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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이어령 읽으면 보인다, 세계문자심포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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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4-10-24 08:03:00  |  수정 2016-12-28 13: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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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필기도구와 소재, 세컨드위캔드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66>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가운데 생물체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닮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문자일 것이다. 문자를 토박이 한국말로 ‘글씨’라고 하면 더욱 실감이 날 것이다. 그것은 ‘씨’처럼 재생하고 증식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1976)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문자를 생물유전자의 ‘진(gene)’에 빗대어 ‘밈(meme)’이라고 명명했다. ‘문화유전자’를 뜻하는 조어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져 있는 밈은 물론 산스크리트의 밈도 있지만 그리스 알파벳의 표음문자와 중국의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의 기원은 바로 문자라는 한자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글을 의미하는 ‘文’(문)은 가슴에 문신을 새긴 모양을 나타낸 상형(象形) 자라고 한다. 인간은 돌에 점토에 파피루스, 양가죽, 그리고 대나무와 종이에 글씨를 쓰기 전에 자기 가슴에 의미를 적었다. 그게 바로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문신(文身)이다. 몸에 새기는 글자 인간이 최초에 쓴 문자에서는 내 몸의 피와 아픔이 따랐다. 그게 진정한 문자의 문이고 거기에서 문화와 문명과 문자가 붙은 모든 힘이 나왔던 것이다.

 한자가 아니라도 글이라는 말에는 손톱으로 자신의 몸을 ‘긁는다’의 뜻이 숨어 있다. ‘긁다’에서 글이 나오고 그림이 나오고 그리움이 탄생한다. 영어의 ‘라이팅(writing)’도 일본의 ‘가꾸(かく: 쓰다, 그리다)’도 모두 뾰족한 무엇으로 ‘긁는다’의 뜻에서 나온 말이다. 모바일 컴퓨터 시대에서도 사용하는 바로 그 스타일러스 펜(stylus pen)이다. 

 손글씨가 활자가 되고 그것이 액정판의 폰트가 되면서 점점 문자는 우리의 몸에서 멀어진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가 자신의 몸에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비밀 지도를 문신으로 새겼던 것처럼 문자를 문신처럼 내 몸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고는 우리는 어두운 문명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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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성한 문자, 이준열
 문자의 ‘문’은 글자들이 서로 합쳐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사람 人(인)’은 문(文)이고 ‘어질 仁(인)’은 자(字)인 것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결합돼 무수한 글씨를 증식하는 것과 같다. 문자는 말과 달라서 인위적으로 증식시키는, 말하자면 내가 자식을 낳는 것처럼 생명을 지속시켜 가는 힘인 것이다. 말은 죽지만 거기에서 태어난 문자는 밈을 타고 대를 이어간다.

 인쇄술 이후로 또 한 번 디지털 기술에 의한 문자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보통 문자의 역사는 회화문자 ‘픽토그램(pictogram)’→표의문자 ‘이디오그램(ideogram)’→표음문자 ‘포노그램(phonogram)’의 단계로 진화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유턴해 표음문자가 표의문자로, 표의문자가 아이콘의 회화문자로 유턴하는 것을 우리는 액정 위의 문자들에서 읽을 수 있다. 

 한글은 소리로 읽을 수 없는 순수한 시각문자로 변해 ㅋㅋㅋㅋ도 되고 ㅎㅎㅎㅎ도 돼 소리 없는 침묵의 글씨 형상의 문자로 변하고 있으며, 그와 반대로 원래의 표기를 무시하고 ‘추카추카’, 그리고 문자 끝에 ‘ㅇ’을 붙여 ‘나둥’과 같은 이상한 글이 생겨나기도 한다. 

 수많은 이모티콘과 자판 부호를 이용해 얼굴 표정을 만들어 감정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문자 구실을 하는 도시 건축물과 도로표지 같은 픽토그램이 기존의 문자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각기 고유한 자신의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비상문 표지판의 픽토그램에서 도망치는 사람의 아이콘은 완급을 나타낸다. 뛰는 모습이 제일 빠르게 보이는 것은 대만·홍콩 순이고, 중간이 한국·일본, 그리고 제일 느리고 태연하게 보이는 것이 중국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자를 여인의 모습으로 바꾼 것도 있다. 문자의 죽음과 해체인가, 새로운 문자의 혁명인가, 이 기로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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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자의 주술성, 이푸로니
 이상,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문자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글의 일부다. 세계문자심포지아 2014 개최를 기리며 썼다. 더불어 7가지 제언도 했다.

 문자는 과연 말에 종속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인가(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지적한 문자 비판에 대해서 하브록이 시도한 것처럼 그에 답해야 한다)    문자학 분야를 개척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지금까지 소쉬르 등 음성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이 주류를 이뤄 왔지만, 자크 데리다의 경우처럼 그래머톨러지 같은 새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겨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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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탁본책상, 이민하·정희우
 문자에서 신체성을 회복한다(한글을 비롯, 새로운 서체와 손글씨의 회복으로 문자에 신체성을 부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문자의 장식화와 생활화(아름다운 문자 디자인의 상품화는 물론, 일상생활용품의 한글화 등으로 문자의 매력을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디지털 환경과 기술의 변화에 맞는 문자의 개혁(스티브 잡스의 출발이 폰트 그래픽 분야였듯이, IT와 접목된 문자 인식과 관심은 모든 분야에 응용되는 발상법과 창조성을 계발할 수 있다)

 시서화(詩書畵) 일치의 전통을 살린다(동양에는 그림과 시, 그리고 글쓰기의 서예가 하나로 융합한 장르가 있었다. 그 전통을 살려 문인, 화가, 서예 디자인 분야가 연대를 이룬 통합적 문자 연구와 실천이 요구된다)

 군사력, 경제력에서 문자력(文字力)의 제3 문화파워의 선언(부국강병의 두 파워로 움직여온 낡고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문화파워의 하나인 문자파워의 도래에 주목하고 그 준비를 해야 한다. 문자는 종래의 생산자본과 똑같이, 문화를 보존, 교환, 증식, 생산하는 일을 하며, 문화 간의 경쟁으로 다문화를 포용하는 새로운 평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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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웃음 낱말의 미지의 지도, 노현지
           세계문자심포지아가 24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주변에서 펼쳐진다. 문자와 예술이 만나는 현장이다. 각국의 학문어를 중심으로 한 언어정책을 소개, 비교, 검토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그 결과를 반영해 ‘세계 문자 서울선언’을 채택한다. 또 탁자를 중심으로 한 22개의 야외 퍼포먼스와 이벤트, 세계 문자 주제별 9개 인포그래픽 전시, 세계문자 영상, 그리고 개·폐막 야외 공연까지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기면서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다양성을 체감할 수 있는 축전이다.

 다시, 이어령 교수다. “한국의 한글과 일본의 가나는 표의문자의 한자에서 독립한 독자적인 나라글자다. 하지만 한자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한자 체계를 새롭게 보완 접목하는 것으로 발전돼 왔다. 우리를 여기 모이게 한 세계문자심포지아(World Script Symposia)의 ‘문자’는 한자의 ‘文字’이고 ‘심포지아’는 역시 라틴 알파벳 ‘symposia’를 한글로 적은 것이다. 알파벳과 한자의 양대 밈을 한글 밈의 보자기로 싸버린 것이다. 어떤 문자보다도 세계의 다양한 밈을 포함시켜 융합하는 데 한글만 한 문자가 없다.” 

 온라인편집부장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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