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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일본의 분할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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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8-15 05:00:00  |  수정 2017-08-15 08: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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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소련의 일본 공동 점령 요구 대신
한국이 미·소의 분할대상으로 전락
적에게 대항할 힘을 갖추지 못하면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도 없어

【서울=뉴시스】 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18세기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독일인으로 보기 힘들다. 오히려 러시아인으로 봐야 한다. 칸트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칼리닌그라드는 지금은 러시아 땅이지만 옛날에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다. 그때는 '쾨니히스베르크'라고 불렀다. 프로이센은 다른 독일 제후국들과 함께 1871년 독일제국을 세웠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이때부터 수도의 자리를 베를린에 넘겼다.

 쾨니히스베르크가 러시아로 넘어간 것은 전쟁 때문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오데르-나이세강(江) 동쪽 지역을 폴란드에 넘기는 한편 쾨니히스베르크도 소련에 양도했다. 독일은 과거 프로이센왕국의 영토 중 상당 부분을 내줘야 했다. 알자스 로렌도 다시 프랑스 영토로 편입됐다. 패전의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영토를 당연한 전리품으로 여겼다. 사실 유럽 대륙에서 독일군을 궤멸시킨 일등공신은 소련이다. 소련과 비교하면 미국과 영국의 희생은 미미했다.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은 소련과 독일이 서로 싸우다 쓰러지기를 바란다"고 의심했다.

 기득권은 무너뜨리기 힘들다. 소련은 독일 등 점령 지역에 대한 자유재량권을 미국과 영국이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미국과 영국은 이런 요구를 거부할 의지도, 힘도 없었다.

 독일과 비교하면 일본은 운이 좋았다. 일본도 점령지의 대부분을 연합국에 내줬지만 본토는 지켰다. 미국과 소련의 전략적 계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스탈린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독일 항복 후 소련의 일본 공격에 합의했다. 루스벨트는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내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일본의 중국 파견군은 105만 명, 관동군은 100만 명에 달했다. 관동군과 중국 파견군의 일본 전환 배치를 막으려면 소련의 참전은 필수였다.

 갑작스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당초의 계산을 어그러뜨렸다. 미국은 1945년 7월16일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원폭실험 성공은 소련의 참전 가치를 떨어뜨렸다. 루스벨트의 후임자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단독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소련은 달랐다. 미국이 단독으로 전쟁을 끝내기 전에 점령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했다. 밥상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미국이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자 소련은 이틀 후 일본에 선전을 포고했다.

 소련군은 만주, 사할린, 쿠릴열도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소련은 미국에 홋카이도 분할 점령, 미·소 양국의 연합군 최고사령부 공동 운영 등을 요구했다. 트루먼은 소련의 요구를 거부했다.

 만주와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소련은 육군과 공군을 내세워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다. '바다'라는 자연적 걸림돌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당초 한반도를 미국의 관할 구역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을 저버렸다. 소련군은 이미 함경도로 진주한 상태였다.

 미국은 차선책으로 경성(京城)을 관할 구역에 넣는 방안을 수립했다. 미국은 북위 38도선을 소련과의 점령 경계선으로 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련도 이를 수용했다. 일본 대신 한국이 연합군의 분할 점령 대상으로 바뀌었다.

 일본은 오히려 본토를 최대한 지켜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1946년 "일본의 주권은 혼슈 등 4개 주요 섬과 부속 도서로 제한된다. 독도와 쿠릴열도는 제외한다"고 선언했다.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도 이를 공식 인정했다. 요시다 총리는 1952년 8월17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일본 영토는 4개 주요 섬과 부속 도서로 한정된다. 다른 영토는 포기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점령은 영구 분단으로 이어졌다. 반면 일본은 본토를 지키면서 한국전쟁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유를 되찾자 영토에 대한 노골적인 탐욕까지 드러낸다. 요시다의 선언은 오래 전에 외면했다. 일본은 13년째 방위 백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되풀이한다.

 평균적 일본인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는 신사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다르다. 틈만 나면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린다. '국가는 결코 도덕적일 수 없다'는 명제를 체현한다.

 국가는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동맹도 완벽한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그저 현재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을 때 유지될 수 있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와해된다. 상대를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골치 아프게 만들 정도의 힘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1)가토 기요후미 지음. 안소영 옮김. 2010. 대일본제국의 붕괴. 바오출판사
2)데이비드 레이놀즈 지음. 이종인 옮김. 2009. 정상회담. 책과함께
3)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2012. 일본의 영토분쟁. 메디치미디어

 timoth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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