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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당신이 해야 할 이야기···'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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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9-14 09: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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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몬스터 콜'(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은 동화가 아니다. 12살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것, 밤 12시7분에 그를 찾아오는 나무괴물이 존재한다는 게 이 작품을 동화처럼 보이게 할 여지가 있어도 이 영화를 '동화 같다'는 식으로 표현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따위의 동화 속 가르침을 걷어차는 게 '몬스터 콜'이다. 대신 영화는 잘 살기 위해서, 잘 사는 게 벅차다면 최소한 버티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려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이건 교훈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다.

 '몬스터 콜'을 성장영화로 분류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에서 성장은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 혹은 작은 것이라도 깨달음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할텐데, 코너 오말리(루이스 맥더겔)에게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중요한 건 '발전' 같은 게 아니다. 이 붕괴와 함께 흔들리는 삶을 지키는 것 그것 만이 지상과제다.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겠냐고 할지도 모르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덜 흔들리고, 어리다고 해서 더 흔들리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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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 오말리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사랑하는 엄마는 중병을 얻어 힘겹게 투병 중인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 만의 세계에 빠져사는 코너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급생들은 그를 어떻게든 괴롭히려 든다. 게다가 엄마의 병세가 악화해 입원하면서, 성격이 잘 맞지 않아 싫어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처한 코너는 악몽을 꾸고 깨어난 어느 날 밤 12시7분, 정체 불명의 나무괴물을 만난다. 이 괴물은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새 영화는 형식과 이야기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모범 사례로 앞으로 거듭 언급될 작품이다. 점점 지쳐 더 큰 슬픔에 젖어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현실이 아닌 환상인지도 모른다. 코너 역시 그렇다. 그가 그림을 그리며 미쳐버릴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과 나무괴물의 갑작스럽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등장은 결국 같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몬스터 콜'은 장르영화 틀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이 판타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 엄중한 현실이다. 환상은 오히려 현실을 더 극명하게 보여줘 어찌됐든 살아가야 하는 지독한 세상을 인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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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위로의 영화이고, 위안이 되는 감격적인 108분을 선사하지만, 코너와 관객을 무작정 끌어안아 보듬어주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무괴물은 부모도, 교사도, 멘토도, 친구도 아니다. 그는 그저 1000년 가까이 인간들을 면밀히 들여다본 냉혹한 선지지다. 나무괴물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 뒤 "네 번째 이야기는 네가 해야 한다"고 반복 강조한다. 스스로 고백하라는 것,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 나무괴물은 오히려 가혹하다. 그는 코너를 위로하기는커녕 네 번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세계는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이같은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콜'이 뜨거운 눈물을 쏟게 하는 건 게으른 긍정을 주입하거나 싸구려 위로를 하는 대신 그보다 넓은 포용을 보여줘서다. 나무괴물은 코너를 뻔한 윤리와 도덕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두려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순된 감정들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잘못하는 게 아니라고, 그 죄책감까지도 안고 가야 하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코너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의 가장 두려운 부분이 비로소 드러났을 때, 그제서야 그가 다시 명백한 현실로 복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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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가 세상을 노려보며 화를 낸 이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나도 킹콩처럼 다 부숴버리고 싶다"라는 대사). 그는 먼저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다른 곳에 연신 화풀이를 해댔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알 수 있을리가 없다. 나무괴물은 "네가 나를 불러냈다"며 "네 번째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고, 코너는 "난 널 불러낸 적이 없다"며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맞선다. 그러나 몬스터는 코너가 불러낸 것이었고, 그에게는 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몬스터 콜'을 보는 모든 관객도 마찬가지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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