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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낙태 논쟁···"여성 자기결정권" vs "태아 생명권"

등록 2017.11.03 1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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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7.09.28.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7.09.28. [email protected]

청와대 국민청원 낙태죄 폐지 20만명 넘어
국내선 형법에 제한적인 경우만 낙태 인정
전문가들 "저출산 문제 차원으로 접근 안돼"
"생명·인권 존중 차원에서 신중히 논의해야"

 【서울=뉴시스】 유자비 기자 = "낙태죄를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건을 돌파하면서 인공임신중절 수술(낙태) 찬반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20만명을 넘긴 국민청원은 '소년법 폐지' 이후 두 번째다.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 주장에 대한 공식 답변을 내놓게 됐다.

 현행 낙태 관련 법안이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 23만명 '훌쩍'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지난 9월30일 등록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 총 23만5372명이 참여했다.

 이 청원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성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한다"며 낙태죄를 폐지하고 자연유산 유도약 판매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글쓴이는 "임신이 여자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다. 책임을 묻더라도 더 이상 여성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며 "암암리에 불법 낙태 수술을 받으면 위험성이 있다. 낙태죄를 만들고 낙태약을 불법으로 규정짓는 것은 이나라 여성들의 안전과 건강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낙태죄 폐지 청원은 참여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서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게 됐다.

 청와대는 30일 동안 20만명이 넘어선 국민청원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 내지는 청와대 수석급 인사가 책임 있는 답변을 주기로 했다.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게 된 것은 '소년법 개정 청원' 이후 두 번째다.

 현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유사 청원들에도 500여명이 참여한 한편 '낙태죄 폐지를 반대한다'는 청원도 속속 올라오는 상태다.

 낙태죄를 폐지해달라는 청원들에는 '현행 낙태죄는 여성의 건강을 해치거나 사회적으로 이를 키울 여력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적용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해친다' '콘돔이나 피임약으로 100% 피임을 할 수 없어 낙태 수술을 합법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임신 주수에 따른 제한 등 점진적인 법 개정을 촉구한다' 등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코너에 등록된 낙태죄 폐지 청원이 지난 30일 23만명을 넘어서면서 공론화 논의가 거세다. 리얼미터가 지난 1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16명을 조사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폐지' 의견이 51.9%으로, ‘유지’ 의견 36.2%보다 높았다.  hokma@newsis.com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코너에 등록된 낙태죄 폐지 청원이 지난 30일 23만명을 넘어서면서 공론화 논의가 거세다. 리얼미터가 지난 1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16명을 조사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폐지' 의견이 51.9%으로, ‘유지’ 의견 36.2%보다 높았다.   [email protected]


 폐지를 반대한다는 청원들에는 '낙태죄는 태아에 대한 생명권 존중이다. 낙태죄 폐지는 합법적 생명의 박탈이다' '폐지시 자기 성적 결정권의 자유가 가정의 안녕보다 우선시될 것으로 보인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낙태죄, 사실상 사문화된 법?

 국내에서는 형법에 '낙태죄'를 두고 제한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현행 형법상 불법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고 불법으로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의료인은 2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돼 있다.

 제한적으로 모자보건법에서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본인과 배우자(사실혼 관계 포함)의 동의를 받아 수술할 수 있도록 인정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법 낙태는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15~44세 가임기 여성 4000명 표본추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16만8700여건으로 추정됐다.

 인공임신중절 사유로는 '원치 않는 임신'이 전체 응답자 중 51% 비중을 차지해 가장 많았고 '미혼'(26%)이 뒤를 이었다. '소득이 적거나 고용이 불안정해 경제상 힘든 경우'도 17.9%를 차지했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도 임신중절을 하는 경우가 다수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속되는 낙태죄 논쟁···이번에도 결론내기 힘들 듯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이후 삶에 대해 영향을 받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 임신이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도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조사(2011년 기준)에 따르면 미국·독일·프랑스·스위스·캐나다·호주 등에서 사회경제적 이유와 본인 요청에 의한 임신중절을 허용한다.

 사실상 법이 유명무실한데도 낙태를 음성화해 여성 건강권을 해치고 있다는 우려와 아이를 키울만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책임만 지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는 "현재 여성들은 병원에서 비위생적인 수술도구를 봐도, 수술 이후 심한 출혈이 있어도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항의할 수 없다. 낙태한 사실을 알리겠다면서 관계유지를 강요받거나 금전적 요구 등 협박을 받는 사례에도 대응할 수단이 없다"며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낙태죄로 인해 여성의 건강과 안전은 심대히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16.10.15.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16.10.15. [email protected]


 이들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국가의 책임과 사회적 지지 속에서 고민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며 "아이를 언제, 얼마나 낳고 어떤 가족을 꾸릴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삶'의 문제인 만큼 이제는 국가 중심의 통제를 벗어나 국민 개개인의 의사에 맡겨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태아도 생명"이라며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장은 "인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뿐 아니라 낙태를 행하는 여성에게도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피해를 끼친다"며 "자궁 속 아기는 여성과는 독립된 자녀다. 여성 등 모든 인간에게 자기결정권이 당연히 있지만 태아는 '자기'라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 회장은 "임신시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보다 태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은 해결방식"이라며 "출산 지원 정책에 보다 많은 예산을 들여 나은 보육환경을 만들고 피임률을 높이기 위한 홍보와 교육을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 처벌에 대해 합헌으로 결론내렸으나 당시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4로 팽팽했다. 지난해 9월에는 보건복지부가 낙태를 포함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의사 자격정지기간을 최대 '1개월 이내'에서 '12개월 이내'로 강화하려다 여성과 의료계에 반대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낙태에 관한 논쟁이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인권 등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이번에도 쉽게 결론에 이르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현실을 반영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낙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저출산 문제 차원으로 접근해 논의되면 안 된다"라며 "생명, 인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신중히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충훈 회장은 "태아의 생명권은 존중해야 하며 무분별한 인공중절수술은 반대한다"면서도 "콘돔을 사용해도 피임 성공률이 70~80%인 등 피임에도 실패 확률이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임신해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건강에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런 경우 환자들에 도움을 주는 양심적 위법 의료 행위에 대해 법의 잣대로 의료인을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미혼모나 피치 못할 임신을 한 여성들이 육아 출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피임 교육 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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