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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2017~18년 전시 관련, 마리 관장 편지

박현주 기자  |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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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4-13 14:36:31  |  수정 2017-04-13 14: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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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뉴시스】국립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 국립현대미술관의 2017-18년 전시계획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

최근에 2016년말 발표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계획이 일부 중단된 것에 대해 지적한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그간 있었던 변화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앤디워홀의 '그림자들' 전시 개최 건은 2016년 여름부터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 세계적인 수준의 해외 미술관은 통상 3년에서 5년에 앞서 전시를 계획합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운영시스템상 장기적으로 미래 사업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통상 1년 단위로 계획해왔고, 이는 미술관 운영에 위험요소가 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매우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때마침 앤디워홀 '그림자들' 시리즈가 상하이에서 전시되고 있었고, 운송비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서울관의 공간을 고려했습니다.

'그림자들'은 20세기 대표작가 앤디워홀이 1978년에 제작한 뛰어난 작품입니다. 보기 드문 워홀의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고, 구상과 추상 사이의 오랜 전쟁을 잠재울 가능성과 특성,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탐구를 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워홀의 '그림자들'은 ‘형’과 ‘색’의 기도문이자 시각적인 만트라이고, 오리지널리티, 감수성, 그리고 예술형식의 한계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또한 100점이 넘는 거대한 캔버스로 이루어진 고차원적인 설치미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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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저는 대여비용을 낮추기 위해 '그림자들'을 소장하고 있는 뉴욕디아재단과 협상한 끝에, 총 예상비용은 약 8억원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전시로는 낮은 비용입니다. 그러나 개인전에 이 정도의 예산을 지출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반적 전시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게 됨으로써 형평성과 관련한 외부에서의 지적이 있을 수 있고 이는 경영을 잘못했다는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상하이에서 전시가 끝나기 전까지 의사결정을 해야했고, 대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구조였다면 전시는 실행 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른 미술관에서 이 전시를 개최했더라면 기업의 후원과 입장료, 도록 및 문화상품 판매를 통한 수익으로 큰 성공을 거뒀을 것입니다.

'피카소와 전통예술'전시는 모더니즘의 정수인 피카소 작품의 근간에 전통, 장인정신, 전원에서의 삶, 장난스러움과 관능, 비이성성, 아이들의 놀이 등 대중적인 요소가 있다는 개념에 대한 탐구입니다. 서구중심의, 전통을 버리고 산업화와 대도시의 맥락 안에서 대도시의 맥락으로 생산해낸 기성품을 찬양하고 끊임없는 진보와, 신체가 없고 관념만 있음을 믿는 근대의 규범을 넘어서, 보다 다양하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근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전시였습니다.

