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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이대귀 대표 "우리들의 낙원은 지금 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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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3-23 07:35:31  |  수정 2016-12-28 14: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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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글/손대선 이현주 기자 사진/박동욱 기자 = 낙원상가를 처음 본 사람들은 건물외양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연건평 1만2000평의 15층짜리 이 건물 1층은 기둥만 남긴 채 모두 차도다.

 1969년 건립 당시 도로 위에도 건물을 세울 수 있다는 다소 엉뚱한 건축법에 따라 이 모양새가 나왔다고 한다.

 3층까지는 상가가, 그 위로는 300여세대의 아파트가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4층에는 지금은 노인들을 위한 전용관 역할을 하는 '허리우드클래식-실버영화관'이 자리잡고 있다. 지은 시기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주상복합건물의 효시쯤 되는 셈이다.

 낙원상가는 동시에 '악기들의 천국'으로 불린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 건물에는 식당가가 형성돼 있었고, 악기와는 별 상관없는 잡화점도 꽤 있었단다.

 그러다 80년도 초반 남대문시장이 큰 불이 나면서 그곳에 있던 악기상들이 대거 이곳으로 이전했다. 시중 악기가격보다 15~30% 싸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딴따라'(음악인)들이 몰려들었다.

 이 때부터 낙원상가는 음악인에게는 성지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됐다.

 '한국 록의 대부'인 신중현과 그의 아들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이곳에서 기타를 사고팔았다. 윤도현, SES 유진 같은 이들은 '낙원상가의 키드'이다.

 단일건물에 300곳이 넘는 악기상들이 입주했던 호황기는 기네스북에 남겨져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낙원상가의 전성기는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다. 뉴타운 재개발·재건축이 대세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만해도 낙원상가는 철거가 유력했다. 도시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존재의 이유를 증거하는 주인공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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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의 절반 남짓한 수이지만 여전히 건재한 200여개의 악기상들이 존재를 지속케 하는 원동력이다.

  지난 19일 오후 낙원상가에서 만난 공연기획사 케이스테이션(enakwon.com) 이대귀(40) 대표는 낙원상가의 새로운 변신을 꿈꾸는 인물이다.

 그는 2011년부터 낙원상가 4층 옥상에 야외 예술무대 '멋진 하늘'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천지에 공연할 수 있는 곳이 지천인데 왜 하필 낙원상가였을까.

 이 대표는 낡은 건물은 무조건 허물고 그 자리에 높다란 최신빌딩을 지어야만 '장땡'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대신 역사성을 중시한다.

 그는 "낙원상가가 진짜 '서울'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중의 서울이다. 서울의 남녀노소 희노애락이 있는 곳이 낙원상가"라며 "탑골공원의 어르신과 인사동의 외국인, 젊은이들이 어우러지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이런 것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리적으로 보면 낙원상가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번에 위치해 있다. 서울 외곽 어느 곳에서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낙원상가는 과거에 구직, 정보, 지식창고 역할을 했다. 음악인들이 인맥관리도 이곳에서 다했다. 이 곳 역사를 빼놓고 한국 음악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재생의 추진 모델이 될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지역' 중 하나로 낙원상가를 점찍었다.

 삶의 흔적이 담긴 지역자원을 보전하면서 관광명소로서의 활성화를 모색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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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표는 변화된 서울시의 도시정책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이 대표는 "(악기상가로는)동양 최대의 규모이자 거의 유일한 건물이다. 과거 음악 산업에서 시스템적인 면에 있어서 대부분을 차지했다. 병원, 교회, 학교 등에서 필요한 음향시설은 대부분 여기에서 주문했다"며 "음향 자재, 악기와 관련해서는 여기가 독보적이었다. 유명 뮤지션 중 여기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울 안에서 정말 멋진 공간 중 하나다. 그래서 '멋진 하늘'이라는 이름도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낙원상가를 들락거리면서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 첫번째 기타를 산 곳이 낙원상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IT업계에 몸 담고 있던 이 대표는 음악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웠다.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동하면서 음악프로듀서일을 겸했다. 각종 공연이벤트도 기획하면서 활동반경을 넓혔다.

 그러다가 '필'이 꽃힌 게 낙원상가다. 허리우드클래식-실버영화관 앞에 방치된 200평 남짓한 공간을 활용해 뭔가 이뤄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대표는 "2011년 봄에 이 건물을 관리하는 대일건설주식회사의 CEO와 만날 기회가 생겼다. 대일건설주식회사는 낙원상가의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펼치고 있었다"며 "나는 음악 산업이 활성화되고, 젊고 활발한 곳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학생들이나 직장인 밴드 등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 연습공간, 녹음실 등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며 "상가번영회와 악기상들도 만나 열심히 설득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허락하셨다. 그 분들이말로 멋진 하늘을 만든 멋진 분들이다"고 말했다. 

