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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끈 '촛불의 힘'…133일 드라마 '시민의 재발견'

등록 2017.03.10 15: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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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16.11.12.  photo@newsis.com

지난해 10월 점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시민 주권의 재발견'
 갈팡질팡 정치권에 강한 압박…특검팀 응원하며 간접 조력
 기록적 규모·비폭력·靑 100m 앞 행진 등 군중집회 전환점
 전문가들 "촛불 진화가 사회 문제 해결하는 개혁 동력될 것"
 "정부 제 역할 못해…부패 막는 전반적 개선 노력 병행돼야"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광장의 촛불은 133일 만에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냈다. 주말 촛불집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해 10월29일을 시작으로 19차례 만에 현직 대통령을 민간인 신분으로 변화시켰다.

 촛불은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정치권과 박영수 특검팀 수사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국정농단에 실망·분노…시민들 촛불 들고 광장으로

 촛불집회는 지난해 10월29일 주최측 추산 2만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이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에서 청와대 수석회의까지 전방위적으로 '국정농단'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박 대통령과 주요 연주자들이 관련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2차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20만명으로 10배가 늘어났고 11월12일 3차 촛불집회에서는 서울에서만 100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같은 달 19일 4차 집회에 95만명이 참가한 후 26일(190만명), 12월3일(232만명), 12월10일(104만명)까지 3주 연속 100만명을 넘겼으며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31일에 110만명을 기록하며 연인원 1000만명을 돌파했다.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16.11.12.  photo@newsis.com

 새해 들어 추위와 피로감 등으로 촛불은 소강국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헌재의 탄핵심판 최종 변론일(2월2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연장 거부에 따른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종료(2월28일)이 임박하자 시민들은 다시 광장에 집결했다.

 처음으로 토요일이 아닌 평일에 차수가 부여된 3·1절 18차 집회 때는 비가 오는 험한 날씨 속에서도 30만명이 모였고, 탄핵심판 선고 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19차 집회에서 다시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연인원 1500만명까지 기록하게 됐다.

 탄핵을 완성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촛불집회는 한국 역사상 가장 기록적인 규모로 이뤄졌다. 19차례에 이르는 집회 가운데 주최 측 추산 100만명(전국단위)이 넘었던 것도 모두 7번이다. 이는 종전 최대 촛불집회인 2008년 6월10일 광우병 촛불집회(70만명)는 물론 1987년 6월 항쟁때 집회(140만~180만명 추산)와 비교해도 월등한 규모다.

 ◇광장의 촛불, 규모만큼이나 의미도 컸다

 촛불은 규모만큼이나 국정농단 정국에서 큰 역할을 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9일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촛불민심이 국정농단 정국에서 갈팡질팡하던 정치권에 강한 압박을 가한 것이다. 

 헌재는 12월22일 첫 준비기일 이후 79일 만에 탄핵소추안을 인용했다. 헌재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촛불집회는 "탄핵 인용"을 외치고 행진 경로에 헌재 인근을 포함시키는 등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촛불은 정치권을 움직여 한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국민 다수의 의사로 해임했다.

 촛불집회는 지난해 12월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특검팀에도 간접적인 힘을 보탰다. 촛불은 특검팀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등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을 구속할 것을 촉구했다. 특검을 향한 탄핵반대단체들의 여론전에 맞서는 역할도 했다.

 장기간 이어진 대규모 집회였음에도 비폭력·평화 기조를 유지해 공권력과 충돌이 없었다는 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는 집회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는 가운데 12일 밤 서울 광화문 일대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다. 2016.11.12.  photo@newsis.com

 과거 대규모 집회에서는 경찰이 차벽을 세우고 행진을 막거나 물대포를 발포하는 등 강력한 물리적 공권력을 행사해 과잉 진압 논란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부 한시적 연행자가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참가자와 공권력 사이에 거의 충돌이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촛불집회가 '청와대 앞 100m 행진'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도 있다. 경찰은 국회와 법원, 대통령 관저 등 특정한 장소 100m 이내에서는 집회와 행진을 제한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지난해 12월3일 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비폭력·평화집회가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시민의식도 돋보였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주변의 과격한 행동을 자제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놀라운 평화 집회'로 평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기존에는 청장년층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영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를 아울렀다.

 다수 국민의 뜻이 정치권·정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번 집회의 의미를 찾는 견해도 있다. 집회 구호 가운데 하나는 '국민이 권력이다'였다. 교과서로만 접해왔던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실제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염형철(49)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우리사회가 함께 움직여야할 부분이 있다는 인식 속에 촛불의 진화가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한다"며 "이런 인식이 향후 여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개혁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싱크탱크인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을 맡고 있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53) 경희대 국제대학 부교수는 "탄핵을 이끌어 내기까지 촛불집회의 역할이 컸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른 관점에서는 국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할 만큼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탄핵 이후 한국 정치, 행정 체계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를 시민들이 함께 토론해나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며 "단순히 부패에 연루된 정치인 한두명을 끌어내리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정치와 행정에서 부패가 발생할 수 없도록 제도, 교육, 노동 등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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