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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혜선 "'헌신'하기위해선 죽을만큼 노력해야"

등록 2017.05.29 18:16:35수정 2017.05.29 18: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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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보통의 삶을 살면서 '나 연주하는 사람 맞아?' 이런 생각도 굉장히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제가 '아, 인간이 됨으로써 연주를 하는 것이고 고귀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제대로 된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인가'란 것을 경험하면서 거기서 오는 따뜻함이 있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구나 생각하게 됐죠.

  피아니스트 백혜선(52·대구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은 임동혁·김선욱·손열음·조성진에 앞서 클래식계에서 주목받은 스타 피아니스트다. 거장과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다리를 잇는 2세대로 대표적인 중견 연주자로 교육자이자, 엄마로서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

 29일 광화문에서 만난 백혜선은 "애를 키우는 한 엄마로서 성숙을 하고 인생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어떤 것을 들으면 참지 못하는 것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살다 보니까 이런 것에서는 한 번 꿀꺽 삼키고 모든 것을 대할 때 이런 게 달라지는 것이구나 생각해요. 연주를 계속해서 하면 좋은데, 사실은 여자의 삶을 살면서 선생을 하면서 종합적으로 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백혜선은 국내 클래식 시장이 태동할 무렵 윌리엄 카펠, 헬렌 하트, 리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굵직한 해외 콩쿠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특히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 수상, EMI 인터내셔널 클래식에서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음반 3개를 발매하는 계약을 해서 국내 클래식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교육자로서 후배 양성에도 열정을 쏟았는데 1995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고여 있고 싶지 않다"며 10년 만에 서울대 교수 직을 박차고 나와 또 주목 받았다.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email protected]

 "콩쿠르 수상하고, 연주하고 그러면서 두려움이 되게 많았어요. '이렇게 쉽게 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꼭짓점을 치면 분명 내려가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것 아닌 것 같다고 느꼈어요. 포장이 쉽게 되는 것을 보면서 빨리 떠나야겠다 생각했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주활동을 지속하기 힘들었던 것도 당시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 둔 이유다. "제 애들은 4-5세였고요. 할 수 없었어요. 또 교수라는 것이 좋지만 너무 안정적으로 있으면 사실은 배우는 게 없어진다는 걸 느꼈죠. 힘든  과정들이 저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이해하게 하고 음악을 깊게 알게 됐죠."

 백혜선은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연주와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았다. 첼리스트 문태국의 스승이기도 한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와 브리지 레코드를 통해 5년 전 베토벤 첼로 전집을 발매하기도 했다.  

 육아를 병행하면서 연주 활동을 이어가는 여성 아티스트는 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교육 쪽에서도 10년 일했고 외국의 교육을 접했고,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선생님, 학생, 엄마, 자녀 각자의 입장을 알고 보게 되는 것 같죠. 거기서 오는 단점과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엄마라는 것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가 없죠. 제 인생 자체가 아이가 있고 음악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죠. 큰 아이가 2년 후면 대학을 가기 때문에 이후에는 좀 더 자유로워 질 것 같아요."  

 백혜선은 오는 10월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를 마치 제목에 닮은 듯한 독주회 '헌신(獻身), 비욘드 플레잉(Beyond playing)'을 연다.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email protected]

 음악인생에 중반기를 맞으며 후배 양성과 더불어 피아니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만큼 중요한 연주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규모가 있는 독주회는 4년 만으로 만만치 않은 레퍼토리를 골랐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나란히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1부에서 들려주는데 베토벤의 연주기법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2부에서 들려주는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No.123, 먹구름, 모차르트 오페라 돈조반니의 회상 역시 만만치 않은 기교와 감성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오는 2018-2019시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라는 큰 프로젝트를 앞둔 전초전 성격의 연주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50대에 들어서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다가 베토벤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꼭 전곡을 연주해야 되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니까 제 자신도 정리가 됐죠. 여러 이유를 제쳐놓고 도전함으로써 베토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많이 달라질 것 같고 음악인으로도 한 단계 더욱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쉬운 것을 탈피하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 같아요. 호호. 무섭고 두렵지만 해봐아겠다 생각했죠."  

 엄마, 교육자, 연주자 중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연주를 하는 것은 본인을 계속 계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엄마로서도 선생으로서도 힘이 없어지는 것이 많이 느껴졌다"고 했다.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백혜선, 피아니스트. 2017.05.29. (사진 = 크레디아 제공)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연주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연주를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죠. 굉장히 축복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잘 하는 것은 셋 중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학생도 꽃을 피울 수 있게 하고 자기도 연주에 온전히 몰두하면서 병행하기 위해서는 없는데 그러면 죽어야(죽을 만큼 노력해야) 한다"고 웃었다.  

 "그래서 제 공연 제목이 '헌신'이에요. 음악을 위해서, 그냥 이걸 해도 죽고 저걸 해도 죽어야 하죠. 사실은 엄마의 역할도 그렇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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