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명품 따로없네, 주목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
【서울=뉴시스】장석장(하지훈, 2016) 전통 조선 목가구와 목가구에 사용된 장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한글이 점, 선, 원으로 이뤄지는 조합 문자임에 착안, 장석 고유의 형태에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발견했다. 가구를 보호하고 구조를 견고하게 하는 장석의 기능을 한글이 가진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장식적 요소로 재해석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세종대왕 탄신 620주년을 기념해 개최하는 기획 특별전이다. 디자이너 23팀이 ‘훈민정음’의 원형과 내용을 국립한글박물관과 협업으로 풀어냈다.
1443년 세종대왕은 문자를 몰라 소통하지 못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배우기 쉬운 문자 스물여덟 개를 만들었다. 3년 후에는 새 문자를 상세히 설명한 ‘훈민정음’을 편찬했다. 한글의 원형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기록유산이다. 모든 사람이 쉬운 문자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 애민정신의 산물이다.
【서울=뉴시스】성조: 빛, 소리, 조각(장수영, 2016) 한글 창제 당시에는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성조점(곁점, 방점)이 표기됐다. 성조를 평성, 거성, 상성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에 따른 표기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음이 낮은 평성은 해당 글자만 표기했고, 음이 높은 거성은 글자 왼쪽에 점 하나를 찍어 표기했으며, 음이 낮았다가 높아지는 상성은 두 개의 점을 찍어 표기했다. ‘감’이라는 글자의 평성, 거성, 상성에 해당하는 발음을 음원분석기를 통해 그래프로 추출했고, 이를 목판에 부조로 표현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원형 ‘훈민정음’ 33장 전체를 볼 수 있다. 체계적인 질서를 지닌 글자인 훈민정음을 긴 선을 따라 규칙적으로 나열, 빛의 질서로 표현했다. 33장의 내용을 모두 담은 영상은 인간을 위해 디자인을 한 세종의 따뜻한 마음과 언어·문화의 원형인 ‘훈민정음’의 감동을 더한다.
【서울=뉴시스】브섭: 한글의 소리와 형태의 관계에 대한 상상(안병학, 2016) ‘브ᅀᅥᆸ’은 ‘불’을 뜻하는 우리말 ‘불’과 옆을 뜻하는 ‘섶’이라는 단어가 합해져 만들어진 것으로 ‘부엌’을 의미한다. ‘불’이라는 글자의 형태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 착안한 작품이다.
‘훈민정음’ 용자례(用字例)에는 ‘러ᅌᅮᆯ(너구리)’, ‘부허ᇰ(부엉이)’, ‘사ᄫᅵ(새우)’ 등 옛 단어 94개가 실려 있다. 이 옛 한글의 모양, 의미, 소리의 높낮이 등을 홍익대 시각커뮤니케이션과 안병학 교수 등 그래픽디자이너 15팀이 재해석했다.
【서울=뉴시스】톱(채병록, 2016) 하나가 쌓여 10으로 커지며 세 가지 요소로 무한하게 변화한다는 천부경의 ‘일적십거 무궤화삼(一積十鉅 無匱化三)’의 의미를 차용했다. 세 가지 요소는 삼극(三極), 곧 천지인(天地人)을 뜻한다. 한글 창제 원리에서 천지인이란 모음을 구성하는 일종의 원형을 정의하지만 음(音)의 모체인 모음을 바탕으로 자음과 결합에서도 천지인의 원칙은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주제인 ‘톱’은 나무나 쇠붙이 따위를 자르거나 켜는 데 쓰이는 연장이다. 훈민정음 용자례에서 톱은 톱질할 거(鋸)가 아닌 클 거(鉅), 강할 거(鉅), 강철 거(鉅)의 의미로 쓰여있다. 이 부분을 모두 아우르는 기능으로서의 톱과 거대한 재질로서의 톱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눠 구성했다. 만물의 요소들이 분해되고 결합해 쌓이는 과정의 의미를 한글 원리와 비교해 표현했다.
‘훈민정음’ 전체 33장의 이미지와 더불어 주요 내용을 시각적으로 푼 홍익대 영상디자인과 김현석 교수팀의 영상도 눈길을 끈다. ‘훈민정음’의 책 형태, 내용의 짜임, 창제의 원리 등을 쉽게 보여주며 관련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서울=뉴시스】거단곡목가구 훈민정음 연작(황형신, 2016) 한글의 창제 원리 중 자음과 모음 형상의 기본이 되는 획과 점의 다양한 조합 가능성에 큰 인상을 받아 기존의 작업에 적용했다. 최소 단위의 자음과 모음에 획이 추가돼 소리와 의미가 변하듯 거단곡목법으로 제작한 단면은 연장되는 길이와 조합에 따라 스툴, 벤치, 의자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출 수 있다.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은 5월28일까지 볼 수 있다. 어린이보다는 디자인 전공자나 산업계에 힌트를 줄 수 있는 전시다.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 여럿이다. 제품으로 양산할 수도 있을 듯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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