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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나폴레옹을 쓰러뜨린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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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7-25 05:00:00  |  수정 2017-07-26 08: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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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영국의 승리는 재정 확충에서 비롯
소득세를 통해 전쟁수행 능력 키워
폭넓은 증세 없이 복지를 확충하면
재정 고갈로 지속가능성 기대 못해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전쟁은 문명(文明)의 발전을 이끈다. 인간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고, 조직의 혁신을 모색한다. 시공을 초월한 진리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채(國債)도 전쟁의 산물이다.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용병을 동원해 영토 쟁탈 경쟁을 벌였다. 전쟁이 일상화되자 전비(戰費) 부담도 폭증했다. 정상적인 재정 수입으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피렌체 시민들은 국채인 '프레스탄제(prestanze)'를 의무적으로 사들였다. 이자는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저 실질적인 비용을 보상하는 정도였다. 피렌체의 경우 전체 가구의 2/3가 프레스탄제를 구입했다.

 나라가 안정돼야 채권 발행도 가능하다. 국력이 약해지면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어려워진다. 원리금 상환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국채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국채 발행을 위해서는 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재정 부담은 눈덩이 불 듯 늘어난다. 그래서 정부는 증세를 고민하게 된다.

 영국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발발과 함께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프랑스가 다른 유럽국가들로 혁명을 수출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유럽 국가들과 힘을 합쳤다.

 영국은 전쟁 승리를 위해 동맹국들과 역할을 분담했다. 영국이 해군력의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동맹국들은 육군을 강화하도록 유도했다. 막강한 육군을 거느린 프랑스를 견제하려면 당연한 포석이었다.

 전비 조달을 위해 재정기반 확충은 필수였다.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총리는 다양한 세원 발굴을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재정 전문가 헨리 비크(Henry Beeke)가 때마침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영국의 경제 변화를 꿰뚫어본 탁견이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에 힘입어 새로운 부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돈줄은 자본가들이 거머쥐고 있었다. 비크는 이들을 중심으로 세금을 거둘 것을 제안했다. 바로 소득세였다.

 피트 내각은 한시적인 소득세 시행 방침을 발표했다. 연 소득 60파운드 이상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최고세율 10%의 소득세를 도입했다. 세금 부과를 위해서는 소득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는 곧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졌다. 피트 총리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끝나면 소득세를 폐기할 것"이라며 불만을 무마했다.

 영국은 소득세를 재원으로 해군력을 키우는 동시에 동맹국들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전비 조달 능력에서부터 영국에 뒤지고 말았다. 경제사 전문가들은 소득세를 '나폴레옹을 쓰러뜨린 세금'이라고 표현한다.

 영국은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득세를 정착시켰다. 세입 확충 수단으로 소득세만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러시아는 영국보다도 효율적인 소득세 제도를 바탕으로 국력을 키웠다. 프러시아는 납세자가 직접 자신의 소득을 신고토록 의무화했다. 납세자의 허위 신고는 단호하게 제재했다. 현재 전세계 국가들이 프러시아 소득세제를 활용하고 있다.

 전쟁은 최대의 재정 수요다. 하지만 평화로울 때는 다르다. 복지가 재정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치고 세금 부담을 늘리지 않는 경우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5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치매 국가 책임제 등 복지 확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복지 재정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안정적 삶을 위해 복지는 지속 가능해야 한다.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지 확대는 '립 서비스(lip service)'로 전락하고 만다. 폭넓은 증세가 없으면 복지국가는 신기루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답습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라는 것을 안다.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대기업에 한정되고, 이런 기조는 앞으로 5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선별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겠다는 모양새다. 자신의 임기 동안 잔치를 벌이고, 청구서는 다음 정부로 떠넘기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잘못된 정책은 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윌리엄 피트 총리가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것은 국민들의 반발 속에서도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Adams, Charles. 2001. For Good and Evil : The Impact of Taxes on the Course of Civilization. Maryland. Madison Books.
2)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2010. 금융의 지배. 민음사.

 timoth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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