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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지금 '기본소득' 실험 중

박영환 기자  |  furture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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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1-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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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유럽에서 국경 통제가 이뤄지면 핀란드는 난민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사진출처: 헬싱인 사노맛) 2015.09.21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립할 수 있는 존재인가?”

올해 1월1일부터 북구의 나라 핀란드에서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실직한 국민 일부를 상대로 '기본 소득'을 지급하며 노동의 본질을 향한 탐구에 나선다. 정부가 지급하는 기본 소득의 규모는 월 587달러(약 71만원)다.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가운데 임의로 선정한 2000명이 수혜 대상이다. 지급기간은 2년이다.

아직은 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민간 부문의 평균 급여가 3500유로(약 443만원)에 달하는 이 부유한 나라에서 먹고 살만한 수준은 아니며 지급대상·기한도 제한한다. 일을 하든 안 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조건 없이 국가에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라는 정의에 비춰볼 때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 하지만 유럽 국가 중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핀란드가 처음이다.

세계 최초의 이러한 '기본 소득 실험'을 이끄는 주역은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부다. 시필레 정부는 이번 실험의 성과를 저울질한 뒤 2년 뒤 그 지급 대상을 ▲프리랜서 ▲소기업가(small-scale entrepreneurs) ▲파트타임 근로자 등 저소득 그룹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다. 무엇보다, 수급자들은 기본소득의 사용처를 보고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일자리를 구한 뒤에도 기본 소득을 지급받는다. 정부가 수급자들이 정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일하는지, 여가시간은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노키아, 슈퍼셀을 배출한 이 부유한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4만9779달러( 약 5988만원)에 달한다. 핀란드 정부가 지급하는 기본소득(71만원)은 현지의 평균 임금에 비춰볼 때도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수급자가 ‘실업자’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추가 조건이 붙지 않는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다.

시필레 정부는 2년간의 실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가설을 검증한다. 핀란드인들이 기본소득으로 먹고 살며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로 전락할지, 아니면 소액이지만 기본 급여를 받으며 또 다른 일자리도 얻으려고 할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입에 풀칠할 돈이 있으면 더 이상 일하지 않으려 한다"는 통념이 무너질지가 관심사다.

핀란드 정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급자들의 노동의욕을 고취하고, 공무원 개입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시필레 총리는 작년말 기본소득 시행 방침을 밝히며 “노동 의욕을 촉진하고, 사회보장 체계도 단순하게 만들어 공무원 개입을 줄이고 공공재정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지 보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한 기본소득은 한동안 좌파 이상론자들의 ‘몽상’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세를 급격히 불리고 있다. 세계적인 교육 강국이자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의 제작사인 슈퍼셀의 모국 핀란드가 이러한 실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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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AP/뉴시스】핀란드에서 가장 많은 소득을 신고한 수퍼셀을 운영하는 라세 루오헨토가 2일(현지시간) 헬싱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을 제작하는 핀란드 회사 슈퍼셀이 한때 휴대폰으로 가장 많은 수입을 거둔 노키아보다 약 10배 이상 많은 과세소득을 기록하며 핀란드에서 최고 수익을 거둔 회사로 등극했다. 2015.11.03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이지만, 핀란드와 더불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국가가 네덜란드다. 흐로닝언, 위트레흐트시, 바헤닝언, 틸뷔르흐, 네이메헌 등 19개 도시에서 올해 기본 소득 실험을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도시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 현지에 가장 적절한 노동복지 모델을 찾아나간다는 계획이다.

스위스는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당사국이다. 작년 6월 표결에 부친 기본소득 방안은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 프랑(약 300만원), 어린이·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약 78만원)을 조건 없이 나눠주는 방식이다.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관련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기본소득은 한국에서도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 중 한명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작년 말 관련서를 선보이기도 했다.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의 대표인 다니엘 라벤토스의 저서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의 번역서가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을 비롯한 정치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노동당과 녹색당은 지난해 4.13 총선에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각국에서 ‘기본 소득’을 둘러싼 폭넓은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메가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인공지능, 로봇이 제조업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며 대량 실업의 공포가 커진 영향이 크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기술의 진보로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기계와 알고리즘이 일자리를 잠식해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다.

각국의 산업현장에서는 저임 근로자보다 몸값이 더 싼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 아마존의 창고에서는 로봇 키바가 서로 교신을 하고 학습하며 선반에 놓인 물품을 실어나른다. 변호사와 회계사들, 방사선과 의사들은 이미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리프킨은 저서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가 ‘노동의 종말’을 선보인 시기가 22년전인 1995년이다.

물론 이러한 기본소득 논의가 미국, 유럽, 아시아를 비롯해 지구촌을 휩쓰는 포퓰리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소득에 대한 권리'를 골자로 한 기본소득제도는 유럽을 병자로 만든 '복지병'을 더 깊게 할 것이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좌절로 이끄는 '불임의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좌파 이상론자들의 탁상공론으로 끝날지, 아니면 복지모델의 신기원을 이뤄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네덜란드, 스위스,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 북유럽 국가가 지난 1일부터 시행하는 사상 초유의 실험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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