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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논란]논의 시작했지만 갈길먼 사회적 합의...정부는 어정쩡

등록 2017.11.27 15: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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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 및 여성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11.09.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 및 여성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11.09.


【세종=뉴시스】이인준 기자 = 정부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허용과 처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는데 그쳐 논의는 여전히 출발점에도 서지 못했다.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26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민청원에 답변하며 "당장 실태조사를 2018년부터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정확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앞서 2005년과 2010년에 실태조사가 2차례 실시됐음에도 정부가 결과에 따른 입장 변화를 밝힌 적은 없다. 이를 감안하면 정부의 태도는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한 채 여전히 어정쩡한 태도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를 포함시켜 처벌을 강화하려다 반대여론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의사 자격정지기간을 최대 '1개월 이내'에서 '12개월 이내'로 강화하려 한 것인데, 의료계는 물론 여성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특히 현행 낙태죄 처벌이 산모와 의료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남성에 대한 처벌은 논의 과정 자체에서 아예 배제돼 있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 같은 형평성 논란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더구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미 새정부 출범 이후 결정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말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2억원을 반영한 상태다. 조 수석의 이번 발표가 낙태죄를 묻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전시킬만한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모든 결정을 미루는 모양새다.

 조 교수의 이날 발언도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중인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현재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5년만에 재심리를 진행 중이며 9인 체제가 완성된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여성의 결정권을 중심으로 낙태죄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아직 판단은 섣부르지만 기존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복지부 관계자도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데 대해 "임신중절과 관련된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서 진행이 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재확인했다.

 그는 "여성계의 목소리는 '여성 자기 결정권', 종교계의 목소리는 '태아 생명권'으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낙태(임신중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법 제27장은 ▲아이를 가진 여성이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특히 ▲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 의료인이 낙태에 관여한 때에는 이보다 무거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매우 제한적으로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소관 모자보건법에서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친족성폭력 ▲산모 건강 우려 등 경우에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 제정 시기는 1973년으로, 지난 40여 년간 성문화가 개방되고, 임신과 출산도 자기결정권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추세속에서 지나치게 허용 범위가 협소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할뿐 아니라 불법 시술과 '미프진' 등 허가를 받지 않은 약품의 유통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또 처벌의 대상에서 태아의 남성의 경우는 논의 과정 자체에서 배제돼 있지만 반대로 합법적인 임신중절의 경우에도 배우자의 동의가 없이는 불법이라는 점 등 성차별적인 조항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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