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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기 박사의 세살면역 여든까지] '나쁜 면역'도 있다

등록 2017.10.30 16: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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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기 박사의 세살면역 여든까지] '나쁜 면역'도 있다


전통적 개념으로서의 면역(免疫)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전염병(疫)으로부터 면제(免) 된다' 즉,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전염병(돌림병)에 걸려서 심하게 고생하거나 사망하게도 되지만, 특정한 누군가는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잘 몰라도 그러한 돌림병 상황으로부터 일단 면제돼서 건강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한마디로 매우 바람직한 운 좋은 상황을 일컫는 용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있어서의 면역에 대한 개념 설정도 위와 같은 전통적 개념만을 그대로 묵수하고 고수해도 괜찮을까요? 사실 알게 모르게 면역에 대한 산업적 구호와 상업적 담론이 넘쳐나고 있는 세상입니다.
 
특히 아직 면역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과 관련된 각종 상품들(분유와 이유식에서부터 대기업에서 선전하는 건강식품에 이르기까지)의 홍보와 광고에서, 이 '면역'이라는 단어는 거의 요술지팡이 수준의 위상을 획득했지요.

면역력을 특정한 방식으로 강화시켜 주면 우리 아이들이 질병으로부터 많이 자유롭게 되고, 더욱 신체가 단단해지고, 더욱 쑥쑥 키가 잘 자라고, 성적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지게 될 것만 같은, 반복적인 대중 선동성 광고의 전성시대입니다.
 
물론 '좋은 면역 상태'란 이렇게 건강에 있어 긍정성의 화신이 될 만 하지요. 마치 '이지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방패)'처럼 외부의 못된 병균을 스스로 알아서 막아주는 건강의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쁜 면역 상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서, 아이들과 본인의 면역학적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전문가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서 꼼꼼한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특히 소아청소년)에게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알레르기 병증(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비염, 천식, 두드러기 등)은 '과잉 활성화된 면역 상태'가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에, 막연하고 두루뭉수리하게 그저 면역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오히려 건강에 있어서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나쁜 면역 상태'란 과연 무엇일까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만성적인) 면역 저하 상태'입니다. 사실 소아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이 부분이 가장 대표적인 나쁜 면역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만성적인 호흡기 면역 저하 상태(ex. 잦은 감기,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오랜 감기, 만성 축농증과 만성 중이염, 반복되는 편도염, 임파선염, 기관지염, 폐렴 등)와 만성적인 소화기 면역 저하 상태(ex. 만성 식욕부진, 잦은 복통, 변비와 설사, 헛구역질, 잦은 장염, 식체 등)가 한방소아과 임상 영역에서 흔히 관찰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감기(바이러스성 질환)의 단기적 해결을 위한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이 거의 관행화된 임상 패턴을 이루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만성적인 면역 저하 상태에 대한 적절한 한의학적 개입은 어린이 건강 증진에 있어 매우 특별한 보건사회학적 중요성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 '과잉 면역 상태'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알레르기 병증들은 모두 다 과잉 활성화된 면역 상태들의 임상적 징후들로, 별것 아닌 외부 인자에 대해서 과도하게 오버하는 면역 불안정 상태인 것입니다.

즉, 이런 상태에서는 막연히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ex.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 없이, 시중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홍삼 제품을 먹는 것 등)이 오히려 임상적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거나 악화시키는 악화 인자로 작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에는 전문적인 한방의료기관에서 적절하게 면역학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집중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 '자가 면역 상태'입니다. 면역계의 인식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내부 인자를 외계 인자로 면역계가 잘못 인식하고,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는 면역 인식에 있어서의 '대혼란' 상태인 것입니다. 적군과 아군 즉 피아(彼我) 구분을 못하는 면역 상태인 것이지요.

이런 면역 상태는 사실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본질적인 치료가 아닌, 증상 개선 및 더 이상의 악화 방지라는 소극적인 목표를 임상적 과제로 설정하여 치료에 임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자가 면역 질환(auto-immune disease)으로는 크론병, 류마티스 관절염, 베체트병, 쇼그렌 증후군, 레이노 증후군, 강직성 척추염 등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 임상적 현장에서는 첫째 상태(만성적인 면역 저하 상태)와 둘째 상태(과잉 면역 상태)가 겹쳐져 있는, '복합적인 면역 불균형 상태'도 소아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아주 흔히 관찰되긴 하지만, 보다 용이한 이해를 위해서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의 건강한 아이들에게 적절한 영양 공급과 좋은 환경을 제공하여 '좋은 면역' 상태를 계속 잘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중요한 의무일 것입니다. 나아가 나쁜 면역 상태에 있는 건강하지 못한 소아청소년들에게는, 하루속히 좋은 면역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 개선과 임상적 개입을 받도록 해 주는 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과업일 것입니다. 이는 올바른 지식에서 비롯된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막연히 나쁜 것으로만 알았던 스트레스에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스트레스(distress)가 있듯이,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알았던 면역에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면역 상태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는 나쁜 면역 상태가 있다는 인식의 분명한 교정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행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 황만기 서초 아이누리 한의원 대표원장·한방소아과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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