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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 신고 산 그림 그렸던 박고석…현대화랑, 탄생 100주년 기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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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4-21 16:34:53  |  수정 2017-04-21 17: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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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고석, 외설악에서, 1978년_강운구 사진 촬영. 현대화랑 제공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남자는 산을 좋아했다. 제삿날에도 너희들끼리 하라는 말만 남긴채 산으로 가기 일쑤였다. 그런 남자한테 물어볼수도 없었다. '언제 오시냐'고.

 "그걸 제일 싫어했어요. 언제 오냐는 말을요."

 산을 좋아한 남자와 살았던 여자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그 남자는 가고, 그림만 남은 세상, 이제 그 남자 대신 전시장에 나와, 그 남자 이야기를 했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이 그 남자, '박고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마련했다. 25일부터 박고석(1917~2002)화백의 전 시대를 아우르는 유화 수채화 드로잉등 40여점을 전시한다. 국내 인상파 선두주자인 오지호·김주경이후 풍경을 야수파풍으로 접근한 표현주의적 추상의 독자적 화풍을 이뤘지만 덜 알려진 박고석 위상을 재조명한다. 그림 총 200여점이 수록된 국영문 화집도 발간했다. 생전 좋아했던 코발트 블루색을 표지로 했다.

 21일 현대화랑에서 만난 고 박화백의 부인 김순자 여사는 "이번 전시가 너무 좋은데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고 했다.

 "그 남자와 혼인을 해서 손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전시장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이제 화를 안내기로 했다"고 말하던 그녀는 다시 말을 수정했다. "손해 안봤어요. 화가 다 풀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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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쌍계사 길, 1982, 캔버스에 유채, 53 x 65.1 cm
  올해로 구순인 미망인은 고생한 티가 전혀 없이 고운 모습이다. 장수비결을 묻자 "마음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탓"이라며 "생전 가난했고 낭만적인 남편이 밉기도 했고, 철없는 행동에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도 털어놨다. 하지만  "예술가와 함께한 삶은 행복지수가 높다"고 했다.

 산을 좋아했던 남자, 박고석은 국내 미술계에서 유영국과 함께 '산 작가'로 알려졌다. 강렬한 색채 대비, 두터운 붓터치로 한국의 산들을 포착, 산을 그리는 것이 아닌, 산과 하나가 되어 그린 작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화로 그린 산 그림은 많지 않다. 300여점을 남겼다고 했다. 그 이유를 부인은 "게을러서"라고 했지만, 화가 박고석은 유화와 수채화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아들이자 사진작가인 박기호는 "아버지가 떠나고 정리해보니 수채화가 3000여점쯤 됐다"고 했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박고석 작품 특징은 대작이 없다는 점인데 소품을 통해서도 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가였다"며 "10호 남짓의 캔버스에도 웅혼한 자연의 자태가 담겨있는데 이는 작품은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밀도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작품에는 그만의 고유함이 듬뿍 실려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박고석의 작품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박고석의 1950~60년대 표현주의적 화풍을 드러내는 작품과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할 당시 시도했던 추상작품, 산행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을 모티브로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1970~80년대와 1990년대 작품이 대규모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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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21일 고 박고석화백 부인 김순자 여사가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행복한 일도 많았다며 박 화백과의 추억을 소개하며 활짝 웃고 있다.
 "선생님은 백암산,도봉산, 설악산을 좋아했어요. 설악산이 좋아서 1년간 산에서 살기도 했지요."

 산 그림에 빠진 남편 대신, 부인 김순자 여사는 생계를 꾸렸다. 도시락 장사도 하고, 무대의상도 만들었다. 당시 보기드문 엘리트 여성이었다. 국내 유명 건축가 고 김수근의 누나인 부인은 이화여대 미술과를 나온 신여성이었다.

