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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체부 "브리핑은 기재부에서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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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8-04 18:35:51  |  수정 2017-08-07 10: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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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저는 세법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A 사무관)

지난 2일 발표된 2017년 세법개정안에는 '도서구입비·공연관람비 연 100만원 추가 소득공제'가 신설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모처럼 내놓은 꽤 멋진 정책.

다만 도서구입·공연관람비로 연간 얼마를 써야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안면이 있는 대형로펌 소속 세무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해당 정책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때를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는... 전형적인 공무원발 탁상공론으로 보인다.

이번 도서구입 및 공연관람 소득공제 제도를 입안한 문체부 담당자 사무관에게 곧 바로 연락했다.

"연봉 4000만원의 직장인이 도서구입·공연관람비로 연간 600만~800만원을 써야 약 5만~10만원의 세금 감면 효과를 볼 수 있던데요. 정책을 수립하면서 이런 결과가 예측됐나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체적인 브리핑은 기획재정부에서 했고, (저는) 소득세법 전문가가 아니어서 모릅니다. 보도자료에 내용이 있지 않나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담당 공무원이란 사람이 '세법을 모르니까 묻지말아 달라'는 식으로 발뺌을 하다니. 검증도 하지 않고 정책을 만들었다는 소린가?

"보도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던데요."

궁색한 답변이 이어진다.
"개인별로 소득이 달라서 일일이 쓰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잠깐만요. 잘 아는 담당을 바꿔주겠습니다."
급기야 핑퐁질까지...

전화를 받은 또 다른 공무원은 아예 다른 부처로 책임을 넘겼다.
"기획재정부에서 자세한 예시를 안 들더라구요. 세법 체계가 복잡해서 어렵다며 예시로 못 넣었다고 하더군요."

이번 정책을 놓고 기자가 펼친 후속취재는 결국 '정책은 만들어졌지만 책임지는 곳은 없다'로 귀결됐다.

문체부는 과연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 있지만 그냥 넘어갔을까.

본지 기사가 나간 뒤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갑부 아니고서 누가 공연비에 500만원씩 쓰냐? 제정신이냐'
'공무원들은 입만 떼면 과장'

마지막 통화를 했던 문체부 공무원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여러 대화를 나눴지만 골자는 이랬다.

"...의료비나 교육비는 자기가 썼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이 가능하지만, 공연비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양도하는 경우도 많고 본인 증명이 어렵다..."

그는 기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도서, 공연 추가 소득공제'로 세금혜택을 준다는 발상 자체가 실상 '증명하기 어려운 정책'이란 소린가.

혹시 그가 하고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
'기획재정부가 하도 쓸만한 정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니까...'

대한민국 최고 지성들로 이뤄진 고위공직자들이 설마 이 정도 바닥 수준은 아닐 것이라 믿지만 편집국을 떠날 때까지도 영 찝찝하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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