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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령의 BOOK소리]최재천 "여왕개미 같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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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12-21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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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2017.12.21. (사진=메디치미디어 제공) photo@newsis.com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출간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지난해 6월 SNS를 뜨겁게 달궜던 사진 한장이 있었다. 반백의 신사가 무릎을 꿇은 채 아이와 눈을 맞췄고 아이도 환한 미소를 지은 사진, 공감의 울림이 컸다.

무릎을 꿇고 상장을 전달한 이는 국립생태원장이었던 최재천(63)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였다.

 아이에게 눈을 맞추기 위해 꿇었던 자연스런 행동이었지만 네티즌들은 권위를 내려놓은 기관장 모습에 환호했다.

이 일이 유명세를 타면서 집필 요청이 이어졌고, 책을 낼 생각이 없던 그는 최근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미디어)를 냈다.

 '개미박사'로 유명한 최 교수는 2013년 10월부터 3년 2개월 동안 국립생태원을 이끌었다.

교수에서 경영자로 살면서 그는 "리더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뒤에 숨어 있는 '여왕개미' 같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개미이고, 리더가 아닙니다. 일은 일개미들이 합니다. 몇 가지 규범만 정해놓고 나대지 않는 사람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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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지난해 6월 국립생태원이 주최한 '우리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어린이에게 무릎을 꿇고 상장을 전달했다. 이같은 모습은 SNS 상에서 '배려가 깊은 겸손한 시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2017.12.21. (사진=국립생태원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대 동물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뒤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지냈고, 2006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있다.

최 교수는 개미의 세계를 재미있게 소개한 '개미제국의 발견'(1999)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개미박사'라는 애칭도 얻었다.

책에는 한 평생을 생태학자로 살아온 그가 국립생태원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과 경영철학이 담겼다.

"여러 번 요청받았지만, 교수 생활하면서 학장·처장 등 보직을 한 번도 맡은 적이 없습니다. 난생 처음 경영을 경험했는데, 이를 책으로까지 써야 하는지를 놓고 많이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어느날 결심을 하고 쓰게 됐습니다."

그는 "한 기관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다"며 "하루에 3분, 5분도 제대로 못 쉬어봤다"고 회상했다.

"조금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3년을 해보니까 못 할 짓은 아니더라구요. 천하에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직접 해보니까 '최선을 다하면 세상천지에 절대 못할 일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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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 교수는 "기업 경영자는 예외로 두겠다"며 "그 세계는 또 다른 세계일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나라에는 100년 이상된 기업이 3개 정도 밖에 없잖아요. 장수 기업들은 차분히 오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돈을 벌고 월급도 줘야 하는 사기업의 경우에는 제가 감히 뭐라고 할 부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기업에 대해서는 단호한 지적이 이어졌다.

그는"예산을 받아서 운영되는 공기관이 왜 망하는지 어안이 벙벙했다"며 "공기관장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면 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망가트릴 수 없는 곳인데, 왜 망가트리는지 보니 '경영을 한 게 아니라 자기 것을 챙겼구나' 싶었어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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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는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이다. ▲군림(君臨)하지 말고 군림(群臨)하라 ▲가치와 목표는 철저히 공유하되 게임은 자유롭게 ▲소통은 삶의 업보다 ▲이를 악물고 듣는다 ▲전체와 부분을 모두 살핀다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조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사하게 ▲누가 뭐래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실수한 직원을 꾸짖지 않는다 ▲인사는 과학이다 10가지 경영 철학을 제시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진정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다. 나는 대가 약하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지만 세상을 이만큼 살아보고 난 지금은 주변에서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세상 모든 사소한 일에까지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그대로 되지 않으면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은 더 넓고 큰 세상을 품지 못한다. 나는 내 생각이 틀렸고 남이 옳을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산다."(95쪽)

동물행동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그는 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초보 경영자였지만, 놀라운 경영성과를 거뒀다.

초대 원장인 만큼 어깨도 무거웠으나, 재임 당시 국립생태원은 서천의 애물단지에서 매년 100만명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바뀌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환경부에서 내려준 연간 관람객 30만명 유치라는 목표를 300% 이상 초과 달성했다.

최 교수는 성공 비결로 '소통'과 '공감'을 꼽았다.

"격주 수요일마다 일명 '원격바'(원장이 직접 바비큐를 구우며 직원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운영했죠. 바비큐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니 협업이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직원들이 '60대 같지 않고 꼭 자기 세대 같다'고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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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무리 탈권위적으로 하려고 해도 낮에 일할 때는 한계가 있었다"며 그래서 '가정적인 남자'에서 '밤무대의 황태자'로 바뀌었다고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교수 시절에는 오후 6시면 퇴근하고,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거의 매일 4시간동안 온전하게 제 시간을 갖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생태원장이 되면서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해 거의 매일 회식하고, 축구·당구·볼링 등을 즐겼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일도 풀리더군요."

최 교수는 "처음에는 직원들이 저를 완벽한 엄친아로 생각했으나, 나중에는 '도대체 공부를 한 것이 맞냐'고 묻기도 했다"며 "이제 서울 온 지가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지금은 옛날 모습으로 돌아갔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 경험으로 다시 경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묻자, 그는 "한 번으로 족한 것 같다"며 "경영하고 싶은 마음은 솔직하게 없다"며 에둘러 말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죽기 살기로 해야 하는 일인데, 안 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배운 리더십이 간헐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잠깐 봉사할 마음은 있습니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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