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차일혁 경무관, 고맙습니다…9월의 호국인물 현양식 현장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4-09-05 16:34:55  |  수정 2016-12-28 13:20:00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9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차일혁 경무관의 추모 현양행사가 4일 전쟁기념관에서 거행됐다. 6·25전쟁에서 경찰은 육군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 1만58명(경찰은 행방불명자 등을 포함 1만7000명 추산)을 기록했는데, 전쟁기념사업회는 경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일혁 경무관을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경찰악대의 연주 속에 유족인 차길진 회장(차일혁기념사업회)의 헌화 분향을 시작으로 각계 인사들이 뒤를 이었다. 경찰총장을 대신해 홍익태 경찰청 차장, 나선화 문화재청 청장,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정용선 경찰교육원장, 구재태 재향경우회 회장, 최기문 전 경찰청장, 전옥자 대한민국경찰유가족회장,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강성원 사무총장, 대한불교 조계종 화엄사 효광스님, 우범스님, 중앙경찰학교 학생대표, 넥센 히어로즈 프로야구단 남궁종환 부사장, 현대중공업 관계자 등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차례로 헌화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전란 중에 화엄사를 비롯한 국보문화재를 지킨 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현양행사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했다”며 “문화재청의 본래 목적을 국민들에게 선양해야하는 동기에 대해 굳게 확신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화엄사 효광스님과 우법스님은 헌화하며 고인을 공덕을 기렸다.

 이영계 전쟁기념관장은 “독립운동과 6·25전쟁에서 남한 유일의 발전소였던 칠보발전소를 탈환하는 등 많은 공훈을 세우고, 전쟁에서 남다른 인간애와 문화사랑을 실천한 차일혁 경무관은 후세에 길이 남을 정신유산을 남겼다”며 그 뜻을 기렸다. 구재태 재향경우회장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차일혁 경무관을 기리고 투병중인 그분의 장손인 차길진 회장이 쾌차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유족대표인 차길진 회장은 의료진의 만류에도 행사에 참석, 박수를 받았다. 

associate_pic
 차길진 회장은 “진정한 영웅은 전장에서 이름 없이 숨져간 수 많은 6·25 무명용사들”이라며 “오늘 현양행사는 그 분들을 대신 기리는 행사”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인사했다.

 한편 이날 넥센 히어로즈 프로야구단의 남궁종환 부사장이 참석, 헌화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넥센은 천적인 NC를 상대로 박병호가 무려 4개의 홈런을 축포처럼 쏘아 올려 관심을 끌었다.  

 차일혁기념사업회는 26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에서 호국인물선정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광복 후 건국기에 항일건국운동과 6·25전쟁 중 칠보발전소 탈환 등 전사적 의의를 재조명할 계획이다.  

 ◇차일혁은?

associate_pic
 1920년 7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차일혁 경무관은 홍성공업전수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6년 조선인 교사를 연행하던 일본 고등계 형사를 구타하고 17세에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조선의용대에서 항일유격전 활동을 펼치다가 광복 이후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악명 높은 일본 형사 사이가, 미와, 츠보이 등을 저격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앞장섰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0월 전북경찰국 제 18전투대대장(경감)에 투신해 지역 내 빨치산 토벌작전에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특히 1951년 1월 남한 유일의 정읍칠보발전소 일대를 빨치산 2000여명이 포위하자 75명의 소수 인원을 이끌고 적을 향해 돌진했다. 50여일 동안 전투를 치르며, 마침내 빨치산을 격퇴하고 발전소를 탈환했다.

associate_pic
 1953년 9월 야간전투 때는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제 2연대장(총경)으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을 교전 3시간 만에 토벌해 빨치산들의 기세를 크게 꺾으며 토벌작전을 사실상 종료시켰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53년 화랑무공훈장, 1954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특히 차 경무관은 빨치산 토벌 당시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사찰을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에 문짝만 태우는 등 필사적으로 대처해 화엄사를 비롯해 천은사, 쌍계사, 금산사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슬기롭게 지켜냈다.

 “절 태우는 데는 한 나절이면 족하지만, 세우는 데는 천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는 고인의 발언은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한 학식과 품성을 짐작케 한다.

associate_pic
 이러한 고인의 업적을 기려 2008년 10월 문화재청은 고찰을 구한 그의 공로에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고, 시인 고은도 공덕시를 지어 업적을 기린 바 있다. 화엄사 경내에는 차 경무관을 기리는 공덕비가 건립돼 있다.

 충주에서 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때 가정형편이 어려운 불우청소년들을 위해 충주직업소년학원을 설립해 인재를 배출했고, 작전성공으로 부대에 포상금이 내려지면 이를 전액 기부하는 등 따듯한 인간애를 보여줬다.

 고인은 1954년 전투경찰에서 물러났고, 1958년 공주 금강에서 하계훈련작전 중 순직했다.

 kafka@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

사회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