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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애국가, 계관시인 윤치호 작사”…서재필 증언 최초발굴

등록 2014.10.26 12:07:45수정 2016.12.28 13: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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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재필의 상세설명을 옮겨적은 문서. 아펜젤러 전기물에 수록돼 있다.

【서울=뉴시스】서재필의 상세설명을 옮겨적은 문서. 아펜젤러 전기물에 수록돼 있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61>

 대한민국 애국가의 역사 연구에 일대 획을 긋는 사료가 발굴됐다.

 1897년 8월13일 서대문 독립문 근처 독립회관에서 열린 조선개국 505회 기념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부른 ‘무궁화 노래’의 작사자는 윤치호(1865~1945)이고, 국가 ‘한국’(KOREA)도 이날 제창됐다는 증빙기록이다.

 ‘무궁화노래’와 ‘한국’은 현 애국가와 함께 1908년 윤치호 역술 ‘찬미가’에 수록돼 있다. 후렴이 동일한 ‘무궁화노래’를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것은 곧 애국가 작사자도 윤치호라는 점을 입증한다.

 이러한 사실은 조정과 독립협회가 배재학당과 함께 개최한 사상최초의 민관합동 개국 기념식에서 독립신문 창간자 서재필(1864~1951)이 한 강연을 설명한 ‘에디토리얼 노트’를 통해 알려졌다.

 이 ‘편집자 주’는 배재학당 설립자 H G 아펜젤러(1858~1902)를 거쳐 증손자 존 S 하일러(미국)가 소장하고 있다. 아펜젤러 프로젝트 편찬위원회와 배재대학이 발간한 ‘아펜젤러 가문, 그들은 한국을 어떻게 설교하고 근대화로 이끌었는가’에서 확인가능하다.  

 117년 전 기념행사를 시간 순으로 담았다. 오후 3시 배재학당 학생들의 ‘찬양’(Praise)으로 식은 시작됐다. 독립협회 안경수가 인사말을 하고 외국인 참석자들을 소개했다. 와병 중인 학부대신 이완용을 대신해 한성판윤 이채연이 국가주의를 주창했다. 배재 청년들은 ‘무궁화노래’(National Flower)를 불렀다. 아펜젤러 목사가 ‘조선거주 외국인들의 의무’, 서재필 박사가 ‘한국의 발전’을 주제로 강연했다. (1897년 8월19일자 독립신문이 전문게재) 그리고 배재 학생들이 국가(Nation Hymn) ‘한국’(KOREA)을 불렀다. 이어 마지막 강연자 윤치호가 청국의 역사는 잘 알면서 우리 역사는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는 요지로 ‘우리가 기념하는 날’이라는 강연을 했다. 기념식은 오후 6시에 끝났다.

 당시 윤치호는 일본·중국·미국 유학을 마치고 10년 만에 귀국한 뒤 의정부 참의, 외부·학부 협판(차관)으로 일한 조정의 중심인물이다. 민영환을 수행,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참관하는 등 정부에서 활약하는 한편, 창립 1년을 맞는 독립협회에 서재필과 함께 참여해 대정부 민권운동을 벌이고 배재학당과 협성회 같은 교육·청년단체를 대상으로 애국심 고취 강연을 했다. 

【서울=뉴시스】서재필(왼쪽), 윤치호

【서울=뉴시스】서재필(왼쪽), 윤치호

 이 문건은 기념행사 현장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배재 학생들의 ‘찬양’은 의례적인 것이라는 이유에서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두 번째 노래는 상세하게 해설했다. 특히 윤치호를 ‘계관시인’(Poet Laureate)이라고 칭했다.

 “배재 청년들이 ‘무궁화노래’를 불렀다. 한국의 계관시인 윤치호가 이날 행사를 위해 작사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시를 스크랜턴 여사가 오르간으로 반주하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불렀다.”

 윤치호가 개국 505주년을 기리고자 ‘무궁화노래’를 지었다는 말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후렴의 ‘무궁화노래’를 작사한 이를 윤치호로 명기한 것이다.

 이 ‘무궁화노래’에 대해 1897년 8월17일자 독립신문은 “한성판윤 이채연씨가 학부대신 이완용씨를 대신해 국민의 당연히 할 직무를 연설하고 넷째는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나라 우리 임금/ 황천이 도우샤/ 임금과 백성이 한 가지로/ 만만세를 질거하야/ 태평 독립하여 보세”라고만 썼다. 그동안 이때 불린 ‘무궁화노래’를 다른 노래와 연계해 논의하지 못한 이유다.

 배재학당이 지었다고 추정한 ‘무궁화노래’를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증언이 마침내 확보된 것이다. 기념식을 보도한 독립신문이 인용한 노랫말의 일부가 윤치호 역술 ‘찬미가’ 제10장(Patriotic Hymn)의 4절이라는 것은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소위 ‘애국가 공동작사설’은 허위이다>(2014년 3월5일 뉴시스)에서 증명했다. 그러나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것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세 번째 노래 ‘한국’에 대한 설명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가 한국’이란 표현 때문이다.

