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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30년 염원 풀어주오

등록 2017.09.27 19: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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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30년 염원 풀어주오

【부산=뉴시스】허상천 기자 = “와, 청와대가 보인다”

 27일 오후 4시.  한국의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한종선(42·진상규명 대책위원장) 대표 등 5명은 천리길 도보행군 끝에 청와대에 도착, 탄성과 함께 감격의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6일 형제복지원 옛 터인 부산 주례동을 출발해 22일 동안 매일 50리길을 걸어서 총 486.44㎞ ‘국토종단 대장정’을 완주했다.

 30여 년간 소원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절규로 이룬 성공이다.  마지막 광명시청에서 청와대에 이르는 구간은 열댓명의 피해생존자 모임 동료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동참해 힘을 북돋았다.

 발이 부르틀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지만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밤낮없이 강제 노역과 폭행에 시달리면서 공포에 떨었던 악몽 같은 그 날에 비하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서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운 느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청와대에서는 행정관이 이들을 마중나왔다.

  한씨 등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낭독한 후 이를 대통령께 전해 줄 것을 당부하고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때 형제복지원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지원대책을 약속해 이번만큼은 국회서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정부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정화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경찰과 행정기관 비호아래 무고한 시민 3500여 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폭력·성폭행을 일삼았던 인권유린 사건이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1975년부터 1987년 폐쇄될 때까지 12년간 복지원 자체 기록으로만 513명이 사망하고 주검 일부는 암매장되거나 의대에 팔려나간 사실도 확인됐다.

 이 사건은 40년가까이 취재현장을 누벼 온 기자의 수첩에서 지워지지 않은 특별한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지방에는 중앙일간지 주재기자가 없던 시절이었다.

 부산·경남지역에 파견돼 취재하던 중 울산지검 김용원 검사의 형제복지원 수사 착수 사실을 알고 1987년 1월 형제복지원 소유인 울산 반정목장에 등산객을 가장해 잠입, 강제노역 현장과 형제복지원 실상을 처음 보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아직도 아물지 않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보면서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30여 년 전, 사건만 들춰 놓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서 권력과 비리에 대한 감시자 역할에 소홀하고 사회적 약자를 끝까지 살피지 못한 소회와 사명감 때문이다.

 최근 형재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모임이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는 등 탄력이 붙고 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등은 2014년 7월 제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한 채 이번 20대 국회에 또 상정돼 계류 중이다.

 '진상규명' 요구는 불법 감금으로 삶을 송두리째 짓밟힌 한종선 대표가 2012년부터 국회 앞 1인 시위를 벌이고 ‘살아남은 아이 –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씨뿐 아니라 다른 원생들도 대부분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면서 불법 감금에 대한 구제신청은 생각도 못하고 오히려 강제 노역과 폭행에 시달린 트라우마 때문에 형제복지원 감금 사실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하루속히 제정해 억울하게 감금된 수용자들의 한을 풀어 주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밝히고 정의로운 결과를 실현시켜 줄 것을 기대해 본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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