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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더블데이트] 김성수·오루피나 '굳빠이, 이상' 찾기

등록 2017.09.04 13:02:28수정 2017.11.14 11: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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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왼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왼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음악감독 겸 작곡가 김성수(48)와 공연 연출가 오루피나(35)의 시계는 1930년대와 현재를 분주하게 오간다. 시인 이상(李箱·김해경·1910~1937)을 여행하는 관객들을 위한 안내자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서울예술단이 오는 21일~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창작가무극(뮤지컬) '꾿빠이, 이상'이 종착지다.  작가 김연수(47)의 동명소설이 바탕이다. 이상의 유품인 '데드마스크'에 대한 진위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며 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단순한 정의로 규정할 수 없는 이상 그리고 그의 삶을 다룬 만큼 공연은 평면적인 형태를 거부했다. 무대와 객석 그리고 형식마저 파괴하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re)'의 하나다. CKL스테이지는 객석의 변형이 가능한 블랙박스 시어터다.

최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 감독과 오 연출은 전날 '꾿빠이, 이상' 작업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면서도 얼굴에는 설렘과 기쁨의 흔적이 역력했다.

오 연출은 "이상은 아주 정확하게 호불호가 갈리거나 한쪽 면으로만 해석하기 힘든 인물"이라면서 "새로운 형식의 공연에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뮤지컬 '록키호러쇼'에서 관객들이 기립해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는 '타임워프 댄스'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 오 연출은 "일부러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웃었다. "그 상황 자체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설정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관객들이 특정한 장소에서 한 방향으로만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돌아다니면서 여러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 또는 삶을 보내는 배우들을 관찰 또는 그들의 삶에 빠져드는 '꾿빠이, 이상' 역시 마찬가지다. 세명의 이상들을 제외한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 1호 속 '13인의아해'들을 연기하는 배우 또는 무용수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로 삶을 산다.

"이상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평가가 다양하고 난해하다는 것은 다 알죠. 그래서 '이상은 이렇다'고 정의하는 공연이 아니라 관점, 시야,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될 거 같아요."

김 음악감독은 작곡까지 참여하며 이번 '꾿빠이, 이상' 크레디트에 작곡가 예명인 '23'까지 병기한다. 그는 '꾿빠이, 이상' 같은 관객 참여형은 창작자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며 흥미로워했다.

"공연장 내에서 그렇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음악 역시 마찬가지에요. 끊임없이 내러티브를 깨고 이야기를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죠. 음악이 왜 지금 이상이고, 왜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뒷받침이 됐으면 해요. 단순히 보는 서사가 아니라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 느껴지는 감동을 끌어냈으면 해요."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왼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왼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email protected]

먼저 '꾿빠이, 이상에 내정된 김 감독을 믿고 이번에 참여한 오 연출은 김 감독과 인연이 시작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마마 돈 크라이'와 '록키호러쇼' 등 마니아 층을 이끌어내 공연계에서 새로운 콤비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작품은 연극 '클로저'.

'공연계 대모' 이지나가 연출한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제자인 오 연출은 조연출로서 공연계에 입문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인디 신 위주로 활동한 김 감독이 합류하면서 만남이 성사됐다.

김 감독은 2008년 오 연출의 연출가 데뷔작인 뮤지컬 '록키호러쇼'에서도 함께 했다. 오 연출은 "김 감독님은 제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계셨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 감독은 "처음 오루피나 연출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명석하고 확실하고 똘똘한 친구였다는 것"이라면서 "공연 전에 계산을 확실히 해서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확실히 설득해요. 음악적으로도 많은 걸 알아 놀랐다"고 했다.
 
오 연출은 음악에 대해서도 잘 아는 몇 안 되는 연출가다. 악보도 볼 줄 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고등학교 때는 잠시 작곡을 공부하기도 했다. '헤드윅' '서편제' '알앤디웍스 첫번째 콘서트' 등 음악이 주가 되는 공연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낸 이유다.

김 감독의 뮤지컬 데뷔작은 2002년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이다. 강렬한 편곡과 오케스트라 지휘로 공연 창작진으로는 이례적으로 마니아를 몰고 다니는 그는 사실 저평가된 뮤지션이기도 하다. 음악의 결이 좀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지나 연출의 연극 '지구를 지켜라' 음악을 만들기도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작곡에 관여한 건 '꾿빠이 이상'이 처음이다. 벌써부터 올해의 명반으로 통하는 검정치마(조휴일)의 앨범 '팀 베이비(TEAM BABY)'에 참여했고 지난 2일에는 가수 서태지의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3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김 감독과 서태지는 지난해 서태지 명곡을 묶은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뮤지션인 비요크도 좋아하는 김 감독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와 작업해온 작곡가 마이클 니먼의 음악처럼 클래식에 미니멀리즘을 섞은 스타일의 곡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번 '꾿빠이, 이상'에서도 살짝 그 기호화된 음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오른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오른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email protected]

"그리너웨이 감독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화면이 좌우대칭이라는 건데 니먼의 음악도 좌우대칭이에요. 그걸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는 걸 보니까 저도 그게 하고 싶은 생각이 생겼죠."

