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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대통령의 적(敵)

등록 2017.05.10 05: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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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반대자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성공적인 국정 운영도 어려워
지원 세력을 최대한 늘리려면
스스로 성(城)을 허물어뜨려야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1976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땅콩농장 주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인공은 지미 카터 전 조지아 주지사. 불과 10개월 전만 해도 그의 인지도는 2%에 불과했다. 카터는 1년 만에 무명 정치인에서 세계적인 지도자로 떠올랐다.

 운명이 신데렐라를 만들었다. 개인적 역량보다는 시대적 상황이 대통령 선거를 좌우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74년 8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내몰리자 자진 사퇴했다. 후임자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서둘러 닉슨의 사면을 발표했다. 

 정치인들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비춰졌다. 정치인은 비리와 거짓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더욱이 재선에 도전한 포드 대통령은 '닉슨의 아바타'로 여겨졌다. 포드로서는 참으로 버거운 싸움이었다.

 카터는 미국인들의 정치 불신을 파고들었다. 그는 '도덕 정치'를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웠다. 도덕과 정치의 조합에 대해 '생뚱맞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마추어리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가 아직도 미국인의 뇌리에 생생할 때였다. 미국인들은 워싱턴 정가(政街)와 거리를 둔 아웃사이더에게 마음을 열었다.

 포드는 막판 추격에 열을 올렸지만 카터를 추월하지 못했다. 카터는 50.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카터가 승리를 거둔 주는 23곳으로 포드(27곳)보다 적었지만 297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함으로써 포드(240명)를 따돌렸다.

 승리의 기쁨은 잠시였다. 화려한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좋지 않은 조짐이 엿보였다. 카터 캠프에는 백악관 입성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들은 자리다툼을 벌였다. 카터는 77년 1월 20일 취임 직전에야 백악관 참모진을 확정했다. 전임자들에 비해 6주일에서 8주일이나 인선이 늦어졌다.

 카터의 뜻은 원대했다. 하지만 역량은 뜻을 받쳐주지 못했다. 경험도 부족했다. 카터는 워싱턴 정계에 어두웠다. 자신이 워싱턴을 모르면 잘 아는 사람을 써야 했다. 카터는 그러지 않았다. 자기 사람들만 고집했다. 그게 카터의 패착이었다.

 카터는 취임과 함께 대대적인 개혁을 준비했다. 에너지, 복지, 세제(稅制), 의료보험, 사회보장기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이런 개혁 과제는 의회의 도움이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법을 만들어야 비로소 정책으로 빛을 볼 수 있다.

 특히 의회 상임위원장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의회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의회를 '상임위원장들이 지배하는 정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카터는 럿셀 롱(Russell Long) 상원 재무위원장을 우군으로 확보하지 못했다. 롱 재무위원장은 사사건건 카터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미국이 유례없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는데도 카터 행정부는 무력했다. 카터는 내정은 물론 외치에서도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카터의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79년 2월 23일 "비판은 고조되고 있다. 카터를 오랫동안 지지했던 사람들도 환멸을 느끼고 있다. 안정은 위에서부터 시작돼야 하는데 카터가 이런 안정을 제공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활짝 열렸다. 자신의 표현대로 '운명'일 수 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환멸이 이런 운명을 이끄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의 운명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의 운명이 곧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안보는 위기 상황이고, 경제 형편도 좋지 않다. 모두가 힘을 모아야 극복할 수 있는 삼각파도다. 반대자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정 운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이 41%인데 반해 다른 4명 후보의 득표율은 58%에 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위'를 강조할지 몰라도 다른 정당은 '58%'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야당을 적(敵)이 아니라 우군(友軍)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내부에서 원칙과 순혈주의만을 강조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대통령의 적(敵)이다.

 성(城)을 쌓으면 자신의 영토는 제한된다.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은 불가능해진다. 성(城)을 허물어뜨리면 달라진다. 영토가 한없이 넓어진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대통령을 원한다.

참고문헌
1) 리처드 뉴스타트 지음. 이병석 옮김. 2014. 대통령의 권력. 다빈치
2) 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2015. 권력의 종말.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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