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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성폭력을 대하는 태도 달라졌다

등록 2017.11.07 18:01:36수정 2017.11.08 00: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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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제2회 캡처.

【서울=뉴시스】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제2회 캡처.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성폭력 논란' 시대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TV 드라마가 늘고 있다.

특히 이들 방송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태도'까지 문제 삼아 이전의 드라마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달 9일 방송한 KBS 2TV 월화 드라마 '마녀의 법정'(극본 정도윤, 연출 김영균) 제1회에서는 검사 '마이듬'(정려원)이 어려운 사건도 척척 해결하며 검찰청 에이스로 활약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그러나 범죄자에게 가차 없이 철퇴를 가하는 그에게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평소 손버릇이 나쁘기로 소문난 부장검사 '오수철'(전배수)은 취재를 위해 술자리에 찾아온 언론사 법조팀 여성 기자에게 "특종을 얻으려면 취재원과 스킨십이 필요하다"면서 허벅지를 만지고, 어깨를 감싸는 등 추근댄다. 급기야 여자 화장실까지 쫓아가 기자에게 강제로 키스하기까지 했다.

마이듬은 이 모두를 목격했지만, 못 본 척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해당 기자가 오 부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하자 마이듬은 그를 만나 고소를 취하하라고 설득했다. 오 부장이 마이듬에게 "같은 여자이니 잘 설득해 고소를 취하하게 만들어라"면서 "그런 다음 네가 원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나와 함께 올라가자"고 유혹한 데 따라서다.

마이듬은 기자 앞에서 무릎까지 꿇은 채 “고소해도 아무런 소용 없다. 차라리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때리고, 고소를 취하해달라. 그래야 나도 살고, 당신도 산다"며 읍소했다

그러나 마이듬은 오 부장이 자신이 아닌 선배 검사를 특수부로 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180도 돌변한다. 그는 대검찰청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서 그간 오 부장이 했던 추악한 행동들을 모두 폭로해버린다.

지난달 10일 방송한 tvN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극본 윤난중, 연출 박준화) 제2회에서는 여주인공인 드라마 보조작가 '윤지호'(정소민)가 같은 팀 조감독 '계용석'(김욱)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몰렸다 간신히 도망치는 장면이 나왔다.

이어 16일 제3회에서는 용석의 사수인 '고참 감독'(장영원)과 지호의 은사 격인 선배 '황 작가'(황석정)가 그날 사건을 '해프닝' 또는 '술김에 저지른 실수' 정도로 몰고 가려는 상황이 그려졌다. 

고참 감독은 지호에게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데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다"면서 "용석이 어제 큰 실수를 했다기에 내가 혼냈다"고 하며 용석을 용서하라고 종용했다. 황 작가 역시 "내가 용석이를 죽여놓으려고 했지만, 박 감독을 봐서 참았다"고 옆에서 거들었다.

【서울=뉴시스】KBS 2TV '마녀의 법정' 제1회 캡처.

【서울=뉴시스】KBS 2TV '마녀의 법정' 제1회 캡처.


'갑을 관계' 등 분위기상 지호는 무조건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다들 뭐 하시는 거냐. 왜 감독님이 조감독님을 혼내고, 작가님이 뭘 참느냐. 당한 것은 저인데요"라고 반문했다.

당황한 감독은 지호에게 "당하다니, 말이 좀 그렇다"고 힐난했다. 그러자 지호는 "그럼 성추행을. 그럼 성폭행 미수를 '당했다'고 표현하지 뭐라고 해야 하느냐"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황 작가가 나서 "소중한 우리 팀 워크를 깨지 않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다"고 지호를 달랬다.

그러나 지호는 "이게 노력하는 것이냐. 길을 가다 돌을 맞아 피가 나면 업고 병원에 가주는 것이 노력이지. 괜찮으니까 너 가던 길 계속 가라고 하는 것이 노력이냐. 당사자는 피를 흘리며 아파 죽겠는데…"라고 토로했다.

 감독은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윤 작가는 앞으로 드라마 집필을 할 수 없다"고 지호에게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이에 지호는 오랜 꿈인 드라마 작가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5일 방송한 OCN 토일 드라마 '블랙(극본 최란, 연출 김홍선)' 제8회에서는 호스티스 '티파니'(오초희)가 한 파티에서 로얄 그룹 막내아들 '오만수'(김동준)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다 간신히 탈출해 그를 성폭행 미수 및 폭행치상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는 이야기가 전개됐다.

티파니는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별장 2층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대중은 만수를 맹비난했다. 만수가 대표이사를 맡은 로얄생명을 비롯한 그룹 이미지는 추락했고, 주가는 속절없이 내려갔다.

그러자 로얄그룹 측은 고문 변호사에게 상황을 반전시키라고 요구했다.

변호사는 환각제인 엑스터시 복용으로 처벌받은 전력 등 티파니의 '흑역사'를 찾아내 언론 등에 흘리며 그를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만수에게 성폭력범 누명을 씌운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다.

이후 티파니를 동정하던 여론은 매몰차게 등을 돌린다. 심지어 그에게 '국민 꽃뱀'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이웃은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티파니를 몰아세웠고, 유치원에 다니는 티파니의 딸은 친구들에게 "작은 꽃뱀"이라는 놀림을 듣는다.

고통스러워하던 티파니는 어느 날 밤 무엇인가를 결심한 뒤, 딸을 업고 성곽길을 걷는다. 주인공 '한무강'(송승헌)이 뒤늦게 티파니 모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을 때 모녀는 이미 사라지고 성곽 위에 유서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들 드라마에서 그려진 성폭력 사건 관련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실체와 사회가 이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마녀의 법정'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잘난 힘을 앞세워 성적으로 얼마나 괴롭히는지, 약자는 출세를 떠나 살아남기 위해 어느 정도로 비굴해져야 하는지가 그대로 나온다.

가해자가 법의 수호자인 검사이고,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이자 방관자도 검사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게다가 피해자 중에는 기자도 있다.

이는 성폭력 사건에서 사회적으로 '갑'인 여검사나 여기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 '을'이나 '병'의 위치에 있는 약자가 얼마나 큰 피해를 겪는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는 성폭력을 '실수'나 '사고' 정도로 여기는 조직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조직의 화합을 위해 피해자는 꾹 참고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약자인 피해자가 끈질기게 반발하자 그때부터는 대놓고 '불이익'을 거론하며 더는 문제 삼지 말라고 압박한다.

우리 사회에서 갑이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을에게 성적 피해를 주는 것도 모자라 을의 분노와 호소까지 덮으려 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블랙'에서 대중은 성폭력 사건의 전모와 본질이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분위기에 휩쓸리며 가해자를 예단하고 여론 재판해 단죄한다.

【서울=뉴시스】OCN 토일 드라마 '블랙' 제8회 캡처,

【서울=뉴시스】OCN 토일 드라마 '블랙' 제8회 캡처,

분노한 주민 등이 티파니를 향해 달걀을 던지는 것 등 드라마 속 상황은 실제로는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중이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해 집단 광기를 부리며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는 일은 이제까지 일어난 많은 유명인 성폭력 사건에서 비일비재했다.

한국 성폭력 추방연대 김유지나 활동가는 "최근 일부 TV 드라마에서 다뤄진 성폭력 관련 에피소드는 과거 드라마와 달리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물론, 이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는 또 어느 정도로 잘못돼 있는지도 잘 보여줘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극 중 마 검사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자 비로소 진실을 공개하고, 윤 작가는 결국 꿈을 접는다. 티파니는 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다"고 아쉬워하면서 "드라마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가 도피하는 대신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실제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에게 용기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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