 스물세살때, 서른넷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파란만장 우여곡절 삶이 시작됐다. 결혼날을 잡은게 '6.25'였다. 을지로 3가 적선가옥에 셋방 신혼집을 얻었는데 전쟁이 터졌다. 다다미방을 뜯어 그림만 숨겨놓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전쟁이 끝나고 오니 집주인은 '시간이 지났다'며 그림만 찾아가라고 했다. 결혼식을 안해도 될까 했지만 남편은 결혼만큼은 해야 된다고 했다. 인사동 앞에서 '태화여자관'에서 신부, 신랑측 다 합해서 아홉명이 있는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동생 김수근이 찍은 결혼사진이 이번 화집에 실렸다.

 그림밖에 모르는 남편이었지만 책임감은 강했다. 어쩌면 '1세대 기러기 아빠'다. 가난했지만 교육열이 남달랐던 부인은 3남1년 모두 미국 유학을 시켰고, 미국에 따라가 뒷바라지 했다. 그곳에서 패션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래서 남편이 대단해요. 아이들 교육비를 해결했고, 미국에 간 나에게 불평하지 않았지요."

 1990년 고희 기념전을 현대화랑에서 연 이후 2007년 박고석 5주기를 열며 박고석 화백을 잇따라 재조명하고 있는 현대화랑 박명자 사장도 깍두기를 담고 있거나, 등산화를 신고 그림을 그리던 박 화백을 떠올렸다. "그림 살 사람은 줄을 섰는데 그림이 안나와서 가서 보면 런닝 바람에도 등산화를 신고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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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외설악, 1984, 캔버스에 유채, 60.6 x 72.7 cm
 그는 산을 왜 그리게 된 것일까. 

 서성록 평론가는 "실향민으로서, 변화하는 세상과 변하지 않는것, 불변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고 했다.

 평양 출신 박고석은 1935년 일본에 진출, 일본대학 예술학부 미술과에 입학했다. 김환기도 이 학교 출신으로 박고석의 4년 선배다. 1945년까지 일본에서 체류후 1950년대 서울로 왔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에서 피난지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거칠고 굵은 윤곽선으로 피난 시절의 암울한 모습으로 작품에 표현했고, 질감을 살린 붓질과 단색 또는 중복된 색면을 통해 표현주의적인 화면을 보여 주었다.

 1950년대 후반 판에 박은 듯한 사실주의 일변도에 염증을 느껴 한묵, 황염수, 이규상, 유영국와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여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다. 한동안 추상을 시도한 그는 1968년부터 산행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산을 소재로한 작업이 진행됐다. 그가 찾은 산은 서울 근교의 산을 비롯해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 한국의 명산에 올라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작품에 담아 냈다. 

 1986년 화업 50년을 맞아 '산 그림'만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힌바 있다. "진실은 생활주변에 있는데 산은 내 주변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공감을 주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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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공룡능선, 1978, 캔버스에 유채, 53 x 45.5 cm
 도봉산에 암벽등반을 하다가 떨어져 척추를 다치기도 했던 박고석 화백은 2002년 5월 23일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전시는 엄선된 ‘작품’과 다시 없을 ‘규모’로 눈길을 끈다. 현대화랑은 "기존에 뿔뿔이 흩어져 볼 수 없었던, 숨겨진 작품을 모으는데, 수개월의 시간과 미술관계자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박고석의 30대 중반에 제작하였던 1950년대 작품부터 1992년 작고하기 10년전의 만년의 작품까지 망라된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뮤지엄 산과 개별 소장가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인 김순자 여사를 포함하여 유족 뿐 아니라 미술평론가(뮤지엄 산 관장 오광수, 안동대학교 서성록), 갤러리 대표들(현대화랑 박명자, 가람화랑 송향선, 샘터화랑 엄중구,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이 한자리에 모여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작품을 선정하고 각각의 경로로 작품을 수배해 이번 전시를 만들었다.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들었던 박고석 화백의 시대별 대표작이 한꺼번에 모인 이번 전시는 박 화백의 평생의 작가적 행보와 작품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편, 앞으로 다시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전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산을 좋아했던 남자, 그가 세상을 떠난지 15년, 그의 그림을 모아 전시를 여는 부인 김순자 여사는 "이게 박 선생을 위한 마지막 행사라는게 이상하게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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