘케임브리지 선언’은 투표로 결정되는 시민정치체제라는 점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초기엔 교회공동체였기에 UCC의 회중교회 목사가 자연스럽게 지역의 주지사(Governer)가 되었다. 당시엔 타운 한복판에 교회와 함께 ‘그린’으로 불리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일요일이면 예배온 교인들의 물물교환 장터로 활용됐다. 교회 재정을 위해 추첨권을 뽑는 ‘팟락 파티’를 했는데 오늘날 로또(복권)의 효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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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톤(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요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장호준 목사가 주문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살라’는 것이다. 교인들과 함께 한 사진. 2010.01.19. robin@newsis.com
 하버드와 예일 등 세계 최고의 대학들을 세운 것도 바로 UCC였다. 하버드는 본래 목사를 배출하는 신학교였고 예일은 평신도를 양성하는 학교였는데 이들 대학이 자리잡은후 차례로 독립시켰다.

 장호준 목사는 “과거 독일에서 ‘고백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UCC도 정교일치를 내세웠던 초기교회들이 저지른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보수와 전통의 틀안에 진보의 목소리를 내는 UCC의 모습을 구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UCC가 미국기독교 최초로 흑인목사를 배출하고 여성에게뿐 아니라 게이와 레스비언에게까지 목사안수를 주는 혁신적 교단으로 거듭난 것도 이같은 역사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UCC는 미 전역에 6천개 정도의 교회가 있고 대부분은 초기 정착민의 역사가 담긴 뉴잉글랜드 지방에 있다. 특히 코네티컷주는 ‘처치 스테이트’라는 별칭이 있을만큼 UCC교회가 많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재 장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도 284년의 역사가 된 유서깊은 곳이다. 장 목사는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자원봉사주의(Volunteerism)다. 투표를 통해 정치인을 선출하고 법안을 갖고 논쟁하는 의회민주주의는 바로 UCC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UCC는 19세기초까지 미국 기독교의 80%의 비중을 차지할만큼 막강했다. 그럼에도 UCC가 상대적으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교회의 팽창과 함께 ‘세계선교’에 돌입하게 되면서 아시아 지역을 교단이 분할 파송하게 됐다. 가장 덩치가 컸던 UCC는 일본과 필리핀, 중국서부와 인도, 사모아를 맡았고 장로교엔 한반도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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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턴(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오전과 오후 업무 사이 시간도 넉넉하고 일과를 마치면 잔업도 없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도 그에게는 묵상을 할 수 있는 달콤한 여유를 제공한다. 2010.01.19.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조선에 온 미국의 1호목사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본래 UCC와 연합한 개혁교회 교단 소속이었으나 조선에 오고 싶어 뉴저지 브런스윅 세미너리를 졸업하고 장로교 목사로 교단을 바꿔 입국했다. 장 목사는 “농담삼아 UCC 목사들에게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는줄 아냐? 200년전 너희 선조들이 세계지도를 보고 멋대로 나눠먹기했기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UCC 선교사가 한반도에 왔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수직구조가 아니라 수평구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역사가 나를 등떠밀어”

 장호준 목사는 2년전만 해도 미국내 진보인사들과 교류가 별로 없었다. 그가 세인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박근혜 정권의 출범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역사가 등 떠밀어서 나왔다”고 말한다. 2012년 대선 두달 전부터 이듬해 초까지 미주 11개 도시를 순회 강연을 했다.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미 전역에 생각은 같지만 흩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어요. 흩어져서 연결을 못하는 사람들의 힘을 모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5월 ‘사람사는세상 미주희망연대’가 출범하며 그는 의장직을 맡았다.