 낙원상가는 지은지 40년이 넘었음에도 현재에도 어지간한 현대식 건물보다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립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탱크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건물안전진단에서도 최상위권인 B등급을 받았다. "앞으로 100년 정도는 끄떡없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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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는 꿈이 있다.

 "낙원상가를 탑골공원, 인사동과 연결시켜 젊은이, 노인, 외국인 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대표는 "낙원상가는 지금 변신 중이다. '우리들의 낙원상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사진공모전, 버스·지하철 광고 등 다양하게 홍보하고 있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앞서나가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악기란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만 달라져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인과도 같다. 주인을 잘 만나면 명품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퇴물취급을 받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속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악기로 자리 잡은 낙원상가는 지금 또다른 변신을 준비중이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낙원상가에 들어와서 '멋진 하늘' 공간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일반 직장을 다니다가 2004년부터 음악 프로듀서, 작곡가를 병행했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낙원상가에 올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2011년 봄에 이 건물을 관리하는 대일건설주식회사의 CEO와 만날 기회가 생겼다. 대일건설주식회사는 낙원상가의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펼치고 있었다. 나는 음악 산업이 활성화되고, 젊고 활발한 곳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학생들이나 직장인 밴드 등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 연습공간, 녹음실 등을 만들고 싶었다. 상가번영회와 악기상들도 만나 열심히 설득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허락하셨다. 그 분들이말로 멋진 하늘을 만든 멋진 분들이다."

 -어떻게 설득을 했나.

 "낙원상가가 진짜 '서울'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중의 서울이다. 서울의 남녀노소 희노애락이 있는 곳이 낙원상가다. 탑골공원의 어르신과 인사동의 외국인, 젊은이들이 어우러지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이런 것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 산업도 마찬가지다. 낙원상가 건물 구성원 모두가 나를 믿고 맡겨준 셈이다. 내 이력에 대한 신뢰는 있었던 것 같다. 낙원상가는 어릴 때부터 20년 넘게 많이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닌 것 같다. 기타를 처음 산 것도 낙원상가다. 그런 과정에서 신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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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공연에 대해 말해달라.

 "대관은 수익형이 아니라 정말 실비 정도만 받고 저렴하게 제공한다. 대관료를 많이 받는 경우 북한 결핵환자를 돕는 유진벨 재단 등에 기부한다. 2011년 말에 오픈해 실제 공연은 5월부터 시작했다. 첫 공연은 버클리음대를 수학 후 돌아온 재즈 피아니스트 이지현씨였다. '멋진 하늘'의 무대 성격은 실력은 있지만 조명 받지 못한 뮤지션들에게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선한 무대라 반응이 좋았다. 외국인을 포함해 150명 정도가 관람했던 것 같다. 무대는 꼭 음악회 뿐 아니라 디너파티 등에도 종종 이용된다."

 -노인보다는 젊은 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일부러 노인을 배제한 의도는 없다. 노인에 대한 수요는 낙원상가 내 실버영화관에서 충족한다고 생각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장르인 뽕짝이나 트로트까지 할 여력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채로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원래 고려대에서 원예, 조경을 공부했다. 3학기 정도를 다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옮겨 경영학, 경제학, 전산을 공부했다. 그곳이 신설 학교여서 대학 문화가 없었는데 학생회장을 하면서 축제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부터 이런저런 기획을 하고 문화를 만들었던 것 같다."

 -'케이스테이션(K.STATION)'에 대해 소개해 달라.

 "크게 공연 사업팀과 제작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낙원상가에서의 공연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의 공연도 제작하고 기획한다. '마틴 어쿠스틱 기타 콘테스트'도 우리가 맡았는데 거기 출신들이 멋진 하늘에서 자주 공연하기도 한다. 2012년에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인사동 거리음악축제를 했다. '인사동을 걷다 음악을 만나다'가 모토였는데 멋진 하늘과 인사동 길거리, 쌈지길, 미술관 등을 30팀이 3일 동안 돌며 공연했다. 더 발전시켜 매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올해 다시 한 번 하려고 기획 중이다."

 -낙원상가를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

 "낙원상가를 탑골공원, 인사동과 연결시켜 젊은이, 노인, 외국인 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낙원상가는 지금 변신 중이다. '우리들의 낙원상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사진공모전, 버스·지하철 광고 등 다양하게 홍보하고 있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앞서나가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남기고 싶은 말은?

 "'멋진 하늘'은 자라나고 있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다. 꼭 음악이 아니어도 좋으니 많이 활용됐으면 좋겠다. 전시도 가능하고 파티도 가능하고 출판기념회, 작품발표회 등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들의 낙원상가'라는 말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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