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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가난해서 '죄인신세'…빈곤 겹쳐 악순환 치닫는 '노인학대'

등록 2017.01.10 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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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뉴시스 DB)

피해 노인 중 저소득층 64%↑… 빈곤 부양자의 노인 착취 사례도 빈곤 문제, 가난의 대물림 문제 넘어 가정 내 갈등·폭력으로 비화 처벌 강화만으론 재발 방지 어려워…노인 빈곤율 개선 대책 절실

【세종=뉴시스】이인준 기자 = 대전에 거주하는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인 A(86)씨는 정신질환을 가진 둘째 아들과 16년 간 함께 생활해왔지만 최근 1년 전까지만해도 학대 징후는 없었다.

 둘째 아들 B(48)씨가 달라진 것은 실직 이후. B씨는 아버지의 수급비로 술값을 충당한 것도 모자라 술만 취하면 폭언과 난동으로 그를 상습적으로 괴롭혀 왔다.

 아들은 A씨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A씨가 과거에 자신의 카드를 사용하고, 자신의 명의로 은행에서 돈을 대출하는 등의 행동을 반복해 신용불량자가 됐고, 차상위 계층으로 전락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도 부모를 봉양해야한다는 마음을 갖지만, 술만 취하면 그 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 위협적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노인학대에 있어 경제적 빈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지난해 중앙노인전문보호기관에서 발표한 '2015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피해노인 생활수준은 소득이 없거나,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이하가 64.7%로 학대 피해노인의 절반 이상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대로 부양자가 경제적인 문제로 오히려 노인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사례도 있다.  

 경남 지역에 사는 C(60)씨는 남동생과 올케에게 부양을 받으며 20여 년간 함께 살아오며 수년간 폭력에 시달려왔다.

 그는 지적장애 3급이며 기초수급 대상인데, 노년에 치매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남동생은 C씨가 정리한 폐지를 고물상에 팔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C씨에게 지급된 급여와 장애수당은 모두 동생 부부가 관리하며 임의로 사용하고 있지만, C씨는 장애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 부모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전세금을 빼내 달아나는 등의 사례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학대행위자의 경우도 저소득층 이하가 45.3%로 절반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상 한국 사회의 통념상 부모 봉양의 책임은 대개 자식에게 있지만, 갈수록 빈곤 문제가 심화되면서 세대간 가난의 대물림 문제를 넘어 가정 내 갈등과 폭력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

 노인이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하거나, 반대로 학대행위자가 고정적인 수입이 없거나 소득이 낮아 부모에게 의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목이 학대로 전이되는 효과다.

 한편으로는 노인 스스로가 자신을 방임하는 사례도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

 자기방임 유형은 주로 독거노인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지난해 독거노인 학대피해 사례 중 가장 높은 33.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경우 대개 정신질환과 연계되는 데, D(62)씨의 경우 정신장애 3급이며 모친이 사망한 이후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해오다 이웃들의 신고로 자기방임 사례로 확인이 됐다.

 그는 쓰레기가 가득 쌓인 집 안에서 혼자생활하면서 심각한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다. 사실상 경제적인 자립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스로가 의식주나 건강 관리 등 최소한의 자기보호 관련 행위를 의도적으로 포기하거나 비의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현민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부장은 "기초수급대상 어르신이 일반 어르신보다 통계적으로 노인학대에 더 취약하다"며 "특히 수급 어르신 중에는 학대행위자와 상호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있어 더 많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보인복지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노인학대 관련 범죄 전력자는 형 확정후 최대 10년간 노인관련 기관을 운영하거나 취업할 수 없도록 했으며, 오는 6월부터 노인에 대한 상해 행위에 대한 처벌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로 상향된다.  

 다만 지난해 기준 학대행위자의 69.6%가 '친족'에 의해 발생했고, 학대발생장소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전체의 58.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처벌 강화만으로는 학대 재발을 예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2014년 노인의 70%에게 최대 20만원 한도의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도입했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실제로 연금을 받아간 노인의 수급율은 2014년 66.8%, 2015년 66.4%, 지난해 65.9%로 3년 연속 목표에 미달한 데다 갈수록 비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진 건국대 교수는 "기초연금제도 도입됐지만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OECD 1위 수준이며 일반 노인은 대부분 가족의 지원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등 소득보장정책은 낙후돼 있다"며 "기초연금액의 인상 등을 통해 기초적인 노후 소득보장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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