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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사람을 살리는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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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8-2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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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어린이 굴뚝 청소 노동 금지
영국의 산업 환경 개선 유도
환경과 산업 안전 규제 강화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장치

【서울=뉴시스】 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런던 시민 8만 명 가운데 7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 1666년 9월 2일 도심에서 일어난 화재는 런던 전역을 초토화했다. 행정당국의 무능은 피해 규모를 키웠다. 무려 닷새 동안 화재가 이어지면서 1만3,000여 채의 가옥이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런던의 가옥은 대부분 목조 주택이었다. 화재가 일어나자 집 자체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진화 작업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 퍼붓는 수준에 불과했다. 불길을 잡는 게 불가능했다.

 화재를 계기로 많은 게 달라졌다. 주택 자재로 나무 대신 벽돌이나 타일을 사용했다. 석탄 사용량도 크게 늘어났다. 난방 연료로서 석탄은 나무보다 뛰어났다. 장작에 비해 열량이 두 배나 높고, 관리하기도 쉬웠다.

 산업혁명과 함께 석탄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산업용 석탄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시화에 따른 인구 증가로 난방용 석탄 소비도 급증했다. 영국은 '석탄 자본주의 시대'를 맞았다. 

 석탄의 대량소비는 새로운 부산물을 낳았다. 대표적인 게 굴뚝이다. 굴뚝은 효율적인 연소를 위해 필수적이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의 압력 차이를 이용해 석탄이 잘 타도록 만든다.

 석탄을 태우면 검댕이 많이 생긴다. 검댕의 주 성분은 콜타르다. 굴뚝 내부에 콜타르가 쌓이면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공기가 들어오는 것도 막기 때문에 석탄이 계속 타오를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콜타르는 발화성이 높다. 한 번 불이 붙으면 굴뚝은 물론 집이나 공장 건물을 순식간에 집어삼킨다.

 정기적인 굴뚝 청소는 필수였다. 굴뚝 청소는 요즘 기준으로 3D 업종에 속했다. 일이 힘들고 위험한 데 반해 품삯은 높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고아나 빈민층 어린이를 활용했고, 미국에서는 흑인 아동을 투입했다.

 어린이들을 굴뚝 청소에 활용한 것은 연통 크기 때문이다. 보통 굴뚝의 직경은 14인치(36㎝)에 달했다. 어른들은 굴뚝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로 6살 전후의 어린이들을 굴뚝 청소에 투입했다. 심지어 4살짜리 코흘리개를 청소부로 쓰기도 했다.

 고용주 입장에서 어린이 노동자는 여러 모로 편리했다. 그저 밥만 먹여줄 뿐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 아울러 열악한 노동환경에 불만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울음을 터뜨릴지언정 작업 지시를 거부하지는 못했다. 고용주에게는 최고의 시절이었지만 노동자에게는 최악의 시절이었다.

 어린이들은 굴뚝 속을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콜타르를 제거했다. 옷이 연통에 걸리면 작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벌거벗은 채로 작업에 투입됐다. 하루 종일 굴뚝 속을 기어 다니다 보니 팔꿈치와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숱한 어린이들이 굴뚝 청소를 하다가 숨졌다. 콜타르가 연통에 쌓이면서 질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화상을 입고 죽는 어린이들도 허다했다. 목숨을 건지더라도 폐암이나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굴뚝 청소 기구가 개발됐지만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다. 어린이 노동을 활용하는 게 저렴했기 때문이다. 청소 기구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린이 노동을 고집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영국 정부는 마침내 어린이 노동자의 굴뚝 청소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노동 허용 연령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다가 21세 미만 노동자의 굴뚝 청소를 금지했다. 아울러 집주인이 노동자 대신 굴뚝 청소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했다.

 영국에서는 1875년부터 어린이 굴뚝 청소부가 사라졌다. 디즈레일리의 보수당 정부가 '굴뚝 소년법'을 통해 어린이 노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굴뚝 청소는 사실상 최초의 산업재해 사례로 꼽힌다. 정부의 적극적 규제가 노동력 대신 기구 활용을 이끌어냈다. 안전에 관한 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노동은 생산요소이나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나마 대기업 노동자들은 나은 편이다. 조직화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산업재해에 훨씬 더 취약하다.

 대기업보다는 협력업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산업안전을 그저 비용으로 간주하는 바람에 싼값에 아웃소싱하는데 매달린다. 

 안전과 환경 규제는 사람을 살리는 규제다. 촘촘한 규제가 필요하다. 굴뚝 청소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고용주와 집주인을 규제했던 것처럼 전방위 규제는 필수적이다.  

참고문헌
1)Hobhouse, Henry. 2005. Seeds of Wealth. Emeryville: Shoemaker & Hoard.
2)송병건 지음. 2015. 산업재해의 탄생. 해남.

 timoth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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