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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치명적 에너지

등록 2017.05.30 17:21:42수정 2017.05.30 17: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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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민주당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비용보다는 안전에 초점을 맞춰
성공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려면
정보 공개 및 국민의 이해 필수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조금 전 골프장에서 맛봤던 감흥이 싹 사라졌다. 평생 전쟁터를 누볐지만 이런 끔찍한 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젠하워는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으로 휴가를 떠났다. 골프광(狂)다운 휴가지였다. 골프를 마음껏 즐기며 선거 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골프만 즐긴 것은 아니었다. 차기 대통령으로서 틈틈이 정부 부처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았다. 원자력위원회의 보고는 아이젠하워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원자력위원회는 일주일 전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신형 수소폭탄 '마이크'를 실험했다. 마이크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한 원자폭탄의 150배에 달했다.

 아이젠하워는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핵전력(核戰力)으로 소련을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런 믿음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소련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군비경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미국과 소련 모두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전략에 매달렸다. 적(敵)이 핵무기로 선제 공격에 나설 경우 핵무기 보복을 통해 상대방을 절멸시킨다는 구상이다. 적의 공격을 억지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아이젠하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먼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실천해야 했다.

 미국은 원자력을 동력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원자력의 엄청난 파괴력을 전력(電力)으로 활용키 위한 시도였다. 원자력 잠수함이 1954년 첫 테이프를 끊었다.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USS 노틸러스'는 북극의 얼음 밑을 무려 2만2,000km나 누비고 다녔다. 동력으로서 원자력의 위력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소련의 타스통신은 1954년 "미국과 영국에 앞서 원자력 에너지 개발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남쪽 오브닌스크의 원자력 발전소가 전력 생산에 들어갔다.

 영국은 1956년 콜더홀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세계 최초로 상업용 전력 생산을 시작했다. 미국도 1957년 펜실베이니아 시핑포트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웠다. 제너럴 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는 경쟁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뛰어들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곳곳에 들어서자 방사능 누출 사고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79년 3월28일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앞다퉈 피난길에 올랐다. 정부에서 피난을 통보한 주민만 100만 명에 달했다.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은 유럽 전역으로 날아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원자력의 불길한 위력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라고 고백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원자력 비관론'은 더욱 팽배해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꼬리 위험(tail risk)'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일어나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원자력은 치명적 에너지다. 막대한 규모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상당수 국가들이 원전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추세다. 독일과 벨기에는 원전을 모두 폐쇄할 계획이고, 프랑스도 원전 의존도를 축소할 계획이다. 중국처럼 산업 생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나라도 있지만 대세라고 볼 수는 없다.

 민주당 정부는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한편 노후 원전을 폐쇄해 나갈 계획이다. '비용'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안전' 관점으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된다.

 탈(脫)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전력 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원전 산업의 경쟁력 상실 주장도 나온다.

 얻는 만큼 잃는 게 세상 이치다.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도 없고, 환경친화적인 동시에 효율성이 높은 동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 에너지원의 장·단점을 정확히 공개하는 한편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대니얼 예긴 지음. 이경남 옮김. 2013. 2030 에너지전쟁. 사피엔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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