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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뒤흔든 미투 한달…'슈퍼갑' 향한 약자들의 반격

등록 2018.02.28 11:08:23수정 2018.03.12 08: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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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뒤흔든 미투 한달…'슈퍼갑' 향한 약자들의 반격

각계 유명 인사들 줄줄이 미투로 성범죄 의혹
'예민한 여자'들 유난 떠는 정도로 치부되기도
"조직이 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중요"
공소시효·친고죄 벽…'여론재판'으로 끝날 우려
"피해자 진술 자체가 핵심 증거…처벌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남빛나라 채윤태 기자 = "야, 너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하는 거 아냐?"

 직장인 A(여·30)씨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과장이 이 같이 말하며 화들짝 손을 떼자 팀원들이 박장대소했다. A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미투 운동이 '예민한 여자'들의 유난 정도로 치부되며 개그 소재로 사용될 때마다 모욕감을 느낀다. 기사가 나면 그때뿐이지 변한 게 없다"고 털어놨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미투' 고백을 한 지 28일로 한달여가 지났다.

 이후 시인 고은, 배우 조민기·조재현·오달수,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사진작가 배병우 교수, 국립극장장 후보에 오른 김석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각계의 유명 인사이자 권위자들에게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사회 다방면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오랜 기간 성범죄에 노출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컸다.

 하지만 자극적인 성범죄의 양태가 화제로 떠오를 뿐 근본적 인식과 제도의 변화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이소희 사무국장은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할 수 없었던 그 심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2018.02.25.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성범죄, 사업주 책임이 강조돼야"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사건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피해자 대부분이 학생·스태프·단원 등 상대적 약자들이라는 점,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니고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묵히며 고통 받아왔다는 점,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알려졌어도 아무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말 한마디로 특정인을 업계에서 매장할 수 있는 슈퍼 갑(甲)이었다. 이윤택씨의 경우 단원들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졌다는 증언이 속출했다. 조민기씨의 학생들은 조씨가 청주대 예대를 '조민기의 왕국'처럼 생각했다고 전했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업계에서 낙오되거나 조직의 배신자로 몰릴 것을 감당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개인의 용기에서 시작된 미투 캠페인을 조직 문화의 변화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조직이 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큰 의미를 가진다"며 "한 사건을 보고 많은 피해자가 '이 조직에서 이야기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가해자들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소장은 "성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가 계속 강제해야 한다"며 "사업주의 책임이 강조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진술, 중요한 증거"

 미투 폭로로 드러난 성범죄 중 상당수는 '여론재판'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처벌까지 가려면 친고죄와 공소시효의 벽을 넘어야 한다.

 경찰은 일단 미성년자가 대상이거나 피해자의 진술이 확보된 건을 중심으로 수사 중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미투 관련) 인지도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19명 정도 들여다보고 있다"며 2건에 대해선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 뒤흔든 미투 한달…'슈퍼갑' 향한 약자들의 반격

수사 대상에는 조민기씨와 극단 번작이 대표 조증윤씨 등이 포함됐다. 조증윤씨는 2007~2012년 당시 16세, 18세였던 미성년 단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6월 이후에 벌어진 사건은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다.

 그 전에 발생한 피해 사건은  고소 기간(6개월)이 지나면 고소가 불가능해 사실상 법적 처벌이 어렵다.

 이윤택씨의 사례를 보면 피해 시기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몰려있어 형법상 강간·강제추행 공소시효(10년)마저 지났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진행된다.

 고백까지 1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뚜렷한 물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고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진술 자체가 성범죄에서 중요한 증거로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JY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서 신빙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며 "피해를 당하고 7~8년 만에 상담하러 오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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