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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팝 걸그룹처럼 발랄한 머리채춤 인상적...'춘상'

등록 2017.09.24 10: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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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한국무용의 숨겨진 감성과 근육을 발견했다. 24일까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무용단의 신작 무용극 '춘상(春想)'이 거둔 성과다.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개막작이자 고전소설 '춘향전'을 모티브로 삼은 '춘상'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 한국무용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졸업파티에서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청춘 남녀 '춘'과 '몽' 그리고 친구들이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탓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배경음악이 대중음악이라는 점이다. 작곡가 이지수가 편곡을 했는데, 국악기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파티 장면인 첫 번째 신 '축제'에서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와 재즈 피아니스트 염신혜가 결성한 재즈 프로젝트 '리아노 품'의 '저스트 비포', 래퍼 팔로알토가 피처링한 정기고의 '헤이 배(Hey Bae)'가 흐른다.

이와 함께 춘과 몽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장면에서 인디 듀오 '볼빨간 사춘기'의 '우주를 줄게', 둘의 사랑을 부모가 반대하는 장면에서는 모던록 밴드 '넬'의 '백야', 결국 두 사람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보컬그룹 '어반자카파'의 '크러쉬'가 울려퍼진다.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한국무용계의 대모 배정혜(73)가 나이를 잊고 만든 젊은 춤에 젊은 음악이 똬리를 튼다. 그는 2006년 발표한 '솔(Soul), 해바라기'에서 독일 재즈그룹 '살타첼로'와 협업하기도 했다.

이번 '춘상'에 삽입된 '저스트 비포'의 춤은 탭댄스, '우주를 줄게'의 안무는 발레의 파드되(2인무)가 연상된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 속 그리피스 공원에서 탭댄스 장면, 전막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침실 파드되가 떠오른다.

마지막 여덟 번째 신의 '헤이 배'를 제외하고 공연 도중 보컬이 포함된 채 편곡된 유일한 곡인 국민 여동생 아이유의 '이 지금'에 맞춘 동작들은 한국무용의 '젊은 얼굴'을 마주하게 했다.

그렇다고 한국 무용의 흔적이 사라진 건 아니다. 배 안무가는 눌러짓기, 족두치기, 밀기 등 한국적 호흡과 춤사위를 곳곳에 흩뿌려놓았다.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특히 머리채춤이 인상적이었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여성 무용수들이 두 손으로 그 머리카락들을 활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는데, K팝 걸그룹 멤버들만큼 활기차고 발랄했다. 전통 상모춤에서 영감을 받은 춤으로, 현재의 헤드뱅(headbang)과 접점을 만든다. 한국무용의 모던한 도발이다.


춘향전에서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반대하는 변사또를 제외한 대신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부모의 반대를 설정한 '춘상'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차용했다.

스무 살 청춘들이 겪을 법한 사랑의 감정들이 넘실대는데 이야기는 자칫, 쉽게 말해 오글거릴 수 있는 부분도 가지고 있다. '단' '묵향' '향연'으로 국립무용단의 모던함을 개척한 패션디자이너 겸 공연 연출가 정구호의 비주얼과 연출이 이를 상쇄한다. 파티장·집·공항을 상징하는 2층 건축 조형물이 턴테이블 무대 위에서 유유히 돌고, 무용수들이 입은 의상은 한국무용이 아닌 현대무용 또는 발레를 연상시킨다.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국립무용단 '춘상'. 2017.09.24.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연출이 빛난 부분은 무용수들이 다양한 몸짓으로 무대 좌우를 가로지를 때였다. 정 연출의 전작 '향연'에서 10여m 노랑 매듭 효과가 연상되는 신호등 10개가 천장에서 무대 밑으로 늘어뜨려지는데, 수평·수직 운동의 만남은 한국무용의 역동성을 부각시켰다. 각각 몽 역의 조동진·김병조와 호흡을 맞춘 춘 역의 이요음·송지영의 싱싱함과 사랑스러움은 한국무용수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전통의 현대화'가 항상 한국무용의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사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컨템포러리 극장을 표방하는 국립극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답안 중 하나로 보인다. 한국무용이 이처럼 싱그러운 분위기를 내며 객석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낸 건 드물었다. 커튼콜에서 '흥부자'가 돼 막춤을 선보이는 한국무용수들의 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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