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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법률가들' 저자 김두식 경북대 법학 교수 "사법농단, 헌법 탓
한국 법조계 상황
광복시까지 추적"

"해방 당시 조선인 판검사는 전체의 30% 미만이었다. 일본사람들이 거의 기소하고 재판했다. 그러다가 해방 후에 일본인들이 떠나고 인물·제도·돈이 부족해진다. 공인된 자격을 지닌 친일 경력의 법조인들은 법조계뿐만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 국방 등 전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두식(51)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일 서울 서교동 카페창비에서 열린 '법률가들' 출간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광복 후 법조계 형성 과정을 치밀하게 복원한 저작이다. 우리나라의 법조계가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뿌리를 추적했다. 데이터베이스의 기준이 되는 기간은 1945년 광복 당일부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까지로 잡았다. 1945년 8월15일부터 1961년 5월16일까지를 기준으로 판사 596명·검사 505명·변호사 1904명 등 약 3000명의 법률가가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됐다. 조사에만 3년이 넘게 걸렸다. 일제강점기부터 6·25동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법조계의 중요한 궤적을 인물을 중심으로 따라갔다.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많이 봤다. 인생에서 빛이 길면 그림자도 길다. 다면적으로 사람을 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사람 인생이 어쩔 수 없다고도 느꼈다." 초창기 대한민국 법률가들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제1법률가군은 광복 후 한국 법조계의 최상층부를 형성한 이들이다.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를 합격하고 판검사를 지냈다. 제2법률가군은 조선변호사시험 출신, 제3법가군은 서기 겸 통역생 출신으로 광복 직후 판검사로 임용된 자들이다. 제4법률가군은 해방 직후 잠시 존속한 사법요원양성소 출신 등 해방 후 법률가 자격을 갖춘 이들이다.김 교수는 "사람 이야기를 통해 법률, 제도, 시대상을 재현하고 싶었다"며 "과연 존경할 만한 판검사,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는 시대였는지 생각하면서 썼다. 당시 법조계의 풍경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법부의 구조·현상 등을 상당부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짚었다. "법 관련 독자들 만을 겨냥한 책은 아니다"며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서점에 가 보면 거의 똑같은 디자인에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있다. 책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조금 힘들더라도 독서하기 어려운 책을 읽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현안을 이야기하려고 쓴 책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사법농단' 사건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법원에서 진행되는 여러가지 일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과거에는 사법부의 독립을 이야기했다. 헌법상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위계질서가 명확해서 제일 밑에 있는 판사들은 자기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 법관 개인의 독립을 놓고 중요한 논의의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snow@newsis.com

뉴시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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