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 강원

[인터뷰]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장 "사북사건 35년만의 명예회복"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5-03-09 07:00:00  |  수정 2016-12-28 14:40:36
associate_pic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이원갑 강원 정선군 사북민주항쟁동지회장(75)은 8일 강원랜드의 전통 한식당 운암정 바로 뒷편에 지난 1980년 10월 세워진 '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 기념비석 앞에서 사북사건의 무죄 선고가 내려진 법원의 판결서를 들고 있다. 2015.03.08.  casinohong@newsis.com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이원갑 강원 정선군 사북민주항쟁동지회장(75)은 재심을 통해 지난 1980년 사북사건의 주모자로 몰렸다가 무혐의 결정이 내려지자 "35년 만에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을 통해 신군부에서 광부들의 폭도로 매도되었다가 정당한 권리투쟁으로 명예회복 된 것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당시 피해자들에게 위로도 되고 자부심도 든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0년 4월 이른바 '사북사태'의 주모자로 계엄군에 구속영장도 없이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 1년5개월의 옥살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선고를 받은 이씨의 당시 나이는 40세였다.  

 지난 1980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사북사태의 진원지' 사북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정선군에서 세운 '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 1980년 10월5일' 기념비석 앞에서 지난 8일 이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법원의 사북사건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나.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값진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함께 무죄를 선고 받은 동료 신경씨와 더불어 사북사건의 모든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사북사건의 진실을 잘 모르던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집권을 앞둔 신군부를 위해 공권력을 남용한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사북사건이 종료된 뒤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없을 것이라고 당시 도지사는 약속했다. 그러나 12일 뒤 계엄군은 총칼을 앞세워 불법으로 우리를 강제 연행해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20일간 자행했다. 법원에서 계엄군의 이런 명백한 불법을 인정하고 역사를 바로 잡아 준 점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1980년 당시 계엄군이 저지른 불법 행위는 어느 정도였나.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1980년 4월 24일 사태가 해결되고 5월 6일 오후6시 당시 읍장이 회의를 한다고 해서 읍사무소에 참석했다. 읍장이 인사말을 하는 순간 문이 열리며 수십명의 계엄군이 총칼을 앞세워 "불법집회로 모두 체포한다"고 연행해 갔다. 당시 주모자로 100여명이 계엄군에게 붙잡혀가 남녀를 불문하고 쉬는 시간도 없이 물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옆방에서 나는 비명 소리를 매일 밤 듣다보니 모두 죽음을 생각해야 했다. 군화발로 걷어차는 것은 예사고 몽둥이와 총으로 내려치고 타올을 얼굴에 씌우고 고춧가루를 넣은 주전자로 물고문을 했다. 이 때문에 몇 사람은 출소 뒤 요절하기도 했고 수십명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고생하고 있다. 구속영장은 체포 14일 만인 5월 20일 발부됐다."

 -당시 사북광업소의 실상은 어땠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약 10년을 근무하고 사북광업소에 1973년 7월에 입사했다. 그런데 기가 막혔다. 광업소측은 석탄 증산에 혈안이고 광부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안전을 위한 시설투자도 없고 채탄을 하다 광부가 죽으면 죽은 광부에게 사고책임을 덮어 씌웠다. 또 목욕탕이 없어 시커먼 얼굴과 몸 그대로 집에 가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살았다. 사택은 옆집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이고 겨울이면 마실 물 때문에 고생이고 회사는 임금착취가 심했다. 여기에 암행독찰대를 두고 사생활까지 감시했다.

associate_pic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이원갑 강원 정선군 사북민주항쟁동지회장(75)은 8일 강원랜드 전통 한식당 운암정 뒤에 지난 1980년 설치된 역사적인 '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기념비석이 방치되고 있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2015.03.08.  casinohong@newsis.com
 한 마디로 사북광업소 광부들은 어떤 지시도 그대로 따르고 감히 이의 제기도 못하는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근무태만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것도 억울한데 징계위원들은 의자에 앉았는데 징계를 받는 광부는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노조는 광부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전혀 대변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부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이런 판국에 노조 지부장 선거도 부정이 밝혀지고 파출소장(당시 지서장)도 광부들에게 거짓말 한 사실이 밝혀져 1980년 4월의 사북은 시한폭탄이었다."

 -1980년 4월의 사북사건에 대한 의미를 평가한다면.

 "1980년 사북사건이 발발한 뒤 탄광업주들의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주면 주는데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던 광부들 몇 천명이 억압받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자 보는 눈이 달라졌다. 막장에 쌓였던 분노가 지상에서 표출되자 엄청난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특히 집권을 앞두고 있던 신군부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사북사건 주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끝나자 전두환 대통령은 비밀리에 사북을 깜짝 방문했다.

 광부 체육대회를 개최토록 하고 사북 시가지에서 지장산 사택입구까지 도로 포장을 했다.그리고 대통령이 다녀간 뒤 목욕탕을 만들고 자녀 장학금도 신설되었으며 아파트단지도 들어섰다. 광부들의 위상이 조금 달라졌다. 지난 1995년 3.3투쟁이 폐광특별법을 제정하고 강원랜드가 설립된 것도 그 뿌리는 1980년 4월의 사북이었다."   

 -대통령 방문 기념비석이 방치되어 있다.

 "가슴 아프다. '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 기념비석은 역사적인 증표다. 강원랜드 함승희 사장이 운탄도로인 하늘길을 명품길로 만든다고 하는데 함께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당시 정선군에서 기념비석을 세웠는데 누구 하나 관심도 없어 비석의 빛이 바래고 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강원랜드나 정선군에서 기념비석 옆에 왜 이 비석이 설치되어 있는지 간단한 설명이라도 붙여 놔야 한다고 본다.

 지금 강원랜드 운암정 식당과 호수공원이 과거 동원초등학교 부지였고 지금의 호텔과 카지노장은 과거 사북광업소 지장산 사택단지였다. 그 가운데 유일한 흔적이 이 기념비석이다. 강원랜드가 하늘길을 스토리가 있는 명품길로 만든다는데 이 비석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사북의 역사이고 강원랜드의 살아 있는 역사가 바로 기념비석이다."

 한편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는 지난달 11일 사북항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징역 2년을 각각 선고받은 이원갑(75), 신경(73)씨의 1980년 계엄하의 판결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이씨 등은 지난 2005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계엄당국이 과도한 공권력으로 노사정 합의를 일방적으로 무시해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국가는 당시 연행 구금된 관련자와 가족들에게 인권침해와 가혹행위에 대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casinohong@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

전국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