또한 맥을 함께 하는 소위 말하는 “다른 모더니티” 에 대한 일련의 전시를 기획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초석이 되는 전시였습니다. 서구에서는 공예를 순수미술에 포함시키지 않고 등한시했지만, 한국에서는 공예를 회화나 조각과 같은 반열에 두고 있습니다. 피카소 전시는 공예를 바라보는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최고의 피카소 전문가이자 저명한 큐레이터 두 분이 기획한 유사한 전시를 마르세이유의 MuCEM이 개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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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신소장품 2013~16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둥까지'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017.03.15. myjs@newsis.com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는 기획단계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작품 대여를 재협상하고, 대여받지 못할 경우 대체 작품을 물색하며, 피카소의 유족들과 유럽의 주요 미술관과 끊임없이 협상 해야 했습니다. 저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예리하고 기발한 모더니티에 대한 비전을 선보이기 위해 가장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아시아 최고 수준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시 비용이 마르세이유에서 200만 유로(약24억원) 이상이었고, 우리는 최소20억원을 예측했으며, 30억원을 육박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예산이 연간으로 편성되는데 그 금액이 2017년 기준으로 총 88억원입니다. 예산이 많아 보이지만 3관의 운영면적이 현재 21.461제곱미터인 것을 감안할 때 충분하지 않은 규모입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예산을 형평성 있게 여러 전시에 분배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규모가 매우 큰 단일 전시를 진행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 최고수준의 미술관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계약서상 저에게 주어진 미션중 하나입니다. 저는 처음에 외부에서 재원지원을 받아 부족한 예산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두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작년 '이중섭'전과 같은 기업 후원 전시의 경우, 입장료, 도록 판매 등으로 높은 수익 창출하였고 이를 후원 기업과 배분하였습니다. 미술관은 그 수익이 다시 전시에 쓰일 수 있는 생산적인 형태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카소'전의 경우, 만약에 미술관이 15억원 정도의 금액을 기업 후원을 통해 충당가능하고, 15억원 정도는 '이중섭'전의 경우처럼 파트너십을 통해 충당할 수 있었다면, 이 전시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의 전시도 50억원, 또는 그 이상이 듭니다. 하지만 피카소 전시가 미술관에 지나친 부담을 안긴다는 판단 하에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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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는 4월 덕수궁미술관에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이 열린다.
관장으로서, 저는 우리 기관을 이끌고, 영감을 주고, 동기부여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미술관을 운영하며 대중앞에 설 책임이 있습니다. 예술의 측면에서, 저는 혁신과 실험을 마다하지 않지만, 기관 운영에 있어서는 실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에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절대로 우리 직원들과 미술관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또는 공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 하에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1938-1965)'전시 개막 연기는 출품되는 작품들의 특성 때문에 계획보다 개막이 늦어졌습니다. 이집트에 있던 작품 대부분은 최초로 국외로 반출되는 이집트의 문화재급의 작품입니다. 긴 여정을 떠나기 위해 상태조사를 하고 반출 승인을 받은 뒤 포장을 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덕수궁관에서 한창 전시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전시를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과 여러 기관 관계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저의 소통 역량과 리더십,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과의 소통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또한 학예사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학예사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동기부여를 하며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는 단체로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시기획은 전략을 짜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러 명이 모인 단체는 강한 리더가 있지 않는 한 전략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관장은 모든 부서의 의견을 들어본 후 결정을 내립니다. 그 과정에서 채택되는 전시기획도 있고, 그렇지 못한 기획도 있습니다만, 모든 직원의 제안을 다 수용할 수 없음은 여러분들께서도 충분히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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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립기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여러 행정규제를 받으며 운영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기관 운영을 할 때 어떤 규정의 경우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간에 생기는 지위 차이는 법인화 추진계획이라는 명확한 원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는 정규직원을 채용하는데도 방해가 됩니다.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부터 줄곧 체감해온 사안입니다. 금년 2월에 단행한 조직개편은 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조직개편으로 근로계약조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미술관이 제대로 된 발걸음을 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미술관은 “하나의 미술관, 하나의 조직”에 부합하도록 개편되었습니다. 각 부서가 더욱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직원들의 업무를 특화하며 직원 또는 부서간 협력을 촉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천관은 슬럼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각 부서는 기능 위주로 분산 배치되기도 했지만 과천관은 한국미술 외 다양한 야심 찬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야외 조각공원에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969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아시아의 원로 격인 근현대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으며 유럽의 여러 미술관보다도 그 역사가 깊습니다. 또한 2013년 서울관 개관 이후 총 93.053제곱미터로 확장되어 규모가 큰 미술관에 속합니다. 새로운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미술관의 규모에 걸맞은 조직과 예산 구조가 수반되기를 바라며 이러한 방향으로 저의 힘을 쏟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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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남궁선
저는 제 계약서상 수립되어있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목표달성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각 부서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또 모든 직원들의 훌륭한 태도와 가치관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문은 언론인 여러분께 항상 열려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그간 적극적으로, 그리고 시의 적절하게 소통하지 못한 점,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넓은 아량에 감사 드립니다.

2017년 4월 11일 국립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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