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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청소년 구하기][르포]해방구서 도움의 손길 내민 '학교밖 청소년'

등록 2017.06.18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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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승객쉼터에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실시됐다. <a href="mailto:photo@newsis.com">photo@newsis.com</a>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승객쉼터에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실시됐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지난 16일 오후 4시 신림역 승객쉼터.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불쾌지수가 급상승한 이 공간에서 10여명의 젊은이들이 탁자를 펴놓고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서울시립신림청소년쉼터·서울시립금천청소년쉼터 등에서 나온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관악·금천·동작·구로지역 가출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들이 이 더운날 한곳에 모인 것은 서울시의 '가출청소년 구하기' 행사 때문이었다. 이날 신림역을 비롯한 시내 청소년 밀집지역 7곳에서는 서울시 주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일제히 열렸다.

 2012년 시작된 이 거리상담(아웃리치) 행사는 가출·거리배회 청소년을 현장에서 발견해 가정 복귀를 돕거나 그들이 유해환경에 빠져들지 않도록 지원하는 구호활동이다.

 관악·금천·동작·구로지역 아웃리치행사가 이곳 신림역에서 열린건 신림역 근처와 순대타운이 가출청소년들의 해방구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타 지역보다 저렴하게 머물 수 있는 쪽방촌과 고시원,모텔 등이 많아 잠잘 곳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또 주점·노래방·PC방 등 24시간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밀집해 가출청소년들이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 수 있다. 2015년 3월 인근 봉천동에서는 10대 가출소녀 살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교시간이 되자 예상대로 거리상담소 주변을 지나치는 청소년들이 점차 늘었다. 게중에는 짙은 눈화장에 입술을 붉게 칠하고 치마를 줄여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청소년쉼터 직원들은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설문에 응하면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쭈뼛거리던 학생들은 선물을 준다는 말에 솔깃한 듯 상담소로 들어왔다.

 상담소에는 다트놀이를 비롯해 포푸리(실내의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한 방향제의 일종인 향기주머니)·양말·생리대·방향고무팔찌 등 선물이 준비돼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학생들이 자리에 앉자 청소년쉼터 직원들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설문지를 내밀었다. 설문지는 성별·연령·고민·가출이유·가출횟수·주거지 등 문항으로 구성됐다. 가출청소년인지 여부를 자연스레 확인하기 위한 설계였다.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승객쉼터에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실시됐다. 사진은 상담에 활용된 다트 과녁.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승객쉼터에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실시됐다. 사진은 상담에 활용된 다트 과녁. [email protected]

청소년쉼터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농담을 던지는 등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썼다. 학생들이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학생들이 더워하며 땀을 흘리자 직원과 봉사자들은 부채를 부치거나 소형 선풍기를 틀며 땀을 식혀주기도 했다.

 "저렇게 한다고 가출청소년이 스스로 가출했다고 하겠냐"고 묻자 한 청소년쉼터 직원은 "스스로 말하지는 않지만 얘기를 하다보면 위기 청소년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고 핀잔을 줬다. 청소년들의 사연을 듣다보면 이 세상에 있을 법한 거의 모든 종류의 가정파탄을 다 접하게 된다고도 했다.

 부모의 이혼후 아버지·어머니 양쪽으로부터 모두 거부당한 청소년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매다가 결국 먼저 가출한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이들은 모텔에서 '달방'이라는 형태로 또래들과 혼숙을 하는 경우가 많다. 20세 이상인 남자 가출청소년이 신림역 모텔에서 투숙계약을 맺고 연락을 돌리면 친구들과 동생들, 즉 가출팸(가출 패밀리)이 단체로 들어가 함께 사는 것이다.

 운명공동체가 된 이들은 군중심리로 똘똘 뭉쳐 범죄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집단으로 절도를 시도하기도 하고 남자청소년이 여자청소년들을 위협해 조건만남 등 성매매를 시키는 사례도 빈번하다. 혼숙을 하다 보니 여자청소년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날 거리상담에 참가한 학생들 역시 본인 또는 친구들의 가출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양모(18)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해주니 체험하기가 편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머니와 함께 상담소 주변을 지나가다가 상담을 받은 이모(16)양은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멀찌감치서 딸을 바라보던 이양의 어머니는 딸의 주변에 어려운 환경에 놓인 친구들이 많다며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담을 넘어 더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모(17)양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를 받을 수는 있지만 목적이 어떠냐에 따라 법도 강화해서 성매매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모(17)양은 "멘토 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선생님이 1대1로 자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사적인 얘기까지 하려면 1대1대화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학생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 자원봉사자들은 더 많은 가출청소년들이 거리상담을 받고 청소년쉼터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대에 다니는 장우중(26)씨는 "청소년쉼터에 거친 애들만 있을 것 같아서 꺼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선생님들이 통제를 잘해주니 겁먹지 말고 연락을 했으면 좋겠다"며 "(가출청소년들이 청소년쉼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승객쉼터에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실시됐다. 사진은 상담에 활용된 설문지.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승객쉼터에서 '찾아가는 거리상담 서울시 청소년상담시설 연합 거리상담'이 실시됐다. 사진은 상담에 활용된 설문지. [email protected]


