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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서태지와 카뮈의 '시대 유감'…뮤지컬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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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07-24 17:32:52  |  수정 2016-12-28 17: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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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창작 뮤지컬 '페스트'(대본 김은정 노우성·연출 노우성)는 명작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천재 뮤지션이자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는 가수 서태지의 노래를 엮은 국내 첫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특히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올 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뮤지컬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야심찬 기획이었지만 대본과 연출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공연제작사 스포트라이트(대표 김민석·책임 프로듀서 송경옥)가 작품성에 더 비중을 두면서 오히려 길을 잃은 모습이다.  

 창작 초연이라 개작의 가능성은 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아쉬움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주요 사용된 넘버의 제목을 키워드로 다듬어야 할 부분을 짚어봤다.

 #시대유감(서태지와아이들 싱글 '시대유감'(1996) 수록곡. 본래 4집 '컴백홈(1995)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노랫말이 사전심의에 걸려 가사를 빼고 반주만 실었다.)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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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페스트'의 가장 유감스런 부분은 각색이다. 카뮈의 원작은 2차 세계 대전 직후가 배경인데 뮤지컬은 근미래인 2028년으로 설정했다. 모든 걸 보존하지 않고 파괴시키는 바람에 과거의 바이러스인 페스트에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내용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아날로그에 대한 열망이 고루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과거를 보존하는 박물관을 찾는 것조차 촌스럽게 여겨지는 시대를 표현했는데, 흐름을 주도한 서태지의 아우라와 삐그덕거린다.  

 캐릭터에 대한 표현력이 특히 아쉽다. 원작에서 냉철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이는 의사 리유(김다현·손호영박은석)는 내내 무기력하다.

 여자 캐릭터의 해석에 대한 한계도 보였다. 원작에서는 남자였으나 뮤지컬에서는 여자로 설정한 타루(오소현·피에스타 린지)는 식물학자인데 학자로서 면모가 크게 부각이 되지 않는다. 우려했던대로 결국 리유와 로맨스 상대로 전락한다. 페스트 환자를 위해 보건대에서 활약하다 숭고한 죽음을 맞는 희생양으로 그려진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잔(김주연) 역시 페스트 치료약의 임상실험 대상으로 잔인하면서도 숭고한 죽음을 맞는다. 주요 여성 캐릭터 중 하나인 페스트가 발병한 오랑시의 시장 리샤르(황석정·김은정)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악렬한 캐릭터다.

 역시 악한 캐릭터이자 남성인 악덕 기업 CEO '코타르'(김수용·조휘)가 미약하나마 인간적으로 납득할 만한 부분이 부여되는 것과 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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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노우성 연출은 전작 '셜록홈즈2'에서도 여성들의 죽음을 잔인하게 다뤄 일부 관객의 아쉬움을 샀다. 역시 그가 연출한 뮤지컬 '쿠거'는 하지만 중년 여성들의 고민을 발칙하게 풀어냈던 만큼 이번 작품의 여성관이 안타깝다.  

 #슬픈아픔(서태지 4집 '컴백홈'(1995) 수록곡)

 "내가 여기 있는 건 무슨 뜻일까. 이 많은 슬픔들은 무얼 뜻하나"  

 1막 마지막에서 앙상블들과 함께 부르는 '라이브 와이어'와 '코마'의 웅장함은 서태지 곡들이 뮤지컬 넘버로 멋지게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서태지의 목소리조차 사운드로 활용하는 그의 곡 때문에 뮤지컬 넘버로 옮기기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가사와 곡의 결합이 쫀쫀하다.

 하지만 무려 155분(인터미션 20분 제외)에 달하는 러닝타임 통안 주요 캐릭터들이 노래를 많이 하지 않는다.  

 주연 배우들이 여기 무대에 있는 건 무슨 뜻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부분 기자 역의 랑베르(김도현·윤형렬)의 대사로서 배경과 내용이 설명되는, 낭독극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곡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명분을 위한 설명인 듯한데, 사족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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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박은석, 윤형렬, 오소연 등 가창이 뛰어난 배우들을 캐스팅해놓고 노래를 부르게 하지 않는 점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리유는 주연배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넘버가 적다. 이와 함께 앙상블들의 동선은 그들이 거기에 있는 건 무슨 뜻일 지 고민하게 만든다.

 #너에게(서태지와아이들 2집 '하여가'(1993) 수록곡)  

 "너의 말들을 웃어넘기는 나의 마음을 너는 모르겠지"   

 기존 가요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중 노래의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은 작품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사례는 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가져온 '맘마미아!'다. 아바 한번 언급하지 않지만 이 그룹의 특징인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그대로 녹여냈다.

 '페스트' 역시 분위기는 다르지만 이런 전철을 밟고자 했다. 서태지 음악이 담고 있는 저항과 연대, 카뮈가 말하는 저항과 연대를 통하게 만들고자 했다.

 작품은 내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음악보다, 대사로 이를 풀어내려고 하니 느슨해진다. 그리고 무거운 극의 긴장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과장된 밝음을 지닌 타루의 '아재 개그'를 떠올리게 하는 말장난도 극의 흐름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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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특히 '너에게' 장면은 민망했다. 감정마저 국가가 통제하는 시대에 사랑을 하는 연인에게 과거의 결혼 문화 등을 이야기해주는 신이다.

 타루와 과거 박물관 큐레티어 그랑(조형균·정민·박준희)은 '너에게'가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컴백홈' 등 서태지의 대표적인 춤을 선보인다. 서태지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작품의 무게감을 오히려 덜어내는 일이다. 서태지 정신은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이야기와 넘버들에서 나오는 거지, 자잘한 재미 요소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브 와이어(서태지 7집(2004) 타이틀곡 '라이브 와이어')

 "상쾌한 내 샤워 같은 소리로 / 이 메마른 땅 위에 비를 내려 적시네 / 이젠 설렌 마음이 / 내게 다시 시작되는 걸 느껴 / 내 속에 삼킨 라이브 와이어"

 단점이 눈에 띄지만 6년 간 창작뮤지컬 제작이라는 고난의 과정을 뚝심 있게 밟아온 점은 인정할 만하다. 특히 로맨스 위주로 쏠리는 뮤지컬 흐름에서(리유와 타루의 사랑이 양념처럼 들어가 있어 아쉽지만) 저항과 연대를 모티브로 삼은 점은 설렘을 안겼다.

 하지만 메마른 뮤지컬 신에 진정한 단비를 뿌리기 위해서는 기획과 의도의 넘어 완성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다만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연상케 하는, 그로테스크한 무대 장치는 서늘하면서 강렬함을 남겼다. 9월30일까지 LG아트센터.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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