'꾿빠이, 이상'은 요즘 유행하는 '이머시브 공연'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모호할 듯한 인상을 안기지만 이처럼 실타래를 푸는데 일가견이 있는 김 감독과 오 연출의 합은 확실한 키를 쥐고 있는 듯했다.

오 연출은 시인 김승희(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이상에 대해 동아일보에 기고한 "소설을 시처럼, 수필을 시처럼, 시를 의료 진단서처럼 썼고, 시에 그림을, 기하학적 도형을, 숫자판을, 인쇄기호 등을 도입해 타이포그래피 등을 실험했다"라는 글을 떠올렸다. '오감도' 속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가 예다.

오 연출은 "모든 관객들이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상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이상의 시를 보면서 느낀 특징 중 하나는 외형적으로 띄어쓰기가 없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녀는 "음악을 단순히 음악이 아닌, 대사가 단순히 대사가 아닌, 안무가 단순히 안무가 아닌 형식을 만들고 싶다"면서 "미리 경계를 짓고 공식처럼 보이는 공연이 아닐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이런 공연 형식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불쾌함은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는 "보호막이 없어지는 거죠. 어떤 장면은 무서울 수 있고, 압축될 수 있어요. 특히 관객들끼리 서로 무서워할 수 있죠. 정상적인 감정이 아닌,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양한 형식과 의미를 시도하는 이번 작업은 두 창작가가 가는 길의 중요한 정차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1920년대 미국에서 획일적인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인 '비트 세대'에 속한 작가들을 좋아한다. 윌리엄 버로우즈와 잭 케루악 등이다. 작곡가 예명 23 역시 버로우즈의 법칙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글과 문장을 조각내고 재배치해서 쓰는 형식을 선보였는데 언뜻 이상의 글들도 겹쳐진다.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앨범 '키드A'(2000)나 미국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네버마인드'(1991) 속 일부 노래들 가사 역시 그렇게 씌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소극장에서 분절된 형식의 음악과 공연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웃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들을 읽으면서 자랐다는 오 연출은 "작품의 시간의 흐름이 독특해서 재미있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오른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예술단 뮤지컬 '꾿빠이 이상'의 연출 오루피나(오른쪽) 씨와 김성수 음악감독이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04. [email protected]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 거기에 관객들 저마다의 시간이 겹쳐지는 '꾿빠이, 이상' 역시 비슷하다. "같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등장인물들 중 어떤 인물은 1시간30분을 살고 어떤 인물은 10년을 살 거예요. 이상과 헤어지고 나서야 자기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요. 이상이 떠나간 다음에 사회가 원하는 얼굴로 살아가면서 사상적으로 힘들어하는 인물도 있을 거고요."

잔교에서 일주일, 배 위에서 하루, 하늘에서 한 시간이 막판에 중첩되고 수렴되면서 놀라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떠오르기도 하다.

오 연출은 "인물들이 다르게 살면서 생기는 여러 시간의 흐름과 결을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싶다"고, 김 감독은 "사람들에게 낯선 시각이나 감각을 일깨워주는 묘미를 선사하고 싶다"고 바랐다.

결국 '꾿빠이, 이상' 관객들에게는 이상(李箱)을 이상(理想), 이상(異相), 이상(異狀), 이상(異常), 이상(以上), 이상(異象), 이상(異象)으로 읽을 수 있는 숙제이자 즐거움이 주어지는 셈이다.

한편 이번 작품에 참여하는 다른 창작진들도 화려하다. 대학로의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각광받는 여신동, 벨기에 세드라베 무용단에서 활동했던 무용수 겸 안무가 예효승이 힘을 보탠다.

서울예술단의 최정수와 김용한 그리고 2007년 '바람의 나라' 이후 10년 만에 서울예술단과 조우한 김호영이 객원으로 출연, 이상이라는 모호한 인물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표한다. 금홍, 변동림, 박태원, 김유정 등 이상을 둘러싼 실존 인물들을 서울예술단 단원들이 연기한다. 회당 약 100명의 관람이 예정됐다. 관객이 극에 참여하는 형식상 관람등급은 19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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