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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숨기고 예약판매"…출판사 vs 독자 '재미난 작당'

등록 2017.04.04 08:24:43수정 2017.04.04 09: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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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북스피어 X'·'마음산책 X'·'은행나무 X'. 2017.04.04(사진 = 세 출판사 공동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북스피어 X'·'마음산책 X'·'은행나무 X'. 2017.04.04(사진 = 세 출판사 공동제공)  [email protected] 

■'북스피어 X'·'마음산책 X'·'은행나무 X' 공동기획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죄송합니다. 저는 이 책을 어떻게 추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다', '매력적이다'라고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책 제목을 숨기고 팔기로 했습니다."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지난해 가을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은행나무 주연선 대표와 일본에 다녀왔다. 교토의 서점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목도했다. 매대 하나에 같은 책이 여러 권 쌓여 있었는데 책 표지에 제목 대신 이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출판사 브랜드를 믿고 사줬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권유다. 이 책(혹은 프로젝트)의 이름은 '문고 X'. 김홍민 대표는 보자마자 '아아,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이벤트 타이틀은 '문고X'. 책 전체를 전면 띠지로 가리고 래핑해 책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 채로 판매하는 문고본이다. 공개된 건 쪽수, 가격, 그리고 장르가 논픽션이라는 것뿐.  

 기획자는 '사와야 서점' 페잔점의 직원인 나가에 다카시로. '아사히신문'과 '모리오카 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모리오카 역 건물 안에 자리 잡은 사와야 서점의 페잔점에서 이 책의 판매는 한 달에 두세 권 정도였으나 '문고X'로 이름 붙이자 불과 일주일 만에 60부가 팔려나갔다.

 국내 유명 출판사 세곳이 제목과 지은이를 공개하지 않은 책에 대한 예약 판매를 진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소위 출판계에서 '떼거리 서점 유랑단'으로 통하는 대표들을 둔 출판사 북스피어·마음산책·은행나무는 공동으로 이벤트를 기획했다.

【서울=뉴시스】일본 '문고X' 매대. 2017.04.04(사진 =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일본 '문고X' 매대. 2017.04.04(사진 =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제공)  [email protected] 

 '북스피어 X', '마음산책 X', '은행나무 X'라는 이름으로 쪽수, 가격, 도서 관련 키워드만 공개한 책에 대한 예약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전국 650개 이상의 서점들로 '문고X' 기획이 퍼져 나갔는데 흥미로웠던 건 해당 책을 구입한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표지가 보이는 상태였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책을 사서 읽게 돼 정말로 좋았다. 접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소감이 많았다.

 독자들은 '부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제목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문고X 기획자의 당부도 흘려듣지 않았다. 실제로 '문고X'가 선을 보이기 시작한 작년 7월21일부터 해당 서점에서 공식적으로 이 책의 제목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12월 9일까지 SNS에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의 제목을 공개하지 않았다. "나는 '문고X'뿐만 아니라 '문고X' 기획의 취지까지 함께 구매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문고X'는 전국적으로 11만 부가 팔렸나갔다.  

 떼거리 서점 유랑단이 올해 1월 영국 옥스퍼드의 '블랙 웰' 서점에 들렀을 때도 비슷한 풍경을 봤다. 매대 한켠에 '어 노블 서프라이즈(A NOVEL SURPRISE)!'라는 타이틀로 책들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 각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 중 블랙 웰 서점의 스태프들이 엄선한 작품이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가려진 채 진열'돼 있었다. 알 수 있는 것은 가격뿐이었다.  

 김홍민 대표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서점들에서 시행하고 있었던 이벤트"라며 "'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Blind Date with a Book)'이라는 이름으로 구글링하면 곧장 알 수 있더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블랙 웰' 서점의 '어 노블 서프라이즈(A NOVEL SURPRISE)!'. 2017.04.04(사진 =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블랙 웰' 서점의 '어 노블 서프라이즈(A NOVEL SURPRISE)!'. 2017.04.04(사진 =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제공)  [email protected] 

 서점들은 다양한 콘셉트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책을 판매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봉인된 포장지에 소설의 첫 문장만 적어둔다든가, '기괴함' '유머러스함' 같은 키워드만 인쇄해 놓는다든가, 발행한 나라의 이름만 적어놓는 식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김 대표는 "'문고X'와 '어 노블 서프라이즈'를 목도한 떼거리 서점 유랑단은 '만약 이런 이벤트를 출판사가 주체가 되어 시행한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라고 생각해 봤다"며 "한국에서 이런 이벤트를 시행한다면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산책, 은행나무, 북스피어의 2017년 라인업 가운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좀 신선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책'을 선택해 동시에 출간해 보자는 데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이런 이벤트르 통해 '출판사와 독자가 함께 뭔가 재미난 작당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농담 같은 이번 이벤트는 만우절인 이달 1일에 각 사의 SNS를 통해 공개됐으며 오는 24일까지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판매를 진행한다. 교보문고에서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오프라인 예약판매'를 한다. 광화문점을 비롯한 15개 지점에서 역시 24일까지다.

 25일부터는 모든 서점에서 판매한다. 물론 이때도 제목과 저자를 숨기고 판매한다. 구입한 독자들에게는 5월16일까지 제목과 저자를 SNS 등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제목과 저자는 5월16일 자정에 공개한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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