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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깊어지는 경찰 고민 '장고 끝에 악수'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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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6-15 18: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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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변해정 기자 =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난다'.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다보면 국면의 흐름을 망각하기 쉽고, 판단력이 흐려져 잘못된 수를 쓰게 된다는 얘기다. 바둑에서 형세가 불리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서울대병원이 15일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외인사의 직접적 원인도 경찰의 '물대포'라고 결론냈다.

백씨가 숨진 지 9개월 만이다. 백씨는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317일 만인 2016년 9월25일 숨졌다. 유족은 40일 넘게 백씨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 경찰의 부검영장 집행 포기로 그해 11월5일에서야 영결식을 치렀다.

국민의 관심은 응당 경찰로 쏠렸다.

새 정권이 들어선 뒤 집회에 동원되는 '살수차'를 참되게 물을 이용한다는 의미의 '참수리차'로 바꿔가며 인권 경찰로서의 변화를 모색하던 터라 그 입장을 더욱 궁금해 했다.

하지만 경찰은 "내부 논의를 거친 뒤 월요일(로 예정된) 청장 기자간담회에서 밝히겠다"는 공지가 전부였다. 국민들은 궁금하겠지만 나흘 후에나 코멘트하겠단다.

당시 시위진압의 총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저는 공직을 떠나 자연인이다.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입을 다물었다.

신중하다기보다 '수읽기'를 하느라 결론을 미룬다는 느낌이다. 일선경찰서 경찰관마저 "(경찰)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고도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상황을 더욱 곤혹스럽게 몰아가는 측면이 있다"고 평할 정도다. 식구가 보기에도 불리해진 형세에 던진 '묘수(장고)'가 실상 '악수'가 돼버렸다는 시선이다. 

내부에서 조차 논란이 일자 경찰은 입장 표명 날짜를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경찰은 오로지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념이나 정치가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는 순간부터 국민의 시선은 따가워 진다. 설혹 눈치를 보더라도 그 대상은 '국민'뿐이다.

국민은 참수리차로 이름을 바꾸는 얕은 묘수보다는 정수(正手·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당하게 두는 수)를 원한다. 잘못했다면 깊이 반성하고 빠르게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인권 경찰로 거듭나려는 지금, 장고만이 능사는 아니다.

실전에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제 꾀에 넘어가 좋은 정수를 펼칠 시기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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