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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피터 현은 왜 이민자로 살았나···'에어콘 없는 방'

등록 2017.09.12 10: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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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에어콘 없는 방'. 2017.09.12. (사진 = 남산예술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에어콘 없는 방'. 2017.09.12. (사진 = 남산예술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하와이에서 태어나 한국·중국 상하이·미국을 떠돌며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었던 실존 인물 피터 현(1906~1993)의 삶이 연극으로 옮겨진다.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주철환) 남산예술센터는 오는 14일부터 10월1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서 신작 '에어콘 없는 방'(작 고영범·연출 이성열)을 선보인다.

극단 백수광부와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작년 제6회 벽산희곡상을 수상한 '유신호텔 503호'가 바탕이다.

피터 현은 1919년 3·1 운동기 한국 독립운동을 상하이와 세계에 알린 현순 목사(1880~1968)의 아들이다. '박헌영의 첫 애인', '한국판 마타하리' 등으로 구설에 오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평양에서 박헌영과 함께 처형된 앨리스 현(1903~1956)의 동생이기도 하다.

'에어콘 없는 방'은 한 인물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가 경험한 파국이 낳은 다면적이고 경계적인 역사성과 정체성을 다룬다. 극 중 배경은 1975년 8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단 하룻밤. 아버지 현순 목사가 건국공로자로 추서되고 국립묘지 안장행사를 치르기 위해 해방 이후 30년 만에 한국을 찾게 된 70세의 피터 현이 유신호텔 503호에 머문다.

방 안에는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 1936년 대공황을 맞은 뉴욕, 1945년 9월 미군의 남한 진주, 1945년 해방 후 혼란기 남한,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이 휩쓸던 미국, 1953년 6.25 휴전 협정이 한창인 한국, 1975년 극단적 유신 독재정권 하의 서울까지 폭넓은 현대사가 어지럽게 뒤엉키며 공존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뉴욕 연극계에 뛰어든 희망찬 젊은 피터와 굴곡진 현대사를 겪으며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늙고 초라한 피터가 도플갱어처럼 등장한다.

무대 위에는 에어콘조차 없어 답답한 열기로 가득한 좁은 방만이 존재한다. 그 방 안에 갇힌 피터 현의 80여 년 인생과 함께한 개인의 지독한 고독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현피터, 현앨리스, 현순.(1948년 로스앤젤레스). 2017.09.12. (사진 = David Hyun, 출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 지음, 돌베개, 20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현피터, 현앨리스, 현순.(1948년 로스앤젤레스). 2017.09.12. (사진 = David Hyun, 출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 지음, 돌베개, 2015)) [email protected]

'에어콘 없는 방'을 집필한 고영범은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미 극작가다. '태수는 왜?'로 정식 데뷔해 '이인실', '방문'을 발표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이번 작품에서 우리 연극사에 기록되진 않았으나 1930년 시빅 레퍼토리 극장을 시작으로 십여 년간 미국에서 활동했던 연극 연출가 피터 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조국을 떠나 이민자로서 연극 작업을 해온 작가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아있다"고 소개했다.

피터 현이 실제로 연출했었던 인형극 '황소 페르디난드'(Ferdinand the Bull)과 상영하지 못했던 아동극 '비버들의 봉기'(Revolt of The Beavers) 일부를 극중극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신인 극작가로 데뷔했으나 오랫동안 훈련된 유연한 글쓰기와 자기만의 독특한 문체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며 "특히 한국현대사에 대한 예민한 촉수와 그것을 영상감각을 바탕으로 한 해체적인 장면과 날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평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즐거운 복희'를 연출했던 이성열(극단 백수광부 대표 겸 상임연출)이 연출을 맡았다. 연극 '레드'(2016)와 '만선'(2013)에서 한 인간의 집념을 극한으로 보여주며 높은 몰입도를 선사했던 배우 한명구가 피터 현이다.

한편 남산예술센터는 극장투어를 겸하는 '어바웃스테이지'를 23일 오후 12시 진행한다. 당일 공연이 끝난 후에는 이성열(연출), 조만수(드라마터그), 한명구 등과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피터 현을 추적하는 시간을 갖는다. '에어콘 없는 방' 희곡선은 공연 개막일에 맞춰 출간돼 극장 로비 및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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