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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미투' 급속도 확산 왜?…"성폭력, 공기처럼 만연"

등록 2018.02.02 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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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2일 인스타그램에는 '#서지현검사님응원합니다'라는 해시태그로 600여개에 달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일반적인 지지와 응원의 글도 있지만 본인의 피해 경험을 고백하는 글도 다수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2일 인스타그램에는 '#서지현검사님응원합니다'라는 해시태그로 600여개에 달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일반적인 지지와 응원의 글도 있지만 본인의 피해 경험을 고백하는 글도 다수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성폭력, 권력 관계에 의한 또다른 유형의 갑질
"셀 수도 없는 성폭력 경험…마치 공기 같아"
'꽃뱀 프레임'으로 도리어 상처 입는 피해자들
신분상 불이익, 따돌림 등 2차·3차 피해 흔해
'미 투'에 더해 '미 퍼스트' '위드 유' 병행돼야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그런 일을 당한 것은 결코 피해자인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이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검찰 조직 내에서 벌어진 강제추행을 폭로하면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나타나는 해시태그와 통영지청 로비에 도착한 꽃바구니들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서지현'이 많다는 방증이다.

 2일 인스타그램에는 '#서지현검사님응원합니다'라는 해시태그로 600여개에 달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일반적인 지지와 응원의 글도 있지만 본인의 피해 경험을 고백하는 글도 다수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가해자가 본인의 우월한 지위를 통해 피해자를 착취하는 범죄라는 측면에서 성폭력 근절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성폭력 피해 경험, 뭐부터 말할까요?"

 많은 시민들이 서 검사와 연대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비단 법조계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고의성을 가졌는지 혹은 무심결에 나온 행동인지 여부에 관계 없이 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에 성폭력은 공기처럼 만연하다"고 호소한다.

 인스타그램의 한 이용자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 겪었던 수많은 일들 중 어떤 일을 어느 정도로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을 강조했다.

 다른 이용자는 "여성으로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성희롱을 당하고 목격했다. 때로는 저항했고 때로는 두려움에 침묵했다. 피해자가 비난받지 않는 세상, 우리의 딸들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먼저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통영지청으로 꽃을 보냈다고 적은 익명의 게시자는 "성추행으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만 해도 여러 번"이라며 "당할 때마다 너무 놀라 욕 한번 하지 못해 억울했고 트라우마로 오랫동안 힘들었다. 서 검사의 고발을 시작으로 미투 운동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소망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박아름 활동가는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용인하는 문화가 있다"며 "피해자가 느끼기에는 불쾌한 일인데도 가해자들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피해자의 예민함 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부산여성단체연합 등이 법무부·검찰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8.02.01. yulnetphoto@newsis.com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부산여성단체연합 등이 법무부·검찰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8.02.01. [email protected]


 ◇성폭력, 남녀 문제 아닌 권력 관계

 불특정 다수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성폭력도 문제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직장에서 벌어진 성폭력은 피해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피해자 대부분이 '을(乙)'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측면이 커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조직 내 성추행 경험'에 대해 직장인 3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4.1%가 성추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추행 상대는 '회사 상사'가 52.7%, '고위급 임원'이 12.7%로 직장 내 성추행의 본질에는 '권력관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여성 A씨는 "공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할 때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라며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거나 노래방에서 상사와의 스킨십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술자리에서도 여성을 남성들 사이에 앉히려 한다거나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여성 동료들의 몸매를 품평해 기분이 상했던 적은 손에 꼽을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상사이거나 인적 자본이 우월해 피해자가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한샘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는 말단 사원이었고 가해자는 상사였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공동대표는 "직장 내 성폭력은 명백한 갑질이고 강자가 약자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가해자들은 대체적으로 피해자보다 고위직이고 조직 내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3자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부산여성단체연합 등이 법무부·검찰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8.02.01. yulnetphoto@newsis.com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부산여성단체연합 등이 법무부·검찰 조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8.02.01. [email protected]


 ◇피해 고발 후 돌아오는 건 "꽃뱀 아냐?" 시선

 성폭력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도록, 가해자들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도록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꽃뱀 프레임'이다. 가해자들의 시선인 이 프레임이 쉽게 작동하는 이유는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들이 느끼는 수치심이 다른 어떤 범죄보다 강하다는 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왜 그 길을 골라서 갔느냐"거나 "자해공갈단이 아니냐"고는 말 하지 않으면서 유독 성폭력의 경우에는 "네가 밤 늦게까지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지 않았느냐" 혹은 "사귀는 사이였으면서 왜 예민하게 구느냐" 등의 추궁이 뒤따른다.

 배 대표는 "성폭력 피해 여성은 본인이 당한 폭력에 대해 즉각적으로 신고를 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자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어릴때부터 받아 온 '조신해야 한다, 얌전해야 한다'는 교육 때문에 '내 탓이 아닌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깨닫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서 검사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범죄 피해를 입었음에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감이 컸다"며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 방송에 나왔고 나는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면 꽃뱀 프레임은 더 공고화된다. 배 대표는 "피해를 당한 증거가 없다면 법정에서 진술이 성의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혐의없음'으로 결론나고 녹취 등이 있다면 '그 상황이 어떻게 발생할 줄 알고 녹취를 했느냐' 식으로 꽃뱀 프레임을 씌운다"며 "법정에서의 증거주의가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조형석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장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등에 대한 직권조사 결정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조영선 사무총장.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알려진 검사 성추행 사건의 진정을 지난 1일 접수했으며, 피해자가 구제를 호소하기 어려운 남성위주의 조직문화적 특성을 감안할 때 내부 고충처리시스템 등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날 상임위원회에서 직권조사 실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8.02.02.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조형석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장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등에 대한 직권조사 결정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조영선 사무총장.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알려진 검사 성추행 사건의 진정을 지난 1일 접수했으며, 피해자가 구제를 호소하기 어려운 남성위주의 조직문화적 특성을 감안할 때 내부 고충처리시스템 등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날 상임위원회에서 직권조사 실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8.02.02. [email protected]


 ◇문제는 고발 그 이후

 직장 내 성폭력의 경우 2차, 3차 피해가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난해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내 성희롱 내담자 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57%가 성폭력 문제제기로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답했다. 파면이나 해임 등 신분상의 불이익(53.4%)은 물론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정신적 손상 등도 53.4%나 됐다.

 어떻게 보면 문제를 제기한 이후에 더 큰 충격이 기다릴 수도 있다. 범죄 사실과 연관이 없는 업무적 능력이나 품성을 들어 피해자를 공격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거나 가해자 측이 무고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들어 법적 대응을 해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 활동가는 "문단계나 영화계 등에서 꾸준히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뤄졌는데 가해자들이 이들의 입을 막게 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론화의 판을 바꾸려는 시도가 자주 있었다"며 "가해자들에게는 이미 검증된, 효과있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투 운동이 의미 있는 효과를 내려면 '미 퍼스트(#Me First)', '위드 유(#With You)' 운동과 병행돼야 한다.

 박 활동가는 "피해자가 오히려 조직을 떠나야 하는 불합리함이 없도록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주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도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얘기했듯이 한 사람의 목격자라도 '하지 말라'고 제지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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