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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선후보 경제공약이 공허한 까닭은

등록 2017.05.02 18:36:06수정 2017.05.02 18: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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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호균 기자 = 19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주요 정당 후보들의 공약집이 모두 완성됐다.

 유권자들의 지지 후보가 어느 정도 결정된 상태에서 '스윙보터(부동층)'들을 공략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는 경제 공약이다.

 그런데 가장 당선이 유력하다는 후보의 공약집조차 대선 열흘 전에 나왔다. 다른 후보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엔 너무 촉박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대내외적 리스크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쌓인 구조적 문제로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 경제를 뜯어고칠 발상의 전환이나 획기적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런 기대조차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후보들은 저마다 '공공일자리 81만개', '기초연금 30만원', '유류세 인하' 등 다양한 대표 경제 공약을 전면에 내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약집만 보면 5월 이후에는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내 살림살이도 확 좋아질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만 펼쳐진다.

 표심을 유혹해야 하는 선거 공약의 특성상 유권자가 듣기 좋은 내용들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음을 감안해도 이건 아니다. 우리 경제 현안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정부예산이나 통크게 쓰겠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재정 확대 등 몇가지 단기 처방으로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 경제가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경기적인 요인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경제 체질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 하락과 저출산·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2% 대 후반으로 떨어졌다는 게 주요 연구 기관들의 분석이다. 잠재성장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총요소생산성은 2011년 이후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결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개혁이 필수적이지만 대선주자들은 이런 얘기를 먼저 하지 않는다. 구조개혁에는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구조개혁에 실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개혁이다.

 정부의 '임금피크제', '노동개혁 4법', '양대지침 개정' 과제들은 노조와의 원만한 타협 없이 진행됐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실패가 구조개혁의 불필요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 정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요 국가들 중 가장 연공성이 높아 갈수록 생산성과 괴리가 생기는 임금 체계, 산업 구조 변화에 발맞춰 나가기 힘든 경직적 노동시장은 이념을 떠나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문제다.

 현재 우리 경제 시스템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하는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뿐 아니다. '시험 기계'만을 양산하는 교육시스템, 공공부문의 낮은 생산성, 경제 기득권 집단들의 지대추구행위 등도 계속 우리 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보다 큰 그림을 마련해야 한다. 성장의 온기가 가계로 확산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는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고용과 소득증대 또한 시급한 화두다.

 구조개혁 과정에서 복지를 강화하고 더욱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필요하다. 기업집단의 민원창구로 전락한 박근혜 정부가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했던 구조개혁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 투명하고 공정하며 진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 경제의 근본 틀을 바꾸고 체질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런 길을 가야 한다는 점, 솔직하게 이를 밝히고 미래를 위해 고통을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 당장 확실한 미래 비전도, 분명한 솔루션도 보이지 않지만 국민의 역량을 한데 모아 그 고통스런 길을 앞장서 가겠다"고 말하는 후보를 기대하는 건 기자만의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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