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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황희(黃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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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7-04 05:00:00  |  수정 2017-07-04 16: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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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살인사건 은폐에 뇌물 수수
허물도 공로 이상으로 많아
세종처럼 능력에 초점 맞춰
인재를 발탁하고, 지원해야

 【서울=뉴시스】 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오랜 풍상(風霜) 속에 진실의 색깔은 바랜다. 심금을 울리기 위해 비극적 요소를 덧칠하거나 과장한다. 이상형을 제시하기 위해 공(功)을 부풀리는 동시에 허물은 감춘다. 어느새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조작된 이미지만 전해진다.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조선 초기의 명재상 황희(黃喜)의 모습도 그렇다. 청백리에 뛰어난 덕망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이는 굴절된 이미지일 뿐이다. 과(過)도 상당했지만 공(功)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성인(聖人) 같은 모습만 부각된다.

 좌의정 황희는 1427년 우의정 맹사성, 형조판서 서선 등과 함께 의금부에 하옥됐다. 의금부는 주로 왕의 명령에 따라 중죄를 조사했다. 그만큼 이들의 혐의가 무거웠다는 얘기다.

 이들은 살인사건을 은폐했다가 적발됐다. 황희와 서선은 사돈 관계였다. 황희는 서선의 아들 서달을 사위로 맞았다. 서달의 살인사건을 무마하려다 사달이 났다.

 서달은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온천에 갔다가 신창현(현재의 아산)을 지나쳤다. 서달은 "신창현 아전이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며 종을 시켜 매질을 했다. 동료 아전 표운평이 이를 말리며 항의하자 서달은 그를 때려죽였다.

 아전은 하급 관리다. 사사로이 관리를 때려죽였으니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 서달은 아버지와 장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황희와 서선은 우의정 맹사성에게 사건 무마를 청탁했다. 맹사성의 고향이 신창현이라 아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이 힘을 쓰자 사태는 쉽게 봉합됐다. 표운평의 가족을 회유하는 한편 서달의 종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다. 하지만 세종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세종은 관리의 살해 사건인지라 조사 문건을 꼼꼼히 확인했다. 세종은 문건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살인사건을 다시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의금부는 권력자들의 회유와 협박으로 사건이 은폐된 것을 밝혀냈다.

 세종은 격노했다. 고위 관리들이 국가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혔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격노는 시늉에 불과했다. 서달은 교수형감이나 형장 100대를 때린 후 유배를 보냈다. 황희, 맹사성, 서선은 파면했다. 황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좌의정으로 복직됐다.

 황희는 스캔들을 달고 다녔다. 뇌물과 간통으로 간관(諫官)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뇌물 때문에 사직한 적도 있다. 대사헌으로 재직하면서 금을 뇌물로 받았다가 '황금 대사헌'이라는 야유에 시달렸다.

 황희는 박포(朴苞)의 아내를 자신의 집에 숨겨놓고 정을 통했다. 박포는 이방원(태종)의 형 이방간을 부추겨 ‘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을 일으켰다가 패한 후 참수형을 당했다. 과부와의 간통이지만 조선시대의 엄격한 윤리로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었다.

 세종은 황희를 몹시 아꼈지만 사관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는 "황희의 성품이 지나치게 관대하여 집안을 다스리는데 단점이 있었으며, 청렴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황희는 1426년 우의정으로 발탁된 후 24년간 정승 자리를 지켰다. 1432년 70세 때 영의정으로 승진한 후 18년 동안 재직했다. 황희의 승승장구는 세종의 전폭적인 신뢰 덕분이다.

 세종은 능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발탁했다. 세종도 황희의 흠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 활용하는데 주력했다. 세종은 "대신들 가운데 황희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 다른 정승들과 비교해 그나마 청렴하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황희 같은 사람이라면 공직 진출은 꿈조차 꿀 수 없다. 공직자 임용 과정에서 높은 도덕성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역, 납세 등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의무 이행 여부는 물론 표절처럼 학자에게나 적용해야 할 기준까지 따져본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공직자 배제 5대 원칙'을 제시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은 더욱 줄어들었다.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다 됐지만 아직 온전하게 내각을 구성하지도 못했다.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무기로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직접 대화를 통해 야당을 설득하는 게 바람직하다. 장관 지명자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점 때문에 발탁했는지를 설명하고, 그 부처 관련 정책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한 후 협조를 구하는 것이 순리다.

 이런 노력에도 야당이 협조를 거부한다면 역풍을 각오할 수 밖에 없다. 장관 지명자의 장점을 열심히 설명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장관은 이런 대통령 밑에서 열과 성을 다한다.

참고문헌
1)박영규 지음. 2008.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이상주 지음. 2013. 세종의 공부. 다음생각.
3)정영훈 엮음. 박승훈 옮김. 2016. 세종의 말. 소울메이트

 timoth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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