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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에서 이젠 어엿한 사회인'...노숙인대학 수료한 이도림씨 "인문학은 나를 도전하게 만들어요"

등록 2017.02.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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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카엘성당에서 열린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과 자활 및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졸업식'에서 성공회대 이정구 총장이 수료생 대표인 이도림씨에게 스톨을 매만져주고 있다. 2017. 02. 15.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카엘성당에서 열린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과 자활 및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졸업식'에서 성공회대 이정구 총장이 수료생 대표인 이도림씨에게 스톨을 매만져주고 있다. 2017. 02. 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인문학은 우리가 새로운 걸 도전하게 만드니까 참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자기 성찰도 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니까 참 좋았어요."

 1년 전만 해도 이도림(57)씨에겐 '노숙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은 뒤로 쭉 그랬다. 성프란시스대학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씨는 지난해 '노숙인 대학'으로 불리는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인문학과정을 거쳤다.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가 2005년부터 운영중인 노숙인 대상 인문학 교육이다. 1년간 철학과 문학, 한국사, 예술사 등의 강의가 진행된다. 미국의 얼 쇼리스 교수가 만든 소외계층 대상 인문학강좌 '클레멘트코스'가 모델이다.

 직장이나 거처가 마땅치 않던 이씨로선 1년간 어떤 일을 집중해서 해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그는 "노숙인이 1년짜리 과정을 꾸준히 해본다는 게 대단한 거죠"라고 소회를 밝혔다.

 '대단한 1년'을 보낸 이씨는 지난 15일 성프란시스대 인문학과정 12기 수료생이 됐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가운도 입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햇수로 37년 만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신발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친구의 소개로 배를 탔다. 3년간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돈도 꽤 벌었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직장을 구하러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당시 마흔을 앞둔 그에게 일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지고 2004년부터 노숙생활에 접어든 이씨는 서울역에서 다시서기센터와 만났다. 센터의 도움으로 살 곳과 공공근로 일자리를 마련하자 성프란시스대 인문학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던 이씨는 "학교에 다니려면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성프란시스대는 고맙게도 학교와 센터, 코닝정밀소재에서 지원해줬다"고 인문학과정 수강 계기를 설명했다.

 인문학과정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과목은 문학, 특히 시였다고 한다. 인문학과정을 배우기전까지 한 번도 시를 접해보지 못했던 이씨는 수업때 나온 시들을 몽땅 외웠다. 외우고 나니 시가 쓰고 싶어졌다.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응석만 부린 것 같아 후회스럽더라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산소에 한 번씩 다녀오는데 그 마음을 담아 시를 쓴 거죠."

 인문학과정을 듣기 전엔 찾지 않았던 서점도 요새 즐겨 찾는다. 수업때 배운 것 외에 다른 것까지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씨는 '노자'와 '맹자'라고 답했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노숙인 이도림(57)씨가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카엘성당에서 열린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과 자활 및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졸업식'을 마친 뒤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 02. 19.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노숙인 이도림(57)씨가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카엘성당에서 열린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과 자활 및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졸업식'을 마친 뒤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 02. 19.  [email protected]

 인문학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졸업한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이제 알만하니까 졸업을 하게 됐다"며 "마음 같아선 좀더 배우고 싶은데 이제 교실을 내줘야 하니까…"라고 말을 줄였다.

 인문학과정을 계기로 달라진 건 인문학을 향한 욕심뿐만이 아니다. 이씨는 공공근로 등을 하며 모은 돈으로 지난해 11월 강동구 길동에 방 두칸짜리 임대주택을 구했다. 이달 13일부턴 송파구 가락시장에 정규직으로 채용돼 청소업무를 맡고 있다.

 이같은 삶의 변화에 이씨는 다시 펜을 들어 '행복'이란 시를 썼다.

 "저녁에/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외로울 때/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이씨에겐 자신이 느낀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씨는 수료식에서 수료생 16명을 대표해 답사를 맡았다. 1분30초 남짓한 답사에서 그는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만 다섯차례 반복했다.

 그는 "경기도 부천에서 매일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면서 수업을 준비해준 수녀님과 수업에 최선을 다해준 교수님들, 인문학과정을 후원해준 서울시와 코닝정밀소재, 과정을 함께한 동기들께 감사드려요"라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씨는 사회복지사 학위를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문학이 나를 새롭게 도전하도록 만들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도 생겼죠.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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