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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현대사회의 노예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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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8-01 05:00:00  |  수정 2017-08-01 08: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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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100만 명 이상의 장기 채무 연체자
오랜 기간 동안 채권추심에 시달려
금융거래는 물론 자유마저 제약당해
은행 등 금융회사의 구제 노력 필요

【서울=뉴시스】 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채권자는 집요하고, 가혹하다. 당연한 속성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시장이 굴러갈 수 없다. 수시로 돈을 떼이는 상황에서 선뜻 돈을 빌려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금융 및 상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엄정한 채권 추심은 불가피하다. 

 인간은 원활한 채권 회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폭력에 의존하는 것은 하수에 속한다. 윤리와 종교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빚을 쓰고, 제때 갚지 않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도록 만든다. 

 라틴계통 언어에서 '빚(debt)'은 '죄(sin)'와 동의어다. 독일어 '슐트(schuld)'는 '채무'와 '죄'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다. 구원(redemption)은 원래 '채무 상환'을 의미했다. 빚을 갚는 게 곧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동일시될 정도로 격상된 셈이다. 빚을 제때 상환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책망하도록 의식 세계를 지배했다.

 이런 의식의 지배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물리력도 함께 동원했다. 대표적인 게 채무노예(debt peon) 제도다. 빚을 갚지 못하면 채권자의 노예로 삼았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채무 노예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최초의 기록은 무려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BC 5,300~1,940년)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라는 말을 사용했다. 수메르어(語)에서 자유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라'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채무 노예가 채권자의 속박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켰다. 자유라는 개념은 '채무노예 해방'에서 비롯된 셈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수시로 채무 노예 해방 조치를 단행했다.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황제는 채무 노예를 풀어주는 동시에 채무도 탕감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노예 해방과 함께 부채를 기록한 점토판(粘土板) 문서를 깨트리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채무 노예 해방은 구약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느헤미야는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후 세금 체납으로 노예로 전락한 농민들을 풀어줬다. 출애급기, 신명기, 레위기 등에서도 부채 탕감 및 채무 노예 해방이 7년 또는 49년 단위로 되풀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의 희년(jubilee) 제도도 채무노예 해방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농민들은 세금을 내야 하거나 급전이 필요하면 논밭이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하지만 흉년이 들면 빚을 갚는 게 불가능했다. 더 이상 담보로 제공할 게 없으면 노예로 전락했다.

 흉년이 이어지면 채무노예는 크게 늘어났다. 채무노예 급증은 사회 안정을 위협했다. 지배층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주기적으로 대규모 채무노예 해방을 단행했다.

 현대사회에서도 상당수 시민들이 채무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기간 대출을 갚지 못해 숱한 채권 추심 압력에 시달린다. 이들은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늘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올 3월말 현재 금융회사 대출을 12년 이상 갚지 못한 채무자들이 100만 명을 웃돈다. 이들은 무려 12년 이상 채권추심업자들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다. 정상적인 금융거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다수가 돈을 안 갚는 게 아니라 못 갚는 사람들로 봐야 한다. 빌린 돈을 떼먹기 위해 12년 이상 무시무시한 채권 추심을 견뎌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부가 빚을 갚지 못하는 장기 소액 연체자들을 대상으로 부채 탕감을 추진한다. 정부 방침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액이지만 원금을 100% 탕감해준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논리로는 이런 부채 탕감은 합리화될 수 없다.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다르다. 사회는 시장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보듬고 가야 한다. 이타심(利他心)은 시장을 죽이지만 사회를 살린다.

 시장은 사회를 필요로 한다. 사회가 불안하면 시장의 기능은 마비된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 사회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시장도 원활히 작동할 수 없다.

 정부보다는 금융회사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는 안정된 사회와 시장에서 수익을 얻는다. 채무 노예나 다름없는 약자들을 구제하려는 노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5개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올 상반기 중 6조6,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익에 비례해 부담을 떠맡는 것도 정의로운 일이다.

참고문헌
Graeber, David. 2011. Debt : The First 5,000 Years. New York : Melvillehouse.

 timoth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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