 “배재학생들이 국가 ‘한국’을 ‘아메리카’ 또는 ‘여왕만세’의 곡조에 맞춰 불렀다.”

【서울=뉴시스】H G 아펜젤러

【서울=뉴시스】H G 아펜젤러

 1897년 8월 이전에도 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실증된 것이다. 국기 태극기, 국화 무궁화 외에 국가도 존재했다는 최초의 기록이다. 이 시기에는 태극기나 무궁화도 나라가 지정한 것이 아닌, 관용 상태였으므로 국가 또한 흠정이 아닌 관용적 사용이었다. “태극기와 무궁화는 통용됐지만 국가가 없어 1902년 독일 작곡가 에케르트(일본 ‘기미가요’ 작곡자)를 초빙해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사, 국가로 삼았다”는 것이 학계의 기존 정설이다.

 이번 결정적 자료를 발굴한 김연갑 상임이사는 “윤치호가 1908년 발행한 찬미가 제1장에 배치하고 대문자로 변별해 ‘국가’라고 밝히고, 제10장 ‘무궁화노래’를 ‘애국가 1’(Patriotic Hymn 1), 제14장 현 애국가를 ‘애국가’(Patriotic Hymn)로 구분해 밝힌 것과 ‘KOREA’라는 표기가 일치한다. 이로써 이 국가 역시 윤치호 작임이 밝혀졌다. 이 작품은 1897년 8월 이전에 작사됐으므로 서재필이 윤치호를 계관시인이라고 평했다고 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에서 ‘계관시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첫 사례다.

 김 상임이사는 또 “이미 그때 무궁화를 국화(National Flower)라고 표현한 것도 국가상징 연구와 무궁화 연구에 의미있는 기록”이라고 특기했다.

 독립신문은 1899년 6월29일자에서 비로소 ‘무궁화노래’ 전4절 가사를 소개했지만, 작사자를 언급하지 않은 탓에 이후 학계의 논란을 불렀다.   

 ◇무궁화 노래  

 1. 셩자신숀 오백년은 우리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난 우리 본국일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름 대한으로 기리보젼하셰

 2. 애국하난 렬심의긔 북악가치 높고/ 충군하난 일편단심 동해같이 깊어  

【서울=뉴시스】‘찬미가’ 제1장 ‘한국’(KOREA)

【서울=뉴시스】‘찬미가’ 제1장 ‘한국’(KOREA)

 3. 천만인 오직 한마음 나라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업시 직분만 다하셰

 4. 우리나라 우리황제 황천이 도으샤/ 군민공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국가 ‘한국’(KOREA)의 가사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1908년 윤치호 역술 재판 ‘찬미가’ 제1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한국

 1. 우리황상 폐하 턴디일월갓치 만수무강/ 산놉고물고흔 우리대한뎨국(조선) 하나님도으사 독립부강

 2. 길고긴왕업은 룡흥강푸른물 쉬지안틋/ 금강쳔만봉에 날빗찬란함은 태극긔영광이 빗취난듯

 3. 비닷갓흔강산 봄꼿가을달도 곱거니와/ 오곡풍등하고 금옥구비하니 아셰아락토가 이아닌가

【서울=뉴시스】‘애국가’ 가사지. 윤치호의 친필이다.

【서울=뉴시스】‘애국가’ 가사지. 윤치호의 친필이다.

 4. 이천만동포난 한맘한뜻으로 직분하세/ 사욕은바리고 충의만압셰워 님군과나라를 보답하셰

 김연갑 상임이사는 “기념식 행사 내용과 기타 정황이 독립신문 관련 기사와 대체로 일치한다. 따라서 작사자 윤치호와 국가에 대한 기록도 사실로 볼 수 있다. 애국가 연구에 전기를 맞이했을뿐더러 애국가는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것을 확정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다만 “독립신문은 14, 17, 19일자 3차례에 걸차 이날 행사의 연설문을 실었는데 노래를 부르는 상황과 윤치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연구과제”라고 짚었다.

 근대서지 전문가인 김종욱 공연예술사가(전 단국대)는 “윤치호 역술 찬미가에 수록된 애국가를 ‘감수한 것’이라거나 ‘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얼마나 억측인가를 입증하는 자료로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안민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내년이 광복 70주년인데 애국가 작사자를 미상으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가작사자 조사위원회를 운영했듯 정부 공식기관이 작사자를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촉구했다”며 이 사안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안창호가 아닌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 해도) 슬프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다. 팩트 규명이 우선”이라는 판단이기도 하다.

 한긍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 애국가 작사자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온라인편집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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