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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마요르가에게 홀린 연출가, 연극 '맨 끝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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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10-25 11:50:56  |  수정 2016-12-28 15: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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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코끼리처럼 묵묵하다. 그래서 극단 '코끼리 만보'다. '생각나는 사람' '먼 데서 오는 여자' 등 묵직한 여운을 안기는 작품들로 목록을 채워왔다.  

 이 극단을 이끄는 김동현(50) 연출 역시 마찬가지다. 신중하고 섬세하다. 연극계에 말 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스페인 최고의 현대 극작가로 통하는 후안 마요르가(50)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다르다.

 마요르가가 좋다는 김 연출은 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빛이 총총해졌다. 예술의전당과 손 잡고 마요르가의 연극 '맨 끝줄 소년'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다. 2009년 '다윈의 거북이'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벌써 그의 작품을 네 번째 연출한다. '영원한 평화'(2012), '천국으로 가는 길'(2014) 역시 호평 받았다.

 김 연출은 "마요르가는 연극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연극은 응답이 아니라는 거지. 세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질문을 연극으로 옮긴다"고 소개했다. "대답을 하기보다 지극히 연극성으로 질문을 강력하게 사람"이라는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극작가인 마요르가는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수학처럼 정확한 틀 안에 사유를 담는다. 마드리드 왕립 드라마 예술학교 교수이자 라로카 데라카사 극단의 연출 겸 극작가다. 특히 '연극으로 철학하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맨 끝줄 소년'은 마요르가의 개인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때다. 한 학생이 시험지에 답 대신 '시험공부를 하지 못한' 이유를 제출한 것을 모티프로 삼았다.

 고등학교 문학 교사 '헤르만'은 학생들이 제출한 작문 과제 중 항상 조용히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의 과제물에서 희망을 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편의 소설 같은 클라우디오의 과제물에는 같은 반 친구인 라파의 가족에 대한 수상하고 위험한 욕망이 담겨있다. 클라우디오는 더욱 더 매력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 위험한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헤르만은 이런 클라우디오의 글쓰기를 멈추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스페인 최고권위의 막스상을 받은 이 작품은 시간과 장소는 물론 허구와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욕망을 섬세하게 그리는 영화감독 프랑수아 오종이 영화로 옮겨 2013년 국내 '인 더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하기도 했다.

 김 연출은 "마요르가는 다른 사람은 쉽게 못 만드는 강력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연극 연출가로서 소중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믿음이 크다"고 했다.

 무엇보다 영화와 시와 소설과는 다른 방식을 통해 연극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연극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연극의 매력을 연극 자체를 통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연출가가 극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게끔 만든다. 마요르가의 대본을 연극으로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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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요르가의 연극을 해석을 할 때도 극도로 치밀하게 해야 한다. 그 작품을 수용하는 연출과 배우들을 어떤 인식을 가지고 질문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 괴롭고 고생스럽죠. 그런데 어떠할 때는 즐겁기도 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극으로 옮겨졌는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글만 쓰다가 답답했는지 몇해 전부터 연출도 시작했어요. (웃음)"  

 김 연출이 대본에 없는 것 중 사용한 장치는 코러스다. "세 명의 배우가 직접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캐릭터들의 갈등이 고조될 때의 심리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마요르가가 더 각별한 까닭은 연극을 만들어나가는데 강력한 힘과 애정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철학 박사, 수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연극을 통해 삶에 대한 질문과 응답을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전했다.

 '맨 끝줄 소년'은 쓰여진 글이 과연 진짜냐, 가짜냐고 묻는 것이 큰 질문이다. 소설을 사랑하는 선생이 소년에게 소설을 가르치고, 그 소년은 자신이 바라본 풍경을 글로 옮기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주요 갈등을 빚게 되는 건 소년이 사실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닌, 자기의 사상과 자신만의 형식으로 옮기면서 비롯됐다.

 "클라우디오는 자신의 친구인 라파의 어머니를 훔쳐보면 글을 써나간다.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이 돼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데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글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인지 헷갈리게 된다."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어쩌면 아름답게 느껴지는 묘한 사랑과, 연민도 녹아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극장 안에서 구현돼야 한다.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상상이 허용되는 장소들이 나와야 하는 거지. 진실과 가상 혹은 진짜와 가짜가 이 무대 펼쳐지는 거다."

 헤르만과 클라우디오는 실제 세계보다 가상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헤르만 역시 소설가를 꿈 꿨으나 실패하고 클라우디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  

 "두 사람은 가상과 상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거기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 세상에는 현실과 진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짜와 상상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관객마다 다른 답안을 낸다. "특정한 누군가의 해석이 아니라 관객의 받아들이는 그대로가 중요하다. '다윈의 거북이'에서 보듯 마요르가의 작품 제목은 쉽다. 근데 단순할수록 수십가지 질문이 나온다." 그런 정직하고 순결한 질문이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해석을 가하게 하고 그게 연극의 재미라고 김 연출은 눈을 빛냈다.  

 '맨 끝줄 소년'은 예술의전당 제작 공연 시리즈의 하나인 'SAC 큐브 2015'로 선보인다. 11월10일부터 12월3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박윤희(헤르만), 전박찬(클라우디오), 백익남, 김현영, 염혜란. 1만~5만원. 02- 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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