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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파란나라'…남산예술센터 무대

등록 2017.02.07 18: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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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02.07.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02.0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천막극장인 '광장극장 - 블랙텐트'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공공 무대를 잃은 연극계가 세운 임시 공공극장이다.

 박근혜 정부의 퇴진 때까지 운영 예정인 이 극장은 세월호 희생자, 일본군 위안부, 각종 국가범죄 피해자들, 해고 노동자 등 그간 정부가 기피해온 연극계 목소리를 듣는 무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주철환)의 남산예술센터는 공공극장임에도 동시대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텐트극장 못지 않다.

 남산예술센터가 7일 오후 극장에서 발표한 '2017 시즌 프로그램' 10편을 살펴본 결과다. 정부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돈줄로 옥죄는 현 공연계 상황에서 공공극장의 역할을 되새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3~10월 무대를 채운다.

 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는 물론 예술계 내 성폭력, 사회적 소수자, 전체주의, 박정희 등 한국사회와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날선 사회적 화두를 포함한다.  

 우선 지난해 선보인 초연작 2편 중 하나로 올해 역시 시즌 프로그램에 재공연 형태로 참여하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5월 13일~6월4일)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트스 작성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연극 '개구리' 연출가인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가 작·연출한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을 풍자한 '개구리' 이후 박 연출은 정부의 각종 지원 공모에서 탈락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공연 이후 월간 한국연극 '2016 연극 베스트 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제53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시청각디자인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이번 무대에는 고수희와 초연 무대에 섰던 강지은, 이원재, 서동갑, 김동원 등을 비롯해 손진환, 이기현이 가세해 새로움을 더한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형 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2017.02.07.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형 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2017.02.07.  [email protected]

 이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 연극계 최대 화제작이었던 극단 신세계의 '파란나라'(11월 2~12일)도 작년에 이어 올해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김수정이 작·연출한 이 작품은 실제 고등학생이 참여해 현대사회의 강요된 질서와 집단주의의 모순에 돌직구를 날렸다.

 두 작품은 특히 공공극장과 민간극단의 협업이 시너지는 낸 경우이기도 하다. 2009년 재개관 이후 창작 초연의 산실로 자리매김해온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2015년 변화를 맞았다.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본부 극장운영팀이 운영을 맡아왔는데 산하 독립 부서가 되면서 우연 극장장이 이를 맡았고 이후 민간 극단과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근형 연출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규모가 꽤 커 개인 단체의 힘만으로는 공연을 할 수 없다"며 "큰 극장을 대관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남산예술센터와 협업은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기획과 홍보를 해줘 순차적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이어 "남산예술센터와 협업이 없었다면 공연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다른 단체도 (연극 제작 환경을) 제공 해주는 좋은 곳이 있는 걸로 알지만 물론 심사를 통한 것이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자신으로 인한) 위험을 감수하고 협업을 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극단 신세계가 스스로 유명하지 않다고 표현한 김수정 연출은 "저희들에게 이런 기회(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가 주어진 게 솔직하게 말하면 감개무량"이라면서 "작년에 공연이 끝나고 나서 꿈을 꾼 것 같았다. 이런 기회들이 저희 뿐만 아니라 젊은 창작자들에게 더 많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남산예술센터는 이와 함께 공공극장의 침체 속에서 '검열각하' 프로젝트와 같은 민간극단의 자발적 네트워크와 현장 예술가들의 자생적인 작품 생산이 두드러졌던 지난해 연극계를 반영, 현장 연극인들의 활동과 발언을 존중하며 협업과 연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두 편의 대학로 소극장 작품을 남산예술센터로 옮겨오는 것을 시작해 젊은 창작자들의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할 계획이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있다. 2017.02.07.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있다. 2017.02.07.  [email protected]

 올 시즌 프로그램의 문을 여는 '2017 이반검열'(구성·연출 이연주, 4월 6일~16일)은 지난해 '권리장전2016-검열각하'에서 선보인 '이반검열'을 확대한 작품이다.

 '창조경제-공공극장편'(공동창작·연출 전윤환, 7월 6일~16일)은 2015년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가을페스티벌 '상업극'에서 주목받았던 작품을 확대한 버전이다.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동시대성'에 집중한 작품도 있다.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구자혜 작·연출, 4월 21일~30일), '국부 國父'(공동창작·연출 전인철, 6월 10일~18일), '에어콘 없는 방'(작 고영범/연출 이성열, 9월 14일~10월 1일) 등 세 편이다.

 특히 '국부'는 지난해 전인철 연출이 '권리장전-검열각하'에서 선보인 '해야된다'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초인'을 발전시킨 작품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뤄 눈길을 끈다. 박 전 대통령이 탄생한 지 100주년을 맞는 올해 그를 다룬 뮤지컬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은 전 연출이 먼저 '박정희 대통령의 삶을 찬양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다.

 각각은 최근 문학과 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화두에 올랐던 성폭력 문제,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남북의 국가적 우상, 질곡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난파된 디아스포라 인생을 다루고 있다.

 현대연극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천사'(가제)(구성·연출 서현석, 8월 30일~9월 3일)는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한 일대일 공연으로, 극의 운영시간, 관람방식 등 기존의 극장 메커니즘을 뒤집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다.

 '십년만 부탁합니다'(구성·연출 이주요·김현진, 10월 18일~22일)는 배우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이른바 '오브제 시어터' 공연이다. 십 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던 사물들이 주인공이 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있다. 2017.02.07.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2017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있다. 2017.02.07.  [email protected]

 한국 소설의 지면을 무대 위에 극화하는 시도도 있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원작 권여선/각색·연출 박해성, 11월 23일~12월 3일)는 '안녕 주정뱅이'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권여선 작가가 지난해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한 동명의 중편소설을 무대화한다.

 한편에서 이번 시즌의 작품들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연 극장장은 "그럼에도 심각하게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구자혜 연출은 '풍자 구 선생'으로 불릴 정도로 재기발랄한 감각이 있고, 전윤환 연출는 젊은 배우들과 작업하는 서바이벌 쇼로 역동성을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미술 기반의 작가인 이주요, 김현진은 연극계 공연을 신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공연을 보고 무거운 마음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주제들은 한국 관객이 만나야 할 주제들이지만 표현의 방식은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편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새롭게 기획한 공모 프로그램 '서치 라이트 2017 (Search Wright)'은 제작 전 단계의 작품 콘텐츠를 사전 공유하는 자리다. 신작을 준비 중이라면 개인, 단체 누구나 오는 12일까지 지원할 수 있다. 선정된 작품은 제작비 지원을 비롯해 오는 3월에 극장, 관객, 기획자, 예술가 앞에서 형식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극장의 의미와 공공성을 회복하고자 지난해 처음으로 선보인 특별 공모 '남산 아고라'도 오는 8월에 다시 개최된다. 첫해에는 '페미그라운드-여기도 저기도 히익 거기도?'(남산예술센터,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진동젤리 공동제작)가 여성혐오 이슈를 조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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