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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9차 당 대회] 역대 공산당 대회···권력 변천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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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10-12 11: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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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0월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이 열렸다.

【서울=뉴시스】이재준 기자 =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大)가 10월18일 개막한다.

2012년 18차 대회에서 당 총서기에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번 19차 대회에서 관례대로 연임하게 된다.

다만 19차 대회에 대한 관심은 시진핑이 과연 그간 관측처럼 연임 관례를 깨고 3번째 임기를 모색하는 행보를 취할지, 차기 최고 지도자 후보를 임명할지,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넣어 '마오쩌둥 사상'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할지에 쏠리고 있다.

역대 당 대회를 돌아보면서 중국 지도부의 권력 변천 과정을 살핀다.

공산당 현행 당장(黨章 당헌)은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중앙위원회가 소집해 5년마다 거행하도록 했다.

당 대회 권한은 중앙위원회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보고를 청취 심사하고 당의 중대 문제를 논의 결정하며 당장 등 장정을 개정하고 중앙위원과 중앙기율검사위원을 선출한다.

1921년 제1차 당 대회는 상하이에서 개최, 중국공산당 창당을 선언했다. 중국공산당은 초기에는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1차에서 1928년 6차까지 7년 동안 6차례나 열렸다.

6차 대회에서 1945년 7차 대회를 소집할 때까지는 17년의 간격이 있다. 구 사이 시안(西安) 사변이 발생, 항일전쟁을 위해 제2차 국공(國共) 합작이 이뤄지는 등 중대 사건이 잇따랐다.

특히 6차 대회는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國府)의 공산당 토벌작전을 피하고자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서 개최했다. 당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 밖에서 열렸다.

그간 1935년 정치국 확대회의인 '쭌이(遵義) 회의'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이 홍군(紅軍)에 대한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이후 장장 41년 동안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게 됐다.

1945년 7차 대회는 '마오쩌둥 사상'을 처음 당장에 편입했다. 류사오치(劉少奇)는 제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로 뽑히면서 마오쩌둥에 이은 2인자 자리에 올랐다.

7차 대회에서 1956년 8차 대회를 개최할 때까지는 다시 11년이 걸렸다. 1949년 10월 공산정권을 수립했고 100만명이던 공산당원이 1000만명으로 늘어났다.

원래 7차 대회는 3년마다 소집하는 당시 규정에 따라 처음 열렸지만 8차 대회 경우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어졌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그 이유에 관해 질풍노도의 혁명전쟁, 국민경제의 회복, 한국전쟁 참전(抗美援朝), 당내 정치투쟁 등으로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8차 대회에서 덩샤오핑은 중앙위원이 됐으며 제8기 1중전회에서 중앙서기처 총서기로 선출됐다.

9차 대회는 8차 대회에서 13년 뒤인 1969년에야 소집됐다. 1958년에서 1962년에는 '대약진(大躍進)'과 '대기근(大饑荒)'으로 3000만명이 굶어죽는 참상을 빚었고 1966년에는 문화대혁명이 시작하면서 중국의 정치경제를'10년의 대혼란'에 빠트렸다.

1962년 초 소집한 확대중앙공작회의 일명 '7000인 대회'에서는 '대약진'으로 인한 기아사태를 논의했는데 회의를 주도한 류사오치에 마오쩌둥이 불만을 품는 계기가 됐다.

9차 대회에서 채택한 당장 개정안은 "당 전국 대표대회를 5년에 한 번 개최한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이를 앞당기거나 연기할 수 있다"고 명기한데 이어 "린뱌오(林彪) 동지는 마오쩌둥 동지의 친밀한 전우이자 후계자(接班人)"라고 적어 린뱌오를 마오쩌둥의 공식 후계자로 지정했다.

하지만 1971년 당 부주석 린뱌오는 군용기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몽골에서 추락사하고 말았다. 이에 충격을 받은 마오쩌둥은 1973년 개최한 10차 대회에서 서둘러 38세의 왕훙원(王洪文)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1976년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고 문화대혁명도 막을 내리면서 '4인방'이 타도당하는 일련의 정치풍파가 속출함에 따라 11차 대회는 예정보다 1년 앞당겨 1977년이 열렸다. 과도기의 화궈펑(華國鋒) 체제가 들어섰다.

11차 대회에서 화궈펑은 재차 당 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에 올랐으나 1978년 말 제11기 3중전회에서 그의 최고 지도자 지위는 덩샤오핑에게 넘어갔다.

이후 지금까지 당 대회는 5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매번 당 대회 후 소집하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1992년 14차 대회부터는 7차례로 고정됐다.

1982년 12차 대회에서 덩샤오핑이 개막 연설을 통해 처음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제창하면서 중국은 전면 개혁개방 시대에 진입했다.

14차 대회 이래 20여년 동안 중국공산당은 최고 지도자가 5년 임기를 연임해 10년간 재임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유혈사태 후 장쩌민(江澤民)은 덩샤오핑이 후계자로 세웠지만 톈안먼 민주화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을 대신해 당 총서기에 올랐다.

14차 대회와 16차 대회에선 장쩌민과 후진타오(胡錦濤)를 각각 핵심으로 하는 지도부가 확립됐다.

2012년 18차 대회는 후진타오가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의 당정군 최고 통수 자리를 시진핑에 일시에 물러주기로 하면서 시진핑 체제가 출범했다.

 yjj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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