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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방송③] 北 주민, 한국 노래부터 듣다 점차 뉴스 쪽으로

등록 2017.10.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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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4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고 5일 보도했다.  사진은 노동신문이 보도한 발사 성공소식에 기뻐하는 주민들의 모습 2017.07.05.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4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고 5일 보도했다. 사진은 노동신문이 보도한 발사 성공소식에 기뻐하는 주민들의 모습 2017.07.05. (출처=노동신문)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윤영 기자 = 2003년 5월 북한의 길재경이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전한 한국의 한 언론사의 보도를 대북방송이 인용하자 그날 평양 시내에 이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다. 길재경은 김정일 서기실의 부부장으로 마약 밀매와 위조 지폐 발행으로 김정일의 비자금을 조성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틀 뒤 한국의 다른 언론사가 길재경이 사실은 3년 전인 2000년 6월에 사망해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며 묘비 사진을 보도했다. 이를 대북방송이 또 인용보도하자 이날 평양에서는 그의 망명이 오보라는 소문이 다시 퍼졌다.

 당시 평양에 살고 있었던 2013년에 탈북한 김영(가명)씨는 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북한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을, 그것도 오보까지도 평양 시내에 바로 소문나는 것을 보고 나뿐만 아니라 외부 라디오를 청취하는 주민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당시 사람들이 이 소문을 말하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밝히지도 않았고 그걸 묻는 사람도 없었다”면서 “모두 나처럼 속으로만 짐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한국 라디오를 청취했다는 것을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북한에서 외부 라디오를 청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럼에도 외부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북한 주민이 많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북한에서 외부 라디오 청취는 큰 범죄로 취급된다. 외부 라디오를 청취하다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지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북한에서 외부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 탈북자들은 “밤 늦은 시간에 혼자 커튼을 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의소리 방송, 자유아시아방송 등 대부분의 대북방송은 자정 무렵에 방송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북한 주민들이 처음 외부 라디오를 듣게 되는 것은 무작정 주파수를 돌리다가 우리말 방송이 나오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에서 라디오나 카셋트 등을 구입하면 먼저 체신소(우체국)에 가서 등록을 해야 한다. 이때 북한 채널 외에는 청취할 수 없게 고정 납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주민들은 몰래 고정 납땜을 풀고 주파수를 돌리다가 한국어 방송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차량이 어선에서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화물차나 어선에 내장된 라디오는 원래 다 뜯어내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고, 또 작업을 혼자 할 때가 많아서 비교적 쉽게 주파수를 돌리며 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중국과의 밀무역이 많아지면서 중국 조선족 상인이 가지고 온 단파 라디오를 구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처음 외부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는 어느 나라의 어떤 방송국인지도 모르고 우리말이 나오면 무조건 듣기 시작한다고 한다. 북한이 원래 전파 수신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대북방송이 증가하면서 북한 당국이 방해 전파를 자주 쏴 일단 깨끗한 음질의 방송을 찾는다. 전파가 잡히면 방송내용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처음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가요이다. 북한의 혁명가와는 다른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에 빠져 라디오를 자주 청취했다는 증언이 많다.

 그 다음은 한반도 관련 뉴스와 탈북자 정착 소식이다. 특히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며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큰 관심거리이다. 북한에서 금기시하는 김씨 일가에 관한 내용과, 북한에서 들을 수 없는 북한 내 뉴스도 듣고 싶어한다.

【평양=AP/뉴시스】북한 평양 주민들이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75년을 맞아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을 참배한 후 걸어가고 있다. 2017.02.16

【평양=AP/뉴시스】북한 평양 주민들이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75년을 맞아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을 참배한 후 걸어가고 있다. 2017.02.16

2000년대 이후 북한에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환율과 같은 경제 뉴스에도 관심도가 높아졌다. 북한에서 돈장사(환전)를 했다는 2015년에 탈북한 청진 출신의 박은영(가명)씨는 “2009년 화폐개혁 때 북한 돈을 갖고 있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아 이때부터 북한 경제는 더욱 외화가 중심이 됐다”면서 “나 같은 돈장사는 매일 라디오를 듣고 환율을 체크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선호하는 대북방송은 1980년대와 90년대는 주로 KBS사회교육방송과 미국의소리 방송이었다. 함흥, 원산 등 일본과 가까운 지역에서는 일본 NHK 한국어 방송도 잘 들린다고 한다. KBS사회교육방송이 대북방송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최근에는 자유아시아방송을 많이 청취한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이 방송 내용에 따라 채널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외부 라디오 방송을 청취할 때는 북한과 다른 아나운서의 말투와 한국 노래 등에 이끌려 듣기 시작하지만, 점차 뉴스나 정치 분석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같은 사건을 놓고 북한내 뉴스와 비교해 어떤 것이 사실인지 판단하게 되면서 점차 외부 라디오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2011년에 탈북한 원산 출신의 천영일(가명)씨는 “2000년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를 사과했을 때 노동신문에 나온 내용과 외부 라디오에서 나온 내용이 달랐다”면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점차 라디오를 듣다 보니 라디오 내용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북한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천 씨의 언급한 이 대목이 대북방송이 필요한 이유인 셈이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