 수원여대 사회복지과에 다니는 노효지(21)씨는 "쉼터를 찾아온 청소년들은 갈 곳 없고 생활이 힘들어 오긴 했지만 규칙이 있고 제약이 있으니 차라리 집에 가고 싶다는 양가감정을 드러낸다"며 "청소년기 특성상 자기만의 것을 이루고 싶고 자유롭고 싶은 것은 알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쉼터는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를 넘기자 청소년쉼터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유흥업소를 직접 찾아가는 현장방문활동에 나섰다. 거부감을 느낀 업소 주인들이 해코지할 수도 있어 7~8명이 모여서 한꺼번에 방문하는 방식이었다.

 이날 집중방문 장소인 순대타운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코인노래방이었다. '1곡 300원'이란 광고문구가 적혀있었다. 가출청소년들이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시간을 보낼만한 공간이었다. 청소년쉼터 직원들은 노래방 주인에게 "10시 이후에는 청소년이 출입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신신당부했다. 주인은 귀찮다는 듯 "알았어, 알았어"라며 얼른 돌아가라고 연신 손짓을 했다.

 최근 청소년들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인형뽑기방에는 청소년쉼터 연락처와 홈페이지, 활동내용 등이 적힌 물휴지가 전달됐다. 직원들은 "10시 이후에도 청소년들이 뽑기방에 계속 남아있거나 가출한 것 같으면 연락 좀 달라"고 요청했다.

 청소년쉼터 직원들은 이어 모텔 밀집지역으로 진입했다.

 모텔 주차장 한 구석에는 교복을 입은 남자 청소년 2명과 여자 청소년 2명이 모여 있었다. 어두운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무언가를 하다 들킨 듯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직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에게 물휴지를 건네면서 "너무 늦은 시간까지 있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여학생이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반면 남학생들은 이 장면을 외면하며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청소년쉼터 직원들은 모텔 주인에게도 "청소년이 투숙하지 못하게 해 달라. 혹시라도 있으면 쉼터에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 주인은 "수고한다"며 생수 2병을 건넸다.

 모텔촌을 통과하던 중 청소년쉼터 직원 중 1명이 손으로 한 승합차를 가리켰다. 승합차 운전석에는 남성 1명이 앉아있었고 나머지 자리에는 여성들이 여러명이 앉아있었다. 전형적인 성매매 대기 현장이라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었다.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은 이른바 '불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은 이른바 '불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email protected]

모텔촌에서 벗어났지만 키스방 등 유흥업소는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가출청소년들이 신분을 속이고 일할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

 청소년쉼터 직원들은 한 키스방에 들어가 업주에게 "여자 청소년들이 취업하고 싶다고 하면 연락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 업주는 "그럴 일 없다"며 웃었다. 그러나 업주 옆에는 10대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있었다. 헐렁한 흰 셔츠를 입고 앉아있는 앳된 외모의 여성은 청소년쉼터 직원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현장 방문을 마친 청소년쉼터 측은 단속권한이 없어 계도활동에 그치는 점을 아쉬워했다. 가출 여성청소년들을 성매매로 끌어들이는 남성들, 그리고 성매수 남성들에 대한 성토도 있었다.

  금천중장기청소년쉼터 박미란 팀장 "어린 애들에게 도대체 달방을 왜 주나. 그리고 어른들이 왜 저런 (키스방 같은) 사업을 하나. 그것도 다 수요가 있으니 저러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런 것을 보면 딸들을 조심시키기 전에 아들들부터 잘 교육시켜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는 가출청소년 문제 등 각종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고 청소년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궁극적으로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미자 시립금천청소년쉼터 소장은 "노인과 아동에 대한 지원은 있지만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 애들을 우습게 볼 수 없게 해야 한다"며 "투표에 의해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선거연령을 낮춰 청소년들이 투표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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