 아버지 장준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름은 박정희다. 동시대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은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정면에서 비판한 장준하 선생은 1975년 등산길에 의문의 추락사를 했다. 당국은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37년만인 2012년 유골 수습과정에서 타살의 증거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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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턴(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오전과 오후 업무 사이 시간도 넉넉하고 일과를 마치면 잔업도 없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도 그에게는 묵상을 할 수 있는 달콤한 여유를 제공한다. 2010.01.19.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장호준 목사는 “박정희는 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 살아 있는 것도 두려운 상대를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 시대의 정신이었다.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언젠가 희생당하셨을 것이다. 역사의 제물이 필요로 하던 시대였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장준하 선생 타계후 그의 집안은 옥죄이는 시대속에 숨을 죽인 채 살아야 했다. 그의 나이 열일곱살이었다. 검정고시를 통해 이듬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교측은 시위주동 혐의로 자퇴를 종용했다. 먹고 사는 일도 급했다. 어머니는 보험 외판원이었고 그도 포장마차와 가게 점원, 등산 가이드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79년 다시 입학한 대학은 신학교였다. 신학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사업에 관심이 있어서였다. 두 번째 맞은 학창시절도 역사의 수레바퀴속에 소용돌이쳤다. 10.26으로 유신독재는 종언을 고했지만 이듬해 5.18로 강제징집을 당했다. 동기생 3명이 자살 등 죽음을 맞은 엄혹한 시절이었다. 광주에서 이른바 데모진압대인 ‘충정훈련’을 받을 때 전두환정권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포대장이 내게 묻더군요. '찬성이냐 반대냐?' '반대할겁니다.' 완전군장하고 밤새 연병장을 돌았어요. 다음날 또 묻길래 반대라고 했지요. 그렇게 며칠을 되풀이하고 마지막까지 반대라고 했더니 씩 웃으며 ‘병신 XX’ 하더니 자기가 대신 찬성표에 찍고 투표함에 넣더군요.”

 그가 배치된 것은 백마부대가 있는 5사단이었다. 철책선 근무를 서게 된 첫 날, 통일의 장벽을 마주하고 복받치는 설움에 한없이 오열했다. 그리고 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민족의 통일과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아버지를 그렇게 죽게 내 버려둔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을 너무나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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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민족지도자 장준하선생의 아들로 잘 알려진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요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장호준 목사가 주문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살라’는 것이다. 장준하선생의 저서 '돌베개'를 들고 있는 장호준 목사. 2010.01.19. <사진=교회일보 제공> robin@newsis.com
 제대후 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988년 싱가포르에 갔다. 본래 목적은 공부였지만 “목사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공부보다는 일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동남아 일대에서 선교사역을 한 그는 주로 마약중독자 상담을 하거나 여유있는 싱가포르 중국교회를 졸라 동남아 다른 나라의 가난한 지역에 선교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했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94년 귀국한 그는 직접 교회를 개척한 장인의 뜻에 따라 ‘세습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은 것처럼 내내 불편했다. “내가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교를 위해 강단에 서면 나한테 선물을 했거나 잘 해준 교인들의 얼굴만 보이는데 무슨 목회가 되겠어요?”

 ◆ “목사와 스쿨버스기사는 아침형 인간”

 기장 경기노회와 UCC의 파트너십으로 미국에 올 기회가 생긴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2007년부터 스쿨버스를 운전하며 목회하는 이중생활을 그는 만끽하고 있다.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오전과 오후 업무 사이 시간도 넉넉하고 일과를 마치면 잔업도 없다. 심지어 운전대를 잡는 시간도 그에게는 달콤한 여유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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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링톤(美코네티컷주)=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54 유콘 스토어스 교회)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생업을 위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스쿨버스 예찬론자다. 목사와 스쿨버스 기사는 똑같이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기때문이다. 오전과 오후 업무 사이 시간도 넉넉하고 일과를 마치면 잔업도 없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도 그에게는 달콤한 여유를 제공한다. 2010.01.19.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아침나절 고요속에 코네티컷의 아름다운 전원을 누비며 운전하는 1시간 20분은 명상을 할 수 있을만큼 완벽한 내 시간입니다. 게다가 미국의 스쿨버스는 ‘천하무적’이지요. 스쿨버스가 서면 양방향 모든 차량이 옴짝달싹 못하거든요.”

 방학과 쉬는 날을 빼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날은 일년의 절반인 182일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방학중 운영되는 서머스쿨이나 여러 행사 목적으로 임대된다. 시간여유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요즘 그는 부쩍 ‘민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 역사를 가진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민족의 정의는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선친이 설파한 ‘민족주의자의 길’을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가 장기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은 1.5세와 2세를 위한 역사교육이다.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후세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미래가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는 역사의 퇴행입니다. 친일을 감추고 3선개헌과 유신으로 헌법을 배반한 박정희의 역사로 되돌리고 있지 않은가요.”

 장호준 목사는 “잘못된 역사의 바탕에는 기득권이 있다. 되풀이되는 기득권의 역사는 민중의 힘, 국민들의 깨우침으로 끊어야 한다. 50여년전 쿠데타를 통해 뿌려놓은 박정희의 씨앗을 생각해보라.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이 가장 소중한 이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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