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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 철학자를 살해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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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6-2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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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과 편견은 동전의 양면
진실이라고 굳게 믿었더라도
거짓으로 드러날 때도 많아
신중한 표현이 올바른 자세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칠순(七旬)의 철학자가 법정에 섰다. 그는 반(反)국가 범죄를 저질렀다. 최악의 경우 사형선고도 가능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침착한 어조로 스스로를 변론했다. 논리는 완벽했지만 호소력은 떨어졌다.

재판정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불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그의 인상부터 호감을 심어주는데 실패했다. 작달막한 몸매에 배까지 불룩 나왔고, 입술은 두껍고, 코는 납작했다. 사람들은 "순수한 영혼은 외모도 뛰어나다"고 믿었다. 생김새만으로도 그는 유죄 판결을 받기에 충분했다.

죄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였다. 시인 멜레토스는 BC 399년 5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신(神)을 거부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 고발했다. 아테네에서 신을 거부한다는 것은 국가를 부정하는 짓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신이 세상 곳곳에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 아테네를 지배했다. 과두정에서 민주정으로 바뀌어도 이런 믿음은 그대로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관행이나 전통을 깨트리는 것을 금기시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짓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아테네 민주정은 추첨을 통해 공직자를 선출했다. 시민들은 추첨 결과는 곧 신의 섭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추첨제도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추첨을 통해 선원이나 건축가, 또는 플루트 연주자를 뽑지 않는다"며 추첨을 통한 공직자 선출을 비웃었다.

많은 배심원들이 법정에 들어서기 전부터 유죄를 확신했다. 아테네에서 신성모독은 공동체에 대한 위협을 의미했다. 누군가 신을 모욕하면 그는 물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믿었다.

시기도 소크라테스에게 불리했다. 아테네는 BC 404년 숙적 스파르타에 무릎을 꿇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28년 만에 막을 내렸다. 아테네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스파르타에 항복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치욕과 좌절의 계절을 맞았다. 종전 직전까지 스파르타의 후진성을 마음껏 비웃다가 이제는 스파르타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희생양을 찾았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몇 해 전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요구를 정면 거부했다. 철학자이기 앞서 상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기 때문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BC 406년 에게해 제해권을 놓고 아르기누사이 제도에서 한판 승부를 펼쳤다. 전투는 아테네의 승리로 끝났다. 전투가 끝날 무렵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악천후로 사상자 수습은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병들의 시신이 아테네 바닷가로 떠내려왔다.

6명의 제독이 직무태만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 평의회 의장 자격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물론 추첨을 통해 의장으로 뽑혔다. 시민들은 인민재판을 요구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불법'이라며 거부했다. 시민들이 반역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결국 다른 사람을 의장으로 내세워 6명의 제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진실을 확신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공적(公敵)으로서 제거되는 게 마땅했다.

확신은 예리한 칼과 같다. 확신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신의 믿음을 고집한다. 반대나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무시하고, 봉쇄한다. 그것이 '틀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확신은 편견의 다른 이름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의 확신을 한탄했다. 확신은 편견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목 놓아 애도했다.

고대 그리스시대처럼 지금도 확신이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나만이 진실이자 선(善)이라며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욕설과 노골적인 위협마저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한다. 내 편에게 불리하면 객관적이고 정당한 인사 검증 자료조차 '불법 수집 자료'로 낙인을 찍는다. 문자폭탄을 통해 온갖 험한 말을 늘어놓고도 당연한 권리 행사로 여긴다.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도 동료 시민이다.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존중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 확신은 갖더라도 표현은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증오와 반목만 확대 재생산될 뿐이다. 이러다가 시민들이 철학자를 죽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참고문헌
1)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2004.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2)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 박재욱 옮김. 200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까치글방.
3)베터니 휴즈 지음. 강경이 옮김. 2012. 아테네의 변명. 옥당.

